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밀한 등압선에 강풍…"강원산지 모레까지 매우 센 바람"
올겨울 강수량 50년만에 최저…'전국이 메말라 불 나기 쉬운 조건'
울진에 건조경보·강풍주의보 동시 발령…산불진화에 최악
대기는 메말랐고 바람은 세차다.

불이 나서 번지기 쉬운 모든 조건이 갖춰진 상태다.

4일 오전 11시 경북 울진군에서 발생한 산불이 아직 진화되지 않고 있다.

산불은 한때 한울원자력발전소까지 위협했고 지금은 강원 삼척시까지 번졌다.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는 가장 높은 '심각' 단계로 격상됐다.

산불이 난 울진군은 현재 건조경보와 강풍주의보가 모두 발령된 상태다.

진화에는 최악의 환경인 셈이다.

울진평지 건조주의보는 지난달 15일 내려져 닷새간 유지되다가 같은 달 20일 건조경보로 격상됐다.

건조주의보와 건조경보는 각각 실효습도가 35% 이하와 25% 이하인 상황이 이틀 이상 계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내려진다.

실효습도는 나무 등이 얼마나 메말랐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50% 이하면 큰불이 나기 쉬운 상태로 본다.

울진평지 강풍주의보는 4일 오후 3시 발령됐다.

강풍주의보는 바람의 풍속이 시속 50.4㎞(산지는 시속 61.2㎞) 이상이거나 순간풍속이 시속 72.0㎞(산지 시속 90㎞) 이상일 것으로 예상될 때 발령된다.

현재 울진군만 이런 상황인 것은 아니다.

이날 오후 5시 14분께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도 입구 점포에서 불이 난 뒤 인근 대모산으로 불길이 옮겨가 산불로 커졌다.

소방 관계자는 "건조한 가운데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며 "인근 산으로 불이 더 번지는 것을 저지하는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상권 전역과 강원영동, 충북남부, 전남동부에도 건조특보가 발령돼 있다.

건조특보가 발령되지 않은 곳도 대기가 건조하긴 마찬가지다.

강풍특보 발령지는 수도권·강원·충청 등 중부지방, 경북, 전라서해안이다.

특히 기상청은 이날 오후 10시를 기해 강원남부산지·강원중부산지·강원북부산지에 강풍경보를 발효한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전남 일부와 제주에도 곧 강풍특보가 발표될 것으로 예상돼 강풍예비특보가 내려진 상태다.

기상청은 강풍특보가 내려진 지역에 5일(강원산지와 경북동해안은 6일)까지 풍속이 시속 35~60㎞ 이상인 매우 센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한다.

대기가 메마른 까닭은 올겨울 도통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1일부터 지난달 28일까지 전국 누적 강수량은 13.3㎜로 평년(89.4㎜)의 14.6%에 그치며 기상관측망이 전국에 확충된 1973년 이후 약 50년 만에 같은 기간 누적 강수량으로는 제일 적었다.

남부지방은 누적 강수량이 9.0㎜로 평년(95.1㎜)의 10%에도 못 미쳤다.

중부지방도 누적 강수량이 19.1㎜로 남부지방보단 많았지만, 평년(81.6㎜)의 22.7%에 불과했다.

전국 66개 기상관측 지점 가운데 올해 62일간 하루라도 10㎜가 넘는 강수량이 기록된 곳은 제주에 있는 4곳에 그친다.

나머지 62곳은 올해 들어서는 단 하루도 10㎜가 넘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동태평양에 고기압이 평년보다 강하게 발달하면서 우리나라 주변에선 저기압이 평소보다 동쪽에 치우쳐 약하게 발달하고 서쪽엔 기압능이 발달해 올겨울 비가 내리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기압능은 주변보다 상대적으로 기압이 높은 곳으로 일대가 맑다.

저기압이 평년처럼 강하고 위치도 지금보다 서쪽이었다면 남서쪽에서 습윤한 공기를 끌어와 비가 내릴 때 강수량을 늘렸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울진군과 같이 태백산맥 동쪽지역의 경우 최근 우리나라로 서풍계열 바람이 불어 들어온 점도 대기를 건조하게 만들었다.

서풍이 태백산맥을 타고 오를 때 온도가 떨어지면서 습기를 잃기 때문에 산맥 동쪽지역에선 '건조한 바람'이 된다.

강풍이 부는 이유는 기압계가 '남고북저'로 형성된 상황에서 고기압과 저기압 기압 차가 커서 기압이 같은 곳은 연결한 등압선의 간격이 조밀하기 때문이다.

등압선이 조밀하면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작용하는 기압경도력이 강해진다.

기압경도력은 기압 차에는 비례하고 기압 간 거리에는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고기압을 '공기의 산', 저기압을 평지라고 생각하면 '산이 높고 사면의 경사가 급할 때' 기압경도력이 커진다고 볼 수 있다.

기압경도력이 커지면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바람도 세게 분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