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확산 초기 매캐한 연기·불길 노출된 70∼80대 3명 구조
급박한 현장 상황 알리기도…"겁났지만 사람 구하는 게 우선"
[동해안 산불] 동해 묵호 '산불 전쟁터' 속 노인들 구한 경찰관
"저 밑에 어르신이 대피를 못 하고 계세요.

", "저쪽 집에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가 있어요.

", "조금만 더 가면 집이 하나 있는데 할머니가 혼자 계세요.

"
강릉·옥계에서 시작한 화마(火魔)가 동해까지 마수를 뻗친 지난 5일 오전 묵호동 일대가 온통 매캐한 연기로 휩싸였다.

동해경찰서 묵호지구대 소속 이규현(52) 경위와 윤아련(27·여) 순경은 "해맞이길에 불길이 옮겨붙었다"는 무전을 듣고 '주민들을 대피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시내에서 해맞이길로 순찰차 핸들을 틀었다.

묵호등대 인근 해맞이길에 접어든 오전 11시 43분께 도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연기가 자욱했다.

도로 양옆에는 이미 불길이 옮겨붙어 번지고 있었다.

사이렌을 울리며 진입했지만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순간 한 차량 운전자가 다급히 순찰차를 세우더니 마을에 대피하지 못한 어르신이 있다고 알렸다.

[동해안 산불] 동해 묵호 '산불 전쟁터' 속 노인들 구한 경찰관
주민 말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2분가량을 더 들어가자 벤치에 다리가 불편해 대피하지 못한 안모(73·여)씨가 있었다.

그렇게 안씨를 태워 이동하려 하자 이번에는 고무장갑을 낀 주민이 순찰차를 세워 아랫집에 장애가 있는 80대 할아버지가 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한사코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겠다는 할아버지의 고집을 꺾지 못한 채 할아버지를 집에서부터 도롯가까지 부축해 마을을 빠져나가는 경찰에게 이번에는 여성 주민이 다가와 거동이 불편해 대피하지 못한 80대 할머니가 있다고 알렸다.

이 경위와 윤 순경은 노인들을 망상컨벤션센터 대피소로 무사히 옮겼다.

두 경찰관이 구조한 이들은 모두 홀로 사는 노인들로, 마을에 진입했을 당시 동해 도심으로 불길이 막 옮겨붙던 시점이어서 하마터면 큰일이 날뻔했다.

이 경위는 "순찰차 문을 열었는데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였다"며 "마을로 들어가면서도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반쯤 들어갔을 때는 '다시 돌아서 나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동해안 산불] 동해 묵호 '산불 전쟁터' 속 노인들 구한 경찰관
두 경찰관은 상황 파악이 전혀 되지 않은 현장에서 무전으로 급박한 현장 상황을 전파하는 파수꾼 역할까지 했다.

이 경위는 "3년 전 산불로 망상오토캠핑장이 탈 때도 동해에서 근무했고, 10여 년 전에 큰 산불이 났을 때 진화한 적도 있어 본능적으로 몸이 마을로 움직였다"고 말했다.

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윤 순경은 "처음 겪는 산불이라 겁도 났지만, 사람을 구하는 게 우선이니까 이 경위님을 믿고 들어갔다"고 고백하며 "경찰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겸손해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