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분양 중인 아파트 전경. 사진=연합뉴스
대구에서 분양 중인 아파트 전경. 사진=연합뉴스
청약시장 분위기가 차갑다. 내놓기만 하면 '완판'이던 작년과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조기 완판에 실패할 것을 우려한 사업장들이 금융 지원 등의 '고육지책'을 짜냈지만, 수요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이자 지원에도 경쟁률이 예전 같지 않은 데다 일부 사업장에선 줄줄이 미달 사태가 나고 있다. 분양 전문가는 "부동산 시장이 주춤할 때 나타나는 현상들"이라며 "실수요자들이 '옥석'을 가리는 중"이라고 평가했다.

10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 8일 1순위 청약을 받은 'KTX송도역 서해그랑블 더파크'는 일부 면적대를 제외하고 일제히 한 자릿수 경쟁률을 기록했다. △전용 75㎡A 5.92대 1 △전용 75㎡B 4.50대 1 △전용 75㎡C 7.10대 1 △전용 77㎡ 6.17대 1 △전용 84㎡B 5.67대 1 △전용 84㎡C 4.76대 1 등이다. '인천의 강남' 송도국제도시가 있는 연수구에서 분양한 것치고는 아쉬운 성적표다.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에 들어서는 ‘평택화양 휴먼빌 퍼스트시티’는 지난달 1순위 청약받았는데 대부분의 면적대에서 미달이 나왔다. △전용 59㎡A △전용 59㎡B △전용 74㎡는 1순위와 2순위 해당·기타지역에서 모두 미달이 나왔다. 전용 84㎡는 1순위 해당 지역에선 미달이 됐지만, 기타지역에서 1.54대 1의 경쟁률이 나왔다.

경북 경주시 건천읍에 지어지는 ‘신경주 반도유보라 아이비파크’ 청약 성적도 부진했다. 지난해 말 청약을 진행한 B4지구는 △전용 74㎡ △전용 84㎡A △전용 84㎡B △전용 84㎡C 1순위와 2순위 해당·기타지역 전부 미달했다. B5지구 역시 마찬가지다. B4지구 1090가구 모집엔 356건이, B5지구 389가구 모집에 14건이 접수됐다.

이들 단지는 중도금 대출 무이자를 적용했다. ‘KTX송도역 서해그랑블 더파크’는 분양가의 60%인 중도금에 대해 무이자로 대출하기로 했다. 사업자가 이자를 대납해주는 방식이다. ‘평택화양 휴먼빌 퍼스트시티’와 ‘신경주 반도유보라 아이비파크’도 같은 방식이다.

'중도금 이자 대납', '이자 후불제', '계약금 정액제' 등은 요즘같이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 유독 많이 보이는 방식이다. 당장 실수요자가 부담해야 할 금융 부담을 사업자 측이 부담해 계약률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서울 시내 한 은행 영업점 대출창구 모습. 사진=뉴스1
서울 시내 한 은행 영업점 대출창구 모습. 사진=뉴스1
분양업계 관계자는 "적게는 인당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이상 들어가기 때문에 파격적인 조건임에 틀림없다"며 "그럼에도 사업자 입장에선 추후 더 큰 손실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런 '묘책'을 통해 계약률을 끌어올리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수요자들 입장에선 사업자 측의 '고육지책'에도 청약 통장을 아끼고 있다. 우선 올해 들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강화됐다. 총대출액이 2억원을 넘을 경우 연 소득 40%의 DSR 적용 대상이다. 잔금 대출도 여기 포함된다. 돈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청약을 넣기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 금리 역시 덩달아 영향을 받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월 은행 가계대출 가운데 신규취급 기준 집단대출 금리는 연 4.13%다. 2013년 7월 이후 8년여 만에 다시 연 4%대 금리로 올라선 수준이다. 분양가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만큼 수요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이자 부담도 커지는 것이다.

이 밖에도 투기과열지구와 분양가상한제 적용 주택은 당첨 이후 계약을 포기하면 10년 동안 재당첨이 제한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또 다른 분양업계 관계자는 "대출 규제, 높은 분양가 등과 함께 대단지, 입지 등 실수요자들이 다양한 측면에서 분양시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들이 '옥석 가리기'를 하는 것이다"면서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이 되는 요인이 많기 때문에 청약하기 전 신중하게 따져보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고 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