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 제공
사진=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러시아로부터 침공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나눴습니다.

문 대통령은 통화에서 “침략에 결연히 맞서 싸우는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용기와 희생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국의 지원을 요청했고, 이에 문 대통령은 “총 1000만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긴급 제공하기로 했다”고 답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후 우크라이나와 한번도 정상회담을 연 적이 없습니다. 국무조정실과 외교부가 지난달 발표한 '문재인 정부 정상외교 5년 성과 종합 점검' 보도자료에서도 우크라이나 사례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측은 한국 정부에 코로나19 대응 등과 관련해 정상회담을 지속적으로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20년4월 문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나누면서 "양국이 코로나19 사태를 함께 성공적으로 극복하여 양국 간 협력 관계를 한층 더 제고시키자"며 당해에 문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꼭 방문해 달라고 초청 의사를 밝혔습니다. 문 대통령은 “초청에 감사드린다”면서 “구체적 사항은 외교 채널을 통해 협의해 나가자”고 답변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문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은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해 1월 문 대통령의 생일(24일)에 SNS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역시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양 정상이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축하 서한을 교환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외교가에서는 한국이 러시아의 눈치를 보느라 우크라이나와 정상회담을 갖지 않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옵니다. 종전선언 등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대북 정책에 러시아의 협력이 필요한 만큼 이를 감안한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정상회담을 요청하는 국가가 많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모두 추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뒤늦게 러시아 제재에 나섰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DC 조야에선 한·미 균열의 모습까지 포착되고 있다고 합니다. 마크 패츠패트릭 전 미 국무부 부차관보는 “한국은 과거 침략의 피해자로서 대대적인 원조를 받았고 또다시 같은 일이 벌어져도 그런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점에서 수치스럽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미국으로부터 대러 제재 동참을 요구받는 와중에 "강대국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이 지금 어떤 나라에 휘둘리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문 대통령과 일반 국민들의 생각이 다른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