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급랭 저지 총력전에도 부양공간 제한…재정적자율 작년보다 낮은 2.8%
작년 경제충격 초래한 '구조개혁' 속도조절…부동산 추가 완화·저탄소 추진 현실화
5%대 성장도 만만찮은 중국…공동부유 대신 안정 '올인'
중국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장기 집권을 선포할 '대관식'이 될 20차 당대회가 열리는 올해 5%대 경제성장률을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안정 유지를 최우선 정책 기조로 제시했다.

중국이 30년여 년 만에 가장 낮은 성장 목표를 제시했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경제 성장 동력이 급속히 식어가는 상황이라서 전문가들은 중국이 올해 약속한 5%대 성장률을 지켜내는 것이 만만치 않은 과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더욱이 재정·통화 부양 정책을 동원할 공간이 넓지 못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대외 환경 불확실성도 고조되고 있어 중국이 작년까지 '구조개혁' 차원에서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공동부유와 저탄소 정책은 유연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 낮아진 경제 성장 눈높이
시장의 대체적 전망대로 중국은 5일 개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연례회의에서 '5.5%가량'의 경제 목표를 제시했다.

개혁개방 시대 들어 높은 경제 성장률을 이어온 중국이 6% 미만의 연간 성장 목표를 제시한 것은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사태의 여파가 지속되던 1991년 이후 31년 만에 처음이다.

중국은 작년 전인대에서 '6% 이상'의 목표를 제시하고 실제로 8.1%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닥친 2020년에는 높은 불확실성 탓에 성장 목표를 제시하지 못했다.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실제로 5%대를 나타내면 톈안먼 사태 이듬해인 1990년의 3.9% 이후 3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 된다.

중국의 연간 성장률은 2010년 마지막으로 두 자릿수인 10.6%를 기록하고 나서 추세적으로 하락하면서 '고속 성장기'에서 '중속 성장기'로 전환 중이다.

이후 성장률은 2011년 9.6%, 2012년 7.9%, 2013년 7.8%, 2014년 7.4%, 2015년 7.0%, 2016년 6.8%, 2017년 6.9%, 2018년 6.7%, 2019년 6.0%로 차츰 내려갔다.

이어 '코로나19 시대'라는 특수 환경에 놓인 2020년과 2021년은 각각 2.2%, 8.1%를 기록했는데 두 해 평균은 5.1%였다.

중국이 올해 비교적 낮은 성장 목표를 제시했지만, 안팎의 악재 속에서 경기가 급속히 둔화하는 추세여서 올해 '5% 방어전'을 치르는 것이 절대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고강도 규제가 부른 부동산 급랭, '제로 코로나' 정책 속 코로나19 확산 심화, 경직된 저탄소 정책에서 비롯된 작년 가을 전력 대란, 사교육 시장 초토화, 전방위 규제로 인한 빅테크(거대 정보기술기업) 사업 위축, 세계적 원자재 가격 급등 지속 등 여러 악재 속에서 작년 하반기부터 중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급격히 훼손되고 있다.

중국의 작년 분기 성장률은 기저효과에 힘입어 1분기 18.3%까지 올랐다가 2분기 7.9%, 3분기 4.9%, 4분기 4.0%를 기록, 뚜렷한 경기 둔화 추세를 보였다.

중국 당국과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가 올해 상반기까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본다.

래리 후 맥쿼리증권 중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작년 4분기 성장률이 4%밖에 되지 않았고 올해 상반기에도 5%에 달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올해 성장)목표가 근래에 가장 낮게 설정됐다고 하지만 이를 달성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5.6%에서 4.8%로 하향 조정했다.

◇ '쥐어짜기'식 부양…재정적자율은 작년보다 낮아져
5%대 성장도 만만찮은 중국…공동부유 대신 안정 '올인'
녹록지 않은 환경 속에서 중국 당국은 전인대를 통해 작년 12월 중앙경제공작회의 때 확정한 '안정 최우선'(穩字當頭) 정책 기조를 올해 경제 정책의 핵심 키워드로 제시하면서 강한 경기 관리 의지를 피력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정부 업무보고에서 "올해 우리나라 발전 과정에서 직면할 위험과 도전이 명확하게 증가해 언덕을 넘고 골짜기를 지날 수밖에 없다"며 "거시경제의 큰 판을 안정시켜 경제 운영이 합리적 구간에서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경기 부양 의지에 관한 수사에 비해 실제 내놓은 재정·통화 정책 '부양 패키지'는 작년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제한된 능력 범위에서 '쥐어짜기'를 한 성격이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매해 전인대 개막식 때마다 시장은 연간 경제성장률 목표를 뒷받침할 핵심 수치로 재정 적자율과 인프라 시설 투자에 주로 쓰이는 특수목적채권 발행액 목표 두 가지에 주목한다.

이 두 지표는 재정을 동원한 중국의 경기 부양 의지를 가늠하는 척도로 여겨진다.

그러나 중국이 올해 제시한 재정 적자율 목표치는 2.8%로 작년의 3.2%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특수목적채권 발행 한도액은 3조6천500억위안(약 703조원)으로 작년과 같았다.

작년 경기 안정화를 위해 1조위안대의 감세에 나선 가운데 부동산 시장 위축으로 지방 정부의 주요 세수 원천인 공공토지 매각 대금이 급감해 중국 당국이 경기 둔화 국면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재원은 빠듯해져 가고 있다.

이에 중국 당국은 공무원 급여를 삭감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는 가운데 경기 저점 고비인 1분기에 공공 투자를 집중하는 등 '효율성'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리 총리는 이날 정부 업무보고에서 기존 '적극적 재정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효율을 높이고 정밀성과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재정을 동원한 강력한 부양 패키지 활용이 더는 어려운 처지라는 점을 사실상 인정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재정 동원력이 한계에 부닥친 가운데 상대적으로 통화 정책의 역할이 중요해진 상황이다.

작년 12월 중국 정부가 '안정 성장' 기조로 전환을 선언한 뒤로 인민은행은 기준금리 성격의 대출우대금리(LPR)를 두 차례, 지급준비율을 한 차례 각각 내려 유동성 공급을 확대했다.

경기 저점의 고비가 될 상반기에 인민은행이 추가로 금리 또는 지준율을 내려 경기 안정화를 지원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딩솽(丁爽) 스탠다드차타드(SC) 중화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인민은행이 이달 지준율을 0.50%포인트 내리고, 4월에는 LPR 형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 금리를 0.1%포인트 낮출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달부터 본격적인 금리 인상에 들어갈 예정인 가운데 중국의 추가 통화 완화는 미중 금리 격차를 좁혀 외화 유출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 중앙은행의 긴축 기조와 반대로 가는 인민은행의 '역주행'이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도 많다.

리 총리는 이날 통화 정책 기조와 관련해 "온건한 통화 정책의 유연성을 더욱 높이고 유동성을 합리적으로 충족시키겠다"는 기존의 원론적 수사에서 더 나아간 표현을 쓰지는 않았다.

◇ 뜨뜻미지근한 부양책에 더 주목받는 부동산 규제·'제로 코로나' 완화
중국이 내놓은 부양 패키지가 뜨뜻미지근한 수준으로 평가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작년 중국 경제를 짓누르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당국 규제 정책의 변화 방향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작년 중국의 부동산, 사교육, 빅테크 분야를 중심으로 많은 민영 기업이 '공동부유'라는 총 기조 하에 이뤄진 중국 당국의 공격적인 규제로 큰 어려움을 겪었고 이는 작년 하반기부터 나타난 중국 경기 둔화에 가장 큰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한 '탄소 정점 도달'과 '탄소 중립'을 한데 모아 부르는 말인 '쌍탄(雙炭) 목표'는 작년 '공동부유'와 더불어 중국 공산당의 경제 기조의 양대 축이었다.

대약진 운동에 비유될 정도로 지나치게 경직된 탄소 배출 저감 정책 추진은 작년 가을 정점에 달한 전력 대란 사태를 초래하면서 가뜩이나 어려워진 중국 경제에 큰 충격을 가했다.

물론 이런 정책은 공산당이 시 주석의 장기집권 시대를 앞두고 통치 기반을 다지고 장기적으로 건강한 경제 구조를 만든다는 '개혁' 차원에서 추진됐지만, 급진적 '좌경 정책'은 단기적으로 자국 경제에 큰 충격을 안겼다.

결국 공산당은 작년 12월 중앙경제공작회의를 기점으로 경제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고 공동부유 등 '개혁'의 속도를 조절하는 노선 전환 방침을 밝혔는데 이날 전인대 개막식에서도 이 같은 방침이 재확인됐다.

중국은 전인대 개막식을 통해 자국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30%를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리 총리는 '집은 거주하는 곳이지 투기 대상이 아니다'라는 원칙을 고수하겠다면서도 주택 시장 수요자의 합리적 수요를 만족시켜나가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의 바람직한 순환과 건강한 발전을 촉진하겠다면서 추가 완화 조치를 통해 극도로 위축된 부동산 시장 살리기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시사했다.

왕군(王軍) 중위안(中原)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로이터 통신에 "경제가 상대적으로 큰 압력에 직면했을 때는 과감한 개혁 조치를 밀어붙이기 좋은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중국은 경제, 특히 소비를 억누르는 요인으로 지목돼온 '제로 코로나' 방역의 '미제 조정' 가능성도 시사했다.

리 총리는 "상시적인 방역 통제를 계속 잘 해나가는 가운데 부단히 방역 조치를 완비해나갈 것"이라며 "국부적 코로나19 발생 상황에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대처함으로써 정상적인 생활 질서를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