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유전자 가위로 자르고 붙이니…"RNA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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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브레이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조은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696쪽│2만4000원
말라리아 퇴치·바이러스 연구 큰 기여
수많은 연구진 끈기와 희생 뒷받침
월터 아이작슨 지음
조은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696쪽│2만4000원
말라리아 퇴치·바이러스 연구 큰 기여
수많은 연구진 끈기와 희생 뒷받침
매년 세계에서 100만 명 넘는 사람이 모기로 인해 죽는다. 말라리아, 뎅기열, 지카바이러스, 웨스트나일바이러스 등 모기가 퍼뜨리는 질병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노력했지만 박멸은 힘들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연구자들이 새로운 방법을 들고나왔다.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수컷 모기를 불임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들은 자손을 남길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레 모기 개체 수는 줄어들게 된다. 크리스퍼가 바꿀 세상의 한 단면이다.
《코드 브레이커》는 이 크리스퍼 기술이 어떻게 빛을 보게 됐는지를 다룬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전기로 유명한 월터 아이작슨이 썼다. 책은 크리스퍼 기술의 원리를 세계 최초로 규명해 2020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UC버클리 교수의 전기를 표방하지만 한 인물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찰스 다윈과 그레고어 멘델을 거쳐 DNA의 구조를 밝힌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 다우드나와 함께 노벨화학상을 받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크리스퍼 기술을 놓고 경쟁을 벌인 장펑과 조지 처치 등 수많은 인물을 등장시킨다. 역사를 넘나들며 인물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는 아이작슨의 솜씨는 거장의 수준에 이르렀고, 600쪽이 넘는 두꺼운 분량인데도 책을 술술 넘기며 읽게 만든다.
책의 주인공 다우드나는 1964년 미국 워싱턴DC에서 태어났지만 유년 시절을 하와이에서 보냈다. 하와이에서도 시골이라 할 수 있는 빅아일랜드의 힐로란 곳이었다. 용암동굴 속 눈 없는 거미, 손을 대면 오그라드는 식물 등은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때만 해도 여자가 과학을 하겠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던 시절이었다. 다우드나가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겠다고 하자 고등학교 선생님은 “노, 노, 노!”라고 외쳤다. 대학에서도 잘못 생각한 것 아닌가 하는 순간이 있었다. 프랑스어로 전공을 바꾸려 했을 때 상담했던 프랑스어 교수가 그를 다잡았다. “네가 화학을 전공한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테지만, 프랑스어를 전공한다면 그저 프랑스어 선생이 되고 말 거야.”
왓슨과 크릭이 DNA의 구조를 밝힌 이후 과학자들은 DNA의 비밀을 푸는 데 집중했다. 1990년 출범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10년에 걸쳐 모든 염기 서열을 밝혔지만 대단한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DNA는 인간 유전자에서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은 이렇게 서술한다. “인간 유전자를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쓸 수도 있으려면, DNA에 코딩된 지시 사항을 실행하는 보다 덜 유명한 분자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 바로 RNA였다. ‘수천 명이 달라붙은 일이라면 절대로 하지 말 것’이라는 좌우명을 가진 하버드대 교수 잭 쇼스택은 그때 연구 주제를 DNA에서 RNA로 바꿨다. 그 연구실에 있던 대학원생이 다우드나였다.
크리스퍼는 박테리아의 바이러스 퇴치 기술에서 유래했다. 박테리아는 침입한 바이러스의 DNA를 떼어내 자기의 DNA 염기 서열에 집어넣었다. 이를 통해 자신을 공격한 바이러스를 기억했다가 재침입하면 즉시 파괴할 수 있었다. 이 같은 현상이 알려진 뒤 학계엔 원리를 규명하고 상업화할 수 있는 기술을 구현하려는 경쟁이 불붙었다. 다우드나는 샤르팡티에와 2012년 크리스퍼의 원리를 규명하는 논문을 사이언스지(紙)에 게재해 고지를 점령했지만, 인간 세포에도 작동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책은 다우드나와 경쟁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대접전을 그린다.
살벌한 경쟁만이 과학을 이끈 것은 아니다. 공동 연구와 협력이 없었다면 다우드나도 노벨상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작슨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과학이 팀 스포츠임을 알리는 한편 끈질기고, 탐구심 넘치고, 고집 세고, 지독하게 경쟁심이 강한 선수 개개인의 영향력 또한 보여주고 싶었다.” 이어 “다우드나는 과학자라면 갖춰야 할 협업 정신을 타고났으면서도, 모든 위대한 혁신가가 그렇듯 본성에는 경쟁적 성향을 갖춘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10년여 전 《스티브 잡스》를 썼던 아이작슨은 잡스라는 인물을 통해 정보기술(IT) 혁명 시대를 돌아봤다. 이 책은 다우드나를 매개로 생명과학 혁명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한다. “이제 우리는 더 중요한 세 번째 시대, 생명과학 혁명의 시대에 돌입한 참이다. 유전자 코드를 공부한 아이들이 디지털 코딩을 공부한 아이들에 합세할 것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코드 브레이커》는 이 크리스퍼 기술이 어떻게 빛을 보게 됐는지를 다룬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전기로 유명한 월터 아이작슨이 썼다. 책은 크리스퍼 기술의 원리를 세계 최초로 규명해 2020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UC버클리 교수의 전기를 표방하지만 한 인물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찰스 다윈과 그레고어 멘델을 거쳐 DNA의 구조를 밝힌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 다우드나와 함께 노벨화학상을 받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크리스퍼 기술을 놓고 경쟁을 벌인 장펑과 조지 처치 등 수많은 인물을 등장시킨다. 역사를 넘나들며 인물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는 아이작슨의 솜씨는 거장의 수준에 이르렀고, 600쪽이 넘는 두꺼운 분량인데도 책을 술술 넘기며 읽게 만든다.
책의 주인공 다우드나는 1964년 미국 워싱턴DC에서 태어났지만 유년 시절을 하와이에서 보냈다. 하와이에서도 시골이라 할 수 있는 빅아일랜드의 힐로란 곳이었다. 용암동굴 속 눈 없는 거미, 손을 대면 오그라드는 식물 등은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때만 해도 여자가 과학을 하겠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던 시절이었다. 다우드나가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겠다고 하자 고등학교 선생님은 “노, 노, 노!”라고 외쳤다. 대학에서도 잘못 생각한 것 아닌가 하는 순간이 있었다. 프랑스어로 전공을 바꾸려 했을 때 상담했던 프랑스어 교수가 그를 다잡았다. “네가 화학을 전공한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테지만, 프랑스어를 전공한다면 그저 프랑스어 선생이 되고 말 거야.”
왓슨과 크릭이 DNA의 구조를 밝힌 이후 과학자들은 DNA의 비밀을 푸는 데 집중했다. 1990년 출범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10년에 걸쳐 모든 염기 서열을 밝혔지만 대단한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DNA는 인간 유전자에서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은 이렇게 서술한다. “인간 유전자를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쓸 수도 있으려면, DNA에 코딩된 지시 사항을 실행하는 보다 덜 유명한 분자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 바로 RNA였다. ‘수천 명이 달라붙은 일이라면 절대로 하지 말 것’이라는 좌우명을 가진 하버드대 교수 잭 쇼스택은 그때 연구 주제를 DNA에서 RNA로 바꿨다. 그 연구실에 있던 대학원생이 다우드나였다.
크리스퍼는 박테리아의 바이러스 퇴치 기술에서 유래했다. 박테리아는 침입한 바이러스의 DNA를 떼어내 자기의 DNA 염기 서열에 집어넣었다. 이를 통해 자신을 공격한 바이러스를 기억했다가 재침입하면 즉시 파괴할 수 있었다. 이 같은 현상이 알려진 뒤 학계엔 원리를 규명하고 상업화할 수 있는 기술을 구현하려는 경쟁이 불붙었다. 다우드나는 샤르팡티에와 2012년 크리스퍼의 원리를 규명하는 논문을 사이언스지(紙)에 게재해 고지를 점령했지만, 인간 세포에도 작동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책은 다우드나와 경쟁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대접전을 그린다.
살벌한 경쟁만이 과학을 이끈 것은 아니다. 공동 연구와 협력이 없었다면 다우드나도 노벨상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작슨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과학이 팀 스포츠임을 알리는 한편 끈질기고, 탐구심 넘치고, 고집 세고, 지독하게 경쟁심이 강한 선수 개개인의 영향력 또한 보여주고 싶었다.” 이어 “다우드나는 과학자라면 갖춰야 할 협업 정신을 타고났으면서도, 모든 위대한 혁신가가 그렇듯 본성에는 경쟁적 성향을 갖춘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10년여 전 《스티브 잡스》를 썼던 아이작슨은 잡스라는 인물을 통해 정보기술(IT) 혁명 시대를 돌아봤다. 이 책은 다우드나를 매개로 생명과학 혁명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한다. “이제 우리는 더 중요한 세 번째 시대, 생명과학 혁명의 시대에 돌입한 참이다. 유전자 코드를 공부한 아이들이 디지털 코딩을 공부한 아이들에 합세할 것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