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분쟁에서의 관행과 법적 의무에 대하여 [LAW In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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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FO Insight]
이진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jinwoo.lee@bkl.co.kr
이진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jinwoo.lee@bkl.co.kr
한 회사가 매년 지급하던 격려금을 중단하겠다고 하니 연봉이 삭감된다며 반발이 일어났다는 보도를 보았다. 소송사건을 진행하다보면, 비록 "근로계약이나 단체협약에서 꼭 지급한다고 약속한 적은 없으나 오랫동안 거의 매년 성과보수를 지급했으니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주장을 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은 비단 해당 성과보수만의 지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산입해야 하는지 다투어지는 법정수당이나 퇴직금 관련 분쟁으로까지 이어진다.
독일연방노동법원에서는 "사용자에게는 경제적 위험을 근로자에게 떠넘기거나 근로계약의 핵심영역을 침해하지 않는 한 그의 의무를 유연하게 형성할 이익이 인정된다"는 판결을 했다고 하는데, 그 의미는 여러 사례들을 살펴보아야 비로소 명료해질 것이다.
민법전을 펼쳐보면 '(전략) 관습이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의사가 명확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관습에 의한다'고 되어 있다. 관습도 법규범의 역할을 하는 때가 있기는 한데, 당사자의 의사가 명확하지 않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로 읽힌다.
대법원의 예전 판례로 눈을 돌려보면, 사용자가 이미 퇴직한 근로자들에게 퇴직 이후에 체결된 단체협약에 의한 임금인상분 및 퇴직금인상분 차액을 추가 지급한 관행이 있었던 사안에서 "기업의 내부에 존재하는 특정의 관행이 근로계약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고 하기 위하여는 그러한 관행이 기업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근로관계를 규율하는 규범적인 사실로서 명확히 승인되거나 기업의 구성원에 의하여 일반적으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 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서 기업 내에서 사실상의 제도로서 확립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규범의식에 의하여 지지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대법원 2002. 4. 23. 선고 2000다50701 판결).
이 판례에 의하면 상당히 높은, 거의 확실한 수준의 규범의식이 있어야만 관행에서 법적의무가 생겨난다는 것인데, 그런 수준의 규범의식이 있는 경우라면 사실 당사자의 의사가 거의 명확하다고 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닌가.
명절상여가 통상임금인지가 문제된 최근의 대법원 판결을 보자. 이 회사의 급여세칙에는 지급일 이전의 중도퇴직자에게도 명절상여를 근무일수에 비례해서 일할지급한다고 정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중도퇴직자에게는 지급하지 않는 관행이 있어왔다. 고등법원에서는 관행을 중시하여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보았지만, 대법원은 "특정 시점이 되기 전에 퇴직한 근로자에게 특정 임금 항목을 지급하지 않는 관행이 있더라도,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이 그러한 관행과 다른 내용을 명시적으로 정하고 있으면 그러한 관행을 이유로 해당 임금 항목의 통상임금성을 배척함에는 특히 신중해야 한다"고 하면서 통상임금에 해당된다고 보았다(대법원 2021. 12. 16. 선고 2016다7975 판결).
뭔가 조금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예전의 대법원 사안에서, 단체협약이 체결되기도 전에 퇴직한 사람에게는 단체협약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사규에 명시적으로 정한 것이나 마찬가지 수준으로 너무 당연한 내용이지 않는가.
옆 나라 일본의 사례들을 보면, 급여규정 상으로는 상여금에 대하여 이사장에게 재량이 있다고 되어 있는 상태에서, 14년간 매년의 단체협약으로 '6.1개월분 급여 + 10만엔'으로 지급하기로 체결해서 지급해오기는 하였으나, 이사장이 위 금액기준의 재고필요성을 재삼 언급하여 온 사정이 있다면, 위 금액기준으로의 노사관행이 성립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한 것과(立命館사건), 취업규칙 상에 정해진 종업시간 30분 이전에 업무를 마치고 샤워 등을 하는 관행이 장기간 반복되었더라도 회사가 관행의 시정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노사관행이 성립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한 것(国鉄池袋・浦田電車区사건)이 눈에 띈다. 둘다 취업규칙 상에 분명한 규정이 있는데도 그와는 다른 관행이 지속되기는 하였지만 정작 취업규칙의 제·개정 권한을 가진 사용자는 취업규칙을 관행에 맞춰서 개정할 생각은 없었던 사건들이다.
종합해 보면, 취업규칙 등의 사규에 정한 내용이 이미 있거나 법률상 분명한 내용인 경우에는, 그와는 다른 내용의 관행이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었더라도 구속력 있는 노사관행으로서 인정되기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사용자가 사규를 개정할 의사가 없고 오히려 관행을 시정할 생각을 드러내었다는 정황이 있는 사안들에서, 일본 법원 같은 경우는 현장관리자가 아니라 해당 사규의 제·개정 권한을 가진 사용자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이와는 달리 취업규칙 등의 사규에 반하지 않으면서 단지 그 내용을 보충하거나 구체화하는 내용의 노사관행도 있을 수 있다. 취업규칙에 기재되어 있는 업무시작시간을 사옥 로비의 출입증 터치 시간 기준으로 본다던지 하는 경우이다. 이런 유형의 경우는 노사관행의 성립요건 심사에서 적절히 고려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독일연방노동법원의 "사용자에게는 경제적 위험을 근로자에게 떠넘기거나 근로계약의 핵심영역을 침해하지 않는 한 그의 의무를 유연하게 형성할 이익이 인정된다"는 판결로 돌아와 보자. 계약을 하거나 의사를 표명할 때에는 조건이나 기한을 붙일 수 있고, 추후 상황 변화에 따라 철회할 수 있음을 유보할 수도 있다. 말이란 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니 약간만 표현을 달리해도 풍기는 뉘앙스가 확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역시 법률문제는 일도양단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이 모호하고 다면적이다. 그런 와중에도 여러 사례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유의미한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독일연방노동법원에서는 "사용자에게는 경제적 위험을 근로자에게 떠넘기거나 근로계약의 핵심영역을 침해하지 않는 한 그의 의무를 유연하게 형성할 이익이 인정된다"는 판결을 했다고 하는데, 그 의미는 여러 사례들을 살펴보아야 비로소 명료해질 것이다.
민법전을 펼쳐보면 '(전략) 관습이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의사가 명확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관습에 의한다'고 되어 있다. 관습도 법규범의 역할을 하는 때가 있기는 한데, 당사자의 의사가 명확하지 않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로 읽힌다.
대법원의 예전 판례로 눈을 돌려보면, 사용자가 이미 퇴직한 근로자들에게 퇴직 이후에 체결된 단체협약에 의한 임금인상분 및 퇴직금인상분 차액을 추가 지급한 관행이 있었던 사안에서 "기업의 내부에 존재하는 특정의 관행이 근로계약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고 하기 위하여는 그러한 관행이 기업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근로관계를 규율하는 규범적인 사실로서 명확히 승인되거나 기업의 구성원에 의하여 일반적으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 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서 기업 내에서 사실상의 제도로서 확립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규범의식에 의하여 지지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대법원 2002. 4. 23. 선고 2000다50701 판결).
이 판례에 의하면 상당히 높은, 거의 확실한 수준의 규범의식이 있어야만 관행에서 법적의무가 생겨난다는 것인데, 그런 수준의 규범의식이 있는 경우라면 사실 당사자의 의사가 거의 명확하다고 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닌가.
명절상여가 통상임금인지가 문제된 최근의 대법원 판결을 보자. 이 회사의 급여세칙에는 지급일 이전의 중도퇴직자에게도 명절상여를 근무일수에 비례해서 일할지급한다고 정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중도퇴직자에게는 지급하지 않는 관행이 있어왔다. 고등법원에서는 관행을 중시하여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보았지만, 대법원은 "특정 시점이 되기 전에 퇴직한 근로자에게 특정 임금 항목을 지급하지 않는 관행이 있더라도,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이 그러한 관행과 다른 내용을 명시적으로 정하고 있으면 그러한 관행을 이유로 해당 임금 항목의 통상임금성을 배척함에는 특히 신중해야 한다"고 하면서 통상임금에 해당된다고 보았다(대법원 2021. 12. 16. 선고 2016다7975 판결).
뭔가 조금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예전의 대법원 사안에서, 단체협약이 체결되기도 전에 퇴직한 사람에게는 단체협약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사규에 명시적으로 정한 것이나 마찬가지 수준으로 너무 당연한 내용이지 않는가.
옆 나라 일본의 사례들을 보면, 급여규정 상으로는 상여금에 대하여 이사장에게 재량이 있다고 되어 있는 상태에서, 14년간 매년의 단체협약으로 '6.1개월분 급여 + 10만엔'으로 지급하기로 체결해서 지급해오기는 하였으나, 이사장이 위 금액기준의 재고필요성을 재삼 언급하여 온 사정이 있다면, 위 금액기준으로의 노사관행이 성립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한 것과(立命館사건), 취업규칙 상에 정해진 종업시간 30분 이전에 업무를 마치고 샤워 등을 하는 관행이 장기간 반복되었더라도 회사가 관행의 시정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노사관행이 성립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한 것(国鉄池袋・浦田電車区사건)이 눈에 띈다. 둘다 취업규칙 상에 분명한 규정이 있는데도 그와는 다른 관행이 지속되기는 하였지만 정작 취업규칙의 제·개정 권한을 가진 사용자는 취업규칙을 관행에 맞춰서 개정할 생각은 없었던 사건들이다.
종합해 보면, 취업규칙 등의 사규에 정한 내용이 이미 있거나 법률상 분명한 내용인 경우에는, 그와는 다른 내용의 관행이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었더라도 구속력 있는 노사관행으로서 인정되기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사용자가 사규를 개정할 의사가 없고 오히려 관행을 시정할 생각을 드러내었다는 정황이 있는 사안들에서, 일본 법원 같은 경우는 현장관리자가 아니라 해당 사규의 제·개정 권한을 가진 사용자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이와는 달리 취업규칙 등의 사규에 반하지 않으면서 단지 그 내용을 보충하거나 구체화하는 내용의 노사관행도 있을 수 있다. 취업규칙에 기재되어 있는 업무시작시간을 사옥 로비의 출입증 터치 시간 기준으로 본다던지 하는 경우이다. 이런 유형의 경우는 노사관행의 성립요건 심사에서 적절히 고려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독일연방노동법원의 "사용자에게는 경제적 위험을 근로자에게 떠넘기거나 근로계약의 핵심영역을 침해하지 않는 한 그의 의무를 유연하게 형성할 이익이 인정된다"는 판결로 돌아와 보자. 계약을 하거나 의사를 표명할 때에는 조건이나 기한을 붙일 수 있고, 추후 상황 변화에 따라 철회할 수 있음을 유보할 수도 있다. 말이란 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니 약간만 표현을 달리해도 풍기는 뉘앙스가 확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역시 법률문제는 일도양단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이 모호하고 다면적이다. 그런 와중에도 여러 사례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유의미한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