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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서 ‘완전 경쟁’은 가장 이상적인 시장 형태로 간주한다. 하지만 기업으로선 악몽이다. 치열한 경쟁은 끝이 나지 않고, 빈약한 이익률은 다음 번 혁신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어렵게 한다. 어떻게 해서든 완전 경쟁에서 벗어나야 숨을 쉴 수 있다.

《독점의 기술》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성공한 기업으로 남으려면 독점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독점을 찾아라! 이것이 어떤 비즈니스에서든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법칙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독점은 각종 폐해를 불러일으키는 독점이 아니다.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바탕으로 한 합법적이고 자연스러운 독점이다. 책에서 말하는 독점은 “특정 장소나 특정 시기에 제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유일한 판매처”라는 의미다.

[책마을] '대체 불가' 경쟁력이 일류 기업 만든다
일본의 자동차 회사 혼다는 2000년대 초 미국에서 뒷좌석이 접히는 미니밴 ‘오디세이’를 팔았다. 원하는 만큼 짐을 실을 수 있었다. 반면 도요타의 ‘시에나’는 트렁크 공간을 늘리려면 뒷좌석을 빼야 했다. 다른 자동차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닛산이 2004년 신형 ‘퀘스트’를 내놓기 전까지 뒷좌석이 접히는 미니밴은 혼다의 오디세이가 유일했다. 책은 이것 역시 독점으로 본다. 비록 독점 기간은 5년가량에 불과했지만, 이 기간에 혼다는 미국 미니밴 시장 전체 이익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획득하는 게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래서 워런 버핏은 ‘경제적 해자’(경쟁사가 쉽게 넘볼 수 없는 진입장벽)를 가진 기업에 투자하라고 했다. 일론 머스크와 페이팔을 공동 창업한 피터 틸은 《제로 투 원》에서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고 했다. 하지만 기업이 독점적 지위에 오르게 되는 과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흔히 경쟁자가 따라올 수 없는 월등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장악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뛰어난 제품이나 서비스, 브랜드가 독점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별 볼 일 없던 기업이 조용히 독점적 지위를 구축한 후 이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를 쌓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 월마트는 초창기 미국 소도시에 집중적으로 점포를 냈다. 이런 도시에선 인구가 적어 두세 곳의 대형 할인점만 들어설 수 있었고, 월마트는 그렇게 지역 독점체제를 구축했다. 독점에서 나오는 안정된 자금은 물류 등에 재투자돼 월마트가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저가 항공사로 성장한 제트블루도 마찬가지 사례다. 1990년대 미국 뉴욕의 JFK공항은 한산했다. 라과디아공항이나 뉴어크공항보다 뉴욕 시내에서 멀었고 교통도 불편했다. 주요 항공사가 JFK공항을 기피했다. 그런데 2000년 등장한 제트블루가 싼 항공료를 내세우자 사람들은 멀어도 JFK공항까지 몰려왔다.

이렇게 독점의 기회는 어디든 있다. 책은 새로운 독점을 찾는다면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살펴보라고 말한다. 첫째는 충족되지 않은 수요, 둘째는 타성에 젖은 현재의 서비스 제공자, 셋째는 잠재 수요를 끌어올 방법이 있는가다. 1980년 설립된 24시간 뉴스 채널 CNN은 폭스뉴스가 등장한 1996년까지 16년 동안 이 시장을 독점했다. 케이블TV 시장이 개화하면서 이를 채울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었는데도 기존 방송사는 안일하게 생각했다. 방송사 전체에서 볼 때 규모도 작고 수익도 많지 않은 분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4시간 뉴스 채널은 한 번 취재한 내용을 20~30차례 계속 내보낼 수 있었다. 더 적은 비용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틈새시장이었던 셈이다.

반대로 지금 독점을 누리고 있더라도 대체 가능한 것이 생기는 순간 독점은 사라진다. 혼다의 미니밴이 그랬고, 렉서스에 미국 고급자동차 시장을 내준 메르세데스벤츠가 그랬다. 시어스백화점은 인근에 집수리에 필요한 물품을 파는 홈디포 매장이 들어설 때 자신들과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점점 수익을 잠식당했다.

독점을 지키고 싶다면 현재에 만족해선 안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항상 독점할 다음 시장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이미 내부에서 나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회의 시간에 ‘이건 우리 비즈니스 영역이 아니야’라거나 ‘그런 분야는 돈이 안 돼’라며 묵살됐을 수 있다. 신입사원의 마음으로 익숙했던 것을 새롭게 봐야 한다.

2005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책이라 인용된 사례 중 오랜 것이 많다. 하지만 기업과 산업을 분석하는 시각은 지금 읽어도 설득력이 있다. 간결함 속에 꼭 필요한 내용만 담은 점도 돋보인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