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침체로 기업들의 전환사채(CB) 발행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코스닥 중소기업들의 주요 자금 조달처인 CB 시장이 위축되면서 한계에 몰리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4일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작년 12월부터 지난달까지 3개월간 국내 기업의 CB 발행 규모는 총 1조3424억원으로 직전 3개월인 지난해 9~12월의 2조3811억원보다 43.6% 급감했다. 1년 전 같은 기간의 2조1835억원보다도 38.5% 줄었다. CB를 발행한 기업은 115곳에서 85곳으로 감소했다. 증시 분위기가 어두워진 데다 최대주주의 콜옵션 행사를 제한하고 주식 전환가격 상향을 의무화하는 등의 규제가 작년 12월부터 강화되면서 시장이 위축됐다는 분석이다.

CB는 일정한 조건하에 주식으로 전환할 권리가 붙은 채권이다. 주가가 올라 주식 전환이 이뤄지면 기업은 채무 상환 부담이 없어지고 유상증자 효과를 누리는 한편, 투자자들은 시세 차익을 얻는 구조다. 이 때문에 중소 성장기업이나 일시적으로 실적이 저하된 기업들이 자금조달 수단으로 선호한다. 2020년 현대로템과 HMM의 CB 투자자들이 단기간에 최대 두 배의 수익을 올리는 등 코로나19 사태 후 증시 활황 기간에 CB는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지난해 11월엔 하이브(옛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사모 CB로 한 번에 4000억원을 조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증시가 침체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올 들어 인플레이션 우려와 금리 상승 등으로 코스닥지수가 10%가량 급락하자 자산운용사와 연기금 등의 투자가 크게 위축됐다. 증시 전망도 밝지 않다. 미 중앙은행(Fed)의 추가 금리 인상이 예정된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미 경영난을 겪는 기업뿐 아니라 주가가 하락한 다수의 중소기업이 한계에 내몰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CB 가운데 주식으로 전환되지 않은 채권 잔액은 5355억원에 달한다. 주가가 전환가격 아래로 하락했거나 앞으로 주가 전망이 밝지 않은 기업이 상당수다. 주가가 떨어져 주식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조건을 조정해 더 많은 수의 주식으로 전환해주거나 만기에 채무를 상환해야 한다. 한 증권사 투자은행(IB)본부 관계자는 “CB의 주식 전환이 안된 상태로 채권 만기를 맞은 기업은 더욱 불리한 조건으로 CB를 재발행하거나 사채 시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