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강원도 삼척과 강릉, 동해, 영월 산불 현장은 온통 잿빛이었다.
나흘간 휩쓴 화마의 기세가 꺾인 7일 산림청 헬기 영상을 통해 본 동해안 산줄기는 마치 융단 폭격을 맞은 듯 처참했다.
불탄 숯검정과 화마를 피한 숲, 인근 바다의 푸른빛이 선명하게 대비돼 피해 현장은 더 참담했다.
산림이 80%가 넘는 강원에서도 동해안은 봄만 되면 늘 아슬아슬하다.
불이 나면 대부분 대형산불로 번지는 자연 '화약고'다.
소나무 등 침엽수가 많다 보니 수북이 쌓인 솔가지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송진은 기름이 돼버린다.
이맘때 발생하는 '양간지풍'(襄杆之風) 또는 '양강지풍'(襄江之風)은 양양과 고성군 간성 사이, 양양과 강릉 간 국지적으로 부는 건조하고 강한 바람으로 봄철 동해안에서 부는 태풍급 강풍의 대명사다.
이번에도 봄철 동해안 특유의 건조한 날씨와 수시로 방향을 바꾸는 국지적 강풍이 피해를 키웠다.
삼척은 울진에서 최초 발화한 산불이 바람을 타고 북상하면서 피해를 봤다.
현재까지 650ha 산림이 잿더미가 되고 주택 1채와 군 초소가 불에 탔다.
경북 울진을 잇는 7번 국도를 따라 헌걸찬 풍광을 자랑하던 초록 지대는 무자비한 공습을 받은 듯했다.
마을을 둘러싼 산등성이는 시커먼 숯검정을 뒤집어썼다.
그나마 다행은 산불이 국내 최대 규모 삼척 LNG 생산기지를 비껴간 것이다.
대략 2km 떨어진 앞산까지 불길이 타들어왔으나 기지 앞 가곡천이 천연요새 역할을 한데다 진화인력의 혼신을 다한 방어로 고비를 넘겼다.
불길이 북으로 향할수록 상황은 더 심각했다.
마치 '망나니'가 한바탕 불춤을 벌인 듯했다.
탄광 지대를 보듯 모든 게 까맣고, 산을 채웠던 아름드리나무들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타다 남은 나무들조차 아궁이 속 부지깽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광풍을 등에 업은 화마는 산불진화대 진입 자체가 어려운 산세가 깊고 험준한 곳만 골라 옮겨 다녔다.
사투 끝에 큰 불길은 잡히는 상황이지만 검은 잿바람이 피어오르는 산불 현장은 황량했다.
영월 김삿갓면 외룡리 일대 80ha가 넘는 산림은 완전 잿더미로 변했다.
'악산'(惡山)으로 불릴 정도로 산세가 험한 탓에 육상 진화는 어려움이 많았다.
마을 뒷산 능선을 넘나들며 울창한 숲을 헤집어놓던 불길은 산림 헬기가 집중하여 투입되면서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지만, 뿌연 연무가 변수였다.
강릉 옥계에서 방화범의 소행으로 발생한 또 다른 산불은 동해시 주민들의 삶을 빼앗아갔다.
강릉과 동해의 산림피해는 4천ha가 넘는다.
사흘간 70여 채의 주택이 전소되고 24채가 일부 불에 타는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강릉은 불길이 잡혔지만, 삼척과 동해는 화마가 버티고 있었다.
이미 해변 주변 도시를 감싼 산등성이는 풀 한 포기 남아 있지 않았다.
동해지역 산불은 특히 도심 주택가와 묵호항 인근까지 번져 피해가 더 컸다.
사흘 전부터 동시다발로 도깨비 불길이 일고, 엄청난 연기가 뿜어져 아수라장이 된 현장은 겨우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러나 뿌연 연기가 걷히자 화마가 할퀴고 간 살점이 드러났다.
묵호등대와 논골담길로 명성을 얻어 관광객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묵호동 일대 마을은 초토화됐다.
창을 통해 일출과 바다 풍경을 나누던 마을은 폐허가 됐고, 삶의 터전은 숯덩이만 남겼다.
마음을 추스르고 피해 현장을 찾은 주민들은 지독한 연기가 코를 찌르는 현장에서 복구의 손길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