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시루 같은 열차가 레일 위로 달려간다. 객차에 들어가지 못해 지붕으로 올라간 사람, 화물을 싣는 자리에 불안하게 몸을 실은 사람, 활짝 열린 문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 표정 없는 수많은 얼굴에서 불안과 공포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화백(1913~1974)이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그린 ‘피난열차’다.

이 그림은 김환기의 부산 피란 시절 대표작으로 꼽힌다.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둡지 않다. 인물과 열차의 모양은 원과 사각형 등 기본적인 도형으로 단순하게 표현했고, 색채도 붉은색과 푸른색 등 밝은 원색을 썼다. 그래서 작품 발표 당시 일각에서는 ‘전쟁의 참상을 제대로 고발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서정적인 필치와 평면적 색채, 동일한 형태의 반복적 구성 등이 전쟁의 고통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장치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피란열차와 피란민의 모습이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일깨운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한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