세계 최대 암호화폐거래소 바이낸스는 지난해 8월 한국어 서비스를 중단한 이후 ‘공식적으론’ 국내에서 영업하지 않는 회사다. 하지만 한글만 지워냈을 뿐 한국인의 가입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바이낸스에서 ‘Register Now(신규 등록)’를 클릭하자 거주지 확인 등 가입 절차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010으로 시작하는 휴대폰 번호와 카카오 이메일 주소 등을 활용해 본인 인증도 거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이낸스 회원으로 등록해 최근 급등한 러시아 루블화 표시 비트코인까지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게 됐다.

해외 거래소 차단? “오늘도 영업 중”

바이낸스 막겠다더니…여전히 '韓코인족' 북적
금융당국이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상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해외 코인거래소를 차단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이를 강제할 제도적 장치가 없어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2일 시장조사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바이낸스 앱의 국내 접속자 수는 올 들어 매주 16만~20만 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웬만한 중소 토종 거래소를 앞지르는 수준이다. 남성(81.3%)이 여성(18.7%)보다 압도적으로 많고, 30대(36.8%)와 40대(24.4%)가 주를 이루고 있다.

단순한 시세 확인 등을 위해 바이낸스를 쓰는 사람도 있지만 코인을 사고파는 투자자도 적지 않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한 암호화폐거래소 관계자는 “웬만한 트레이더는 대부분 국내 거래소와 바이낸스를 동시에 쓴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바이낸스에서는 국내 거래소에서 제공하지 않는 다양한 파생상품까지 거래할 수 있다.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는 물론 최대 125배의 레버리지 상품도 있다. 크립토컴페어에 따르면 세계 암호화폐 파생상품 거래에서 바이낸스 점유율은 올 1월 기준 51.6%에 달한다.

특금법상 암호화폐거래소를 운영하려면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획득하고 금융당국 심사를 거쳐 가상자산사업자(VASP)로 신고해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작년 7월 한국인을 대상으로 영업한다고 판단되는 해외 거래소 27곳에 서한을 보내 “특금법에 따라 신고하라”고 통보했다. 불법 영업을 강행하면 접속 차단(블라인드), 형사 고발 등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럼에도 바이낸스를 포함한 해외 거래소 가운데 신고서를 낸 곳은 전무하다. 그 대신 이들 업체는 한국어 서비스와 원화결제 기능을 삭제하고 국내 마케팅도 중단했다.

당국 “강제수단 없어 단속에 한계”

당초 해외 거래소 차단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업계 관계자는 “설사 블라인드 조치가 이뤄지더라도 가상사설망(VPN) 등을 이용하면 간단하게 우회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해외 거래소는 대부분 우리 주권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운영돼 법적 강제수단이 마땅치 않다”며 “담당 인력이나 조직 등이 부족해 일일이 단속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바이낸스는 국내 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하면서 한국 시장에서 ‘실속’을 챙기고 있다. 지난달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넷마블 등과 잇따라 업무제휴를 맺었다. 한국 게임과 K팝 콘텐츠를 대체불가능토큰(NFT), 디파이(탈중앙화금융) 등의 사업에 활용하려는 포석이다.

해외 거래소들은 러시아 이용자의 거래를 막아달라는 미국 정부의 요청조차 거부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바이낸스는 “국제 제재 대상에 오른 러시아인의 계좌는 차단하겠지만, 모든 러시아인에 대한 거래 금지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비트코인 가격은 러시아 지역의 수요 급증에 힘입어 2일 5300만원 선을 지켜내며 강세를 이어갔다. 우크라이나에는 1700만달러(약 200억원) 상당의 암호화폐가 기부금 명목으로 전달됐다.

임현우/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