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로 번진 '성과급 본질' 논란…판사도 헷갈린다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성과급은 회사가 베푸는 복지일까, 엄연한 근로의 대가인 임금일까. 성과급 재원(財源)은 원래 주주들의 것일까, 아니면 근로자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금원일까.

2019년부터 대기업들을 상대로 본격 제기된 소송이 있다. 성과급도 평균임금이기 때문에 퇴직금을 계산할 때 포함시켜서 퇴직금을 다시 계산해 달라는 '평균임금 소송'이다.

SK하이닉스를 대상으로 첫 소송이 제기된 이후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삼성디스플레이, 현대해상화재, 삼성카드 등 주요 기업도 같은 소송에 휘말리면서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됐다. 최근엔 삼성노조연대 등 노조나 근로자들도 잇따라 소송을 제기하면서 귀추가 주목된다.

◆공공기관에서 시작...삼성 그룹, SK하이닉스, LG 등으로 번져

만약 성과급이 전부 퇴직금에 포함된다면 어떨까. 성과급 지급 시점부터 3개월 내에 퇴직하면 퇴직금의 규모가 달라지게 된다.

퇴직금은 퇴직 시점으로부터 직전 3개월치의 평균 임금을 구하고 여기에 근속연수를 곱해 계산한다. 30년 장기 근속자의 경우엔 퇴직 전 평균임금이 10만원만 올라도 총 퇴직금은 300만원이 늘어난다. 성과급 비중이 큰 기업이라면, 성과급 지급시점으로부터 3개월 안에 퇴직할 경우 퇴직금은 어마어마하게 올라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요즘처럼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역대급' 성과급을 지급하는 때에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성과급의 '본질' 논란으로 번지고 있는 이 소송의 시발점은 지난 2018년 대법원이 "공공기관의 경영평가성과급이 평균임금에 해당하므로 퇴직금을 계산할 때 포함시켜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다. 공공기관은 기재부의 기관평가에 따라 정해진 규모로 정해진 시점에 따라 '경영평가' 성과급을 전체 직원에게 일괄 지급한다.

발빠른 변호사들이 이를 "사기업에도 적용할 수 있다"며 각 대기업 퇴직자들을 상대로 소송단을 모집하고 앞서 언급됐던 주요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소송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소송 초반엔 회사가 연이어 승소하면서 확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노동 스페셜리스트' 민주노총 법률원이 참전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현대해상화재 사건에선 근로자들이 승소했고, 삼성전자 사건에서는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법에 근로자 956명이 퇴직금 청구 소송에서 승소해 업계에 충격을 줬다.

삼성 전자의 경우 같은 회사 근로자들이 관할을 달리 해서 두번(1, 2차 소송) 소송을 제기했는데, 먼저 제기한 1차 소송에서는 1심을 포함해 수원고법 2심까지 회사가 승소했다. 하지만 나중에 제기된 2차 소송 서울중앙지방법원 1심에서는 회사가 패소해 업계를 큰 혼란에 빠뜨렸다. 같은 기업에서 같은 성과급을 받는 근로자들의 승패가 엇갈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선고된 이 두 판결문을 비교해보면, 성과급을 바라보는 판사들과 우리 사회의 엇갈린 시선을 찾아볼 수 있다.

◆성과급 "원래 주주 것" vs "근로의 대가"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준 수원고등법원은 성과급이 개별 근로자의 근로와 상관이 없다고 판단했다. △성과급은 세계 및 국내경제상황, 경영진의 의사결정과 경영판단 등 개별 근로자들이 통제할 수 없는 요인으로 재원(財源)이 결정되고 △지급을 할지 안할지, 얼마를 줄지도 경영진에게 재량이 크고 경영실적에 따라 다르며 △단순히 매년 지급했다고 사업주가 지급의무를 지는 '노동관행'이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 재판부는 "성과급은 주주의 이익을 희생해서 근로자들에게 배분하는 것"이라고도 꼬집었다. 이어 "경영성과는 원래 주주의 몫이지만 경영자가 기업 내부에 유보할지, 아니면 성과급으로 지급해서 직원들의 동기부여를 할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근거로 "본래 주주 몫을 나눠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근로자에게 당연히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근로자의 근로 제공이 경영성과에 기여한 기여분은 이미 급여에 반영됐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도 퇴직금이란 것은 근로자가 보통 생활을 영위하는 '생활임금'을 보장하려는 취지인데, 퇴직을 어느 시점에 하느냐에 따라서 퇴직금이 달라지는 것, 퇴직 당시 어느 사업부에 있냐에 따라 퇴직금이 달라지는 것은 제도의 취지에 반한다고 봤다. 이를 근거로 "기업의 성과 배분은 임금이 아닌 복지"라고 판단했다.

반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단은 정반대였다. 재판부는 먼저 "개별근로자들의 근로제공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이 모이지 않으면 회사의 사업 수행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근로제공으로 사업목표를 달성한 결과로 지급한 것이므로 임의적이거나 은혜적 성질의 금원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지급해야하는 임금이고 △우리 사회에서 경영성과급 지급이 당연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인식과 관행이 형성됐고 △우리나라의 임금체계 상 성과급이 전체 급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한데, 오히려 이를 제외하는 것이 퇴직금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중견기업, 재직자에도 확산…대법원 결론에 주목

최근엔 소송이 다양한 방면으로 확장 중이다. 성과급 규모가 큰 대기업에서 중견, 제조업체까지 번지고, 퇴직자들 위주로 제기되던 소송이 이제는 재직자들에게도 확산 중이다. 재직자들은 자신의 퇴직연금 계좌에 성과급을 계산해서 추가로 납부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근로자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일각에서는 이런 소송에 불거질 경우 성과급 규모를 축소해서 재직자들에게는 불리하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재직자의 이익을 희생시킨다는 비판도 나온다. 반면 성과급 규모가 높은 기형적인 임금체계 개편을 불러올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현재까지 대기업 소송만 놓고 보면 현대화재해상을 제외하면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삼성전자1차 소송은 회사가 승소한 상태에서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이 노동계에 우호적인 판결을 많이 내놓은 데다, 법관들의 판단도 팽팽하게 맞서는 형국인만큼 결과를 섣불리 예상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대법원은 가장 먼저 상고심에 올라온 SK하이닉스 사건을 중심으로 추가된 삼성전자 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결론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사건의 파급효과에 주목하고 있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전원합의체로 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기세환 태광 노무법인 노무사는 "노동법 뿐만 아니라 노사관계, 임금체계 등 HR, 임금의 본질 이슈까지 종합적인 쟁점을 담고 있는 소송전"이라며 "사회 전반에 끼칠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 대법원에서 내릴 결론에 귀추가 주목된다"고 설명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