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학종 소풍벤처스 파트너, 한상엽 대표파트너, 최경희 파트너
왼쪽부터 이학종 소풍벤처스 파트너, 한상엽 대표파트너, 최경희 파트너
초기 스타트업 투자 시장은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분야다. 주요한 플레이어로 퓨처플레이,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카카오벤처스 등이 있다. 소풍벤처스도 이들과 함께하는 초기 스타트업 투자사다.

이들의 마케팅은 더욱 생소하다. 소비자를 유치해야 하는 B2C 기업들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지만 이들은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한다. 더 많은 스타트업들이 투자자들을 찾아와야 더 좋은 스타트업들을 발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풍벤처스는 지난 2~3년 간 급변하는 스타트업 시장과 함께 마케팅 측면에서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그 결과 소풍벤처스는 좋은 성과를 일굴 수 있었다. 소풍이 투자한 회사는 2020년 77팀에서 2021년 101팀으로 31% 늘어났고, 소풍이 투자한 스타트업들의 총 기업가치는 3조원에 육박하게 되었다.

지난해 소풍을 찾은 스타트업은 총 926팀이었고, 소풍은 이중 24팀에 투자했다. 아울러 신문 지면에 한 해 동안 120건 이상 기사가 실리는 등 언론 노출 지표 역시 크게 증대했다.

상황 1 스타트업 ‘갑’ 시대
도전 1 소셜 벤처 간판 바꾼 리브랜딩

스타트업 시장 투자자와 창업자의 관계에서 보통 투자자가 우위를 차지한다. 투자를 받고자 하는 이들이 투자를 하는 사람들에게 어필을 해야한다는 것은 당연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벤처투자조합 결성액은 역대 최대인 9조2171억원에 달했다. 종전 최대였던 2020년 6조8800억원보다 무려 34% 증가했다. 중기부 등록 초기 스타트업 투자사만 300곳이 넘는다. 투자사들이 많아지고 외려 좋은 아이템을 들고 있는 창업자들은 투자사들을 골라 가는 상황이 됐다.

투자사 입장에선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소풍벤처스에게 이 상황은 더욱 안좋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소풍벤처스는 2008년 국내 최초로 ‘임팩트 투자사’로 설립됐다. 임팩트 투자란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비즈니스를 행하는 업체에 진행하는 투자를 일컫는다.

10여년 동안 임팩트 투자 전문 투자사로 인지도를 쌓아 온 소풍벤처스는 너무 좁은 영역에 머물다 보니 스스로 사회적 가치를 특별히 지향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스타트업들은 소풍을 찾지 않았다. 가뜩이나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장에서 입지가 좁아진 것이다.

이에 소풍벤처스는 지난해부터 PR·마케팅 전략을 다시 세워서 ‘초기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로 리브랜딩했다. 당시 회사명이었던 ‘소풍’을 ‘소풍벤처스’로 변경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과거에는 SNS 채널, 보도자료, 콘텐츠 내보낼 때도 임팩트 액셀러레이터로 규정을 했지만 ‘초기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로 정체성을 확실히 했다.

상황 2 스타트업 콘텐츠 시대
도전 2 다채널 전략

스타트업 투자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사회적으로 스타트업 관련 관심이 늘어나자 콘텐츠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스타트업 투자 기관으로서 다양한 미디어 노출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특히 스타트업 미디어 환경은 보다 트렌디한 접근을 필요로 해 고난도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알려졌다.

소풍벤처스는 다양한 채널을 살리는 전략을 짰다. 콘셉트는 ‘휴머나이제이션’(인간화)으로 짰다. 다채널을 운영하지만 소풍벤처스가 풍기는 분위기의 결을 통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휴머나이제이션 콘셉트는 기존 소풍벤처스가 ‘임팩트 투자’, ‘착한 투자’ 등의 이미지를 잘 살리자는 복안이었다.

다만 채널별 특이점을 잘 파악해 콘텐츠를 다르게 했다. 네이버 블로그와 카카오 브런치는 둘 다 텍스트 블로그이지만, 소풍은 둘을 읽는 타깃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브런치에서는 전문적인 투자 및 창업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블로그에서는 초기 스타트업 투자업계 특유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외부 마케팅 플랫폼 참여도 적극적으로 임했다. 스타트업 업계 유명 유튜브 채널 ‘EO’의 스타트업 서바이벌 웹예능 ‘유니콘 하우스’에 최경희 소풍벤처스 파트너가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패널들이 창업 아이디어와 창업자를 선택해서 서바이벌 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이다.

최 파트너는 이 프로그램에서 소풍벤처스의 휴머나이제이션 전략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자신이 선택한 창업가를 위해 소리 높여 다른 투자사에게 반박하기도 하고, 탈락한 창업가를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도 보여주면서 ‘따뜻하고 인간적인 투자자’로 큰 화제를 모았다. 최 파트너는 프로그램 참여 이후 스타트업 업계에선 ‘셀럽’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풍벤처스 데모데이 모습
소풍벤처스 데모데이 모습

상황 3 우왕좌왕 콘텐츠
도전 3 핵심 내용에 대한 토의

채널이 다양해지면 콘텐츠가 어지럽게 흩어질 염려가 있다. 통일되지 않은 목소리를 내게되는 것이다. 일관된 이미지와 논리를 전개해야 하는 기업 마케팅에서 이런 흐트러짐은 하나마나한 마케팅을 낳기도 한다.

특히, 경영진 심사역 마케팅담당자 등 각자 고유 영역을 존중해주는 스타트업 투자사에선 쉽게 빠지는 오류이기도 하다.

이러한 통일성을 살리기 위해 소풍벤처스는 마케팅 담당자도 투자활동 중 논의에 같이 참여한다. 스타트업 투자는 심사역이 투자할 창업자를 선정한 후 내부 토의 과정을 거쳐 최종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마케팅 담당자도 밀접하게 소통하며 전후 과정을 파악하고 투자의 배경과 투자 대상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마케팅에 참고할 수 있다.

■ 마케터를 위한 포인트

소풍벤처스가 자리한 시장은 마케팅 영역에서는 아직 생소한 분야다. 기존 스타트업 투자 시장은 투자사와 창업자의 관계에서 투자사의 우월적 지위가 보장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투자사는 굳이 마케팅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케팅은 속된 말로 ‘아쉬운 사람이 한다’는 차갑지만 보통의 진리가 확인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불과 2~3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직 분석할 만한 구체적인 사례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구도는 분명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스타트업 벤처 투자 지원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고, 우아한형제들 컬리 직방 쏘카 등 기존 성공한 스타트업들이 재투자를 하면서 국내 스타트업 시장은 더욱 활발해 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풍벤처스가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이를 시행하려는 다양한 도전이 있었다는 자체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구민기 기자

■ 전문가 코멘트


□ 천성용 단국대 교수

벤처캐피털(VC) 회사는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해 인수합병, IPO 등을 통한 엑시트(exit)로 큰 자본 이득을 기대하는 금융회사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기술은 있지만 투자금이 부족하기 마련인데, VC가 이 문제를 해결해주고 그에 대한 금전적 대가를 얻는다.

상식대로라면 투자금을 필요로 하는 스타트업이 VC를 찾아가 사업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투자금을 얻어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시장의 유동성이 풍부해지고, 특히 정부의 스타트업 관련 정책 자금이 늘어나면서 일부 유망 스타트업들에 한해 ‘갑’과 ‘을’의 관계가 뒤바뀌는 현상이 자주 발견된다.

이에 따라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들은 자사의 성공을 가장 잘 도와줄 수 있는 VC를 골라서 투자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반대로 VC 심사역들은 좋은 스타트업의 선택을 받기 위해 오히려 ‘영업’을 뛰어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

다시 말해 이제 VC도 “브랜드 마케팅”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브랜드 마케팅이란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 서비스에 소비자들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만들어 경쟁자와 차별화를 시도하는 전략이다. 시장에서 차별화하기 어려운 제품, 서비스일수록 브랜드의 영향력은 커진다.

VC의 경우 운용자산 규모, 창업기업 수, 투자회수 실적 등이 가장 중요하지만 유망 스타트업은 VC의 가치제안, 전문성, 경험 역시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고려한다. VC를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가 아닌 파트너, 동반자, 조언자로 생각하고 함께 성장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VC가 공급하는 “돈”에 ‘더 좋은 돈’이라는 이름표가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VC가 저마다 강조하는 전문성, 경험 또한 눈에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이 때 VC가 경쟁사와 다른 차별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다면 더 쉽게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고, 경쟁사 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

또한, VC 심사역들의 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모든 스타트업을 일일이 심사할 수는 없다. 그런데 만약 차별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가진 VC가 있다면 좋은 스타트업들이 스스로 알아서 찾아오게 만들 수 있다. VC에 펀드를 공급하는 LP(Limited Partner) 입장에서도 실적 외에 평판, 전문성이 높은 VC를 찾을 수밖에 없는데, 이 역시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브랜드 마케팅이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소풍벤처스 역시 초기부터 ‘임팩트 투자자’라는 가체제안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최근에는 ‘초기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로 리브랜딩하며 차별적인 VC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자 노력 중이다. 이처럼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VC 업계에서도 마케팅 전문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결국 경쟁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마케팅이 필요하다.

□ 최현자 서울대 교수

스타트업은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기업을 가리킨다. 명확하게 정의된 용어는 아니라서 벤처기업, 초기기업 등과 혼용된다.

스타트업은 사업을 키우기 위해 투자를 받는데 액셀러레이터와 벤처캐피털(VC)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곳이다. 액셀러레이터는 VC와 달리 자금 투자 외에 스타트업에 멘토링, 교육, 사무공간 등도 지원한다.

상식적으로는 투자를 받으려는 측(스타트업)이 투자자에 비해 아쉬운 입장이다. 그래서 스타트업이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자신을 잘 포장해서 투자자들에게 어필하는 경우가 흔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유망한 스타트업에 투자해 큰 수익을 올리려는 수요가 크게 늘어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는 돈이 많아졌다. 유망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기회를 잡기 위해 여러 액셀러레이터와 VC가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소풍벤처스가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학계에서도 과거에는 투자를 받으려는 스타트업 입장에서의 연구가 많았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면서 최근에는 스타트업이 액셀러레이터나 VC를 선택할 때 어떤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들이 등장하고 있다.

한 연구는 많은 VC들이 투자 경쟁을 벌였던 11개 스타트업의 창업가를 인터뷰해 VC의 명성, VC와의 관계, VC가 제공하는 가치 증대 활동 등 세 가지 요인이 VC 선택에서 어느 정도 고려되었는지를 검증했다.

먼저, 좋은 스타트업에 투자한 경험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VC의 명성’은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후속 투자 유치 및 투자 후 원활한 소통을 뜻하는 ‘VC와의 관계’도 스타트업들이 중요하게 고려했다.

그러나 회사 가치를 키우기 위한 네트워킹이나 컨설팅을 가리키는 ‘VC가 제공하는 가치 증대 활동’은 예상과는 달리 도움이라기 보다는 부담으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풍벤처스가 ‘휴머나이제이션’(인간화)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우는 것은 스타트업들이 자사와의 ‘관계’에서 ‘인간적인 투자자’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다시 말해 휴머나이제이션을 앞세워 ‘VC와의 관계’에서 스타트업들에게 어필하려는 것이다.

케이스스터디 기사가 지적한 대로 스타트업 투자 시장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분야다. 그래도 우리가 익숙한 일반적인 마케팅 상황에 대한 시사점은 있다.

바로 ‘관계’의 중요성이다. 마케터는 고객이 자기 브랜드에서 어떤 관계를 기대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 관계는 소풍벤처스처럼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관계일 수도 있고, 믿음을 주는 관계 혹은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수 있는 무언가를 제공하는 관계일 수도 있다.

시장을 막론하고 마케터는 고객이 기대하는 관계의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그것을 충족시켜야 하며 VC시장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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