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5.5% 안팎'으로 제시했다. 31년 만의 최저치지만, 5%도 어려울 것이란 해외 전문가들의 예상보다는 크게 높은 수준이다. 부동산시장 침체와 우크라이나 사태 등 대내외 악재 속에 녹록치 않은 목표를 제시한 것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앞두고 민심을 다잡기 위해 나온 '강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고속 성장 목표, 고된 노력 필요"

리커창 중국 국무원(행정부) 총리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식에서 업무보고를 통해 경제성장률 목표 등 올해 주요 경제정책 방향을 내놓았다. 중국 총리의 전인대 업무보고는 그해 중국 국정운영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자리로 평가된다.

리 총리가 밝힌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목표치인 5.5% 안팎은 작년 전인대 때 제시한 '6% 이상'보다 내려갔다. 톈안먼 시위 유혈진압에 따른 서방과의 갈등 여파가 지속되던 1991년의 4.5% 이후 31년 만의 최저치다.

하지만 JP모간(4.9%)과 골드만삭스·노무라(4.3%) 등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예상보다는 상당히 높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중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5.6%에서 4.8%로 내렸다. 국무원 산하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이 작년 말 5.3% 성장을 예상하면서 정책 유연성 차원에서 '5% 이상'을 권고한 것과도 차이가 있다.

리 총리는 목표치에 대해 "고용 안정과 민생 리스크 방지를 주로 고려했다"며 "중국의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중고속(中高速)'의 성장 목표이며 고된 노력을 기울여야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심과 직결되는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일정 수준 이상의 성장률을 유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 강도 높은 부양책을 병행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이 공식 성장률 목표치를 내놓은 것은 1985년부터다. 이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은 단 1989년과 1998년, 2014년의 3번 뿐이다. 1989년은 톈안문 사태, 1998년은 아시아 금융위기가 주된 원인이었다. 2014년은 뚜렷한 이유가 없었음에도 목표에 미달해 중국 경제의 고도 성장 시대가 끝났다는 평가가 나왔었다. 하지만 30여년 동안 대부분 목표치를 초과달성해 왔다는 점에서 올해 제시한 목표 역시 어떻게든 맞춰낼 것이란 예상이 많다.

일자리 최우선으로 민심 안정

리 총리는 업무보고 목차에서 일자리를 경제성장률 목표 다음 2번째에 배치하면서 고용안정을 강조했다. 그는 "올해 1000만명 이상의 대학 졸업생이 구직 시장에 나온다"면서 작년과 달리 대졸자 수도 언급했다. 중국에선 올해 역대 최대인 1076만명이 대학을 졸업할 예정이다.

리 총리는 올해 1100만개 이상의 신규 도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작년 목표도 1100만개였으며, 경제성장률 8.1%를 기록하며 신규 일자리를 1269만개 창출했다. 올해 성장률 목표치(5.5%)를 달성한다 해도 작년보다 2.6%포인트 하락한다는 점에서 신규 일자리 1100만개는 난도가 높은 목표로 지적된다. 또 도시 실업률 목표는 작년의 '5.5% 좌우'에서 올해 '5.5% 이하'로 낮췄다. 작년말 기준 중국의 도시 실업률은 5.1%다.

저우하오 코메르츠방크 선임이코노미스트는 "청년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대졸자 일자리를 가장 많이 만들어내던 교육산업이 당국의 교육비 경감 정책에 초토화된 것이 부메랑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유기업 이익금도 털어

중국이 쓸 수 있는 부양책은 인프라 투자, 부동산 산업 등에서의 규제 완화, 코로나19 방역 강도 조절 등이 제시된다. 중국 당국이 스스로 꼽은 '3중 압력'인 수요 축소, 공급 충격, 성장 전망 약세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들이다.

중국이 올해 제시한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2.8%로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과 같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2020년 3.6%, 지난해 3.2%로 올렸던 적자율을 정상화해 부채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하지만 GDP 증가분 때문에 실제 재정지출 액수와 적자 규모는 더 커진다. 올해 중국 중앙정부 예산은 13조4045억위안으로 작년보다 12.8% 커졌다. 지방정부를 포함한 전국 예산(총 26조7125억위안)도 8.5% 늘어난다. 전국 예산 기준 재정적자는 작년 4조3783억위안에서 올해 5조6985억위안으로 1조위안 이상 증가한다.

중앙정부 예산 가운데 지방정부 재정을 지원하는 이전지출이 9조7975억위안으로 작년보다 17.5% 급증한다. 이전지출에는 중앙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국유 은행과 기업들이 쌓아뒀던 이익금 8000억위안도 포함돼 있다. 국유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지방정부 인프라 투자와 감세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의미다.

지방정부가 인프라 투자 목적으로 발행하는 특수목적채권 한도는 3조6500억위안으로 작년과 같다. 작년에는 전년 대비 1000억위안 줄였으나, 올해는 작년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인프라 투자 연속성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다시 등장한 감세

올해 리 총리의 업무보고에는 지난해 사라졌던 감세 목표액이 다시 등장했다. 올해 세금 환급 및 감세 예상액은 총 2조5000억위안, 이 가운데 데 중소기업에 대한 부가가치세 환급 등을 포함한 세액공제가 1조5000억위안에 달한다. 과학기술형 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 비용의 세액공제 비율을 75%에서 100%로 올리기로 하는 등 기업 활성화 방안들도 제시됐다.

리 총리는 부동산 시장의 바람직한 순환과 건강한 발전을 촉진하겠다며 "거래용 주택 시장이 구매자의 합리적 주거 수요를 만족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고강도 '제로 코로나' 방역정책과 관련해선 "과학적이고 정밀하게 코로나19 감염을 처리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정상적인 생활 질서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초고강도 방역에 대한 국민적 피로를 감안해 방역의 정밀도와 유연성을 높이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공격적 목표"

중국이 제시한 경기 부양 중심의 목표들은 2012년 집권 이후 5년의 임기를 2회 지낸 시 주석의 집권 연장과 연결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공산당은 올 가을 5년 주기의 당 대회를 열고 차기 지도부를 결정한다. 2018년 개헌으로 국가주석 3연임 제한 규정이 삭제되면서 시 주석이 다시 선임될 것이란 전망이 대체적이다.

30페이지 분량의 이번 업무보고에 '시진핑'이 12회 등장했다. 그 중 '시진핑 주석을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이라는 표현이 4차례, '시진핑 신시대 중국국특색사회주의 사상(일명 시진핑 사상)'이 3회 등장했다.

해외 전문가들은 중국의 목표가 '공격적'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레이먼드 융 ANZ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에너지 위기를 감안하면 기준금리 인하 정도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공급 충격에 대비하는 파격적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장즈웨이 핀포인트자산운용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인프라 투자 확대로 냉각된 내수 경기를 얼마나 되살릴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