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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稅吏)들은 처음부터 빈틈이 없었다. 영국에선 1066년 노르만 침입 이전부터 모든 굴뚝과 난로에 세금이 부과됐다. 징수원들은 6개월에 한 번씩 남의 집에 들어가 화덕과 난로 개수를 빠짐없이 셌다. 세금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명예혁명 이후 난로 대신 창문에 세금이 붙자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창문을 틀어막았다. 1746년 유리에 세금이 도입되자 관련 산업 성장이 순식간에 멈췄다. 까마득한 예부터 인간의 삶에 들러붙어 죽을 때까지 떨어질 줄 몰랐던 세금은 그렇게 역사의 흐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다.

《세금의 세계사》는 고대 수메르 시대부터 디지털 기술과 암호화폐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세금에 관한 관념이 무너진 현대까지 세금에 얽힌 역사를 총체적으로 살펴본다. 수많은 전쟁과 종교, 혁명, 경제 발전의 중심에는 세금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유려한 필치로 흥미롭게 전한다.

세금은 문명의 시작과 함께 등장했다. 세금은 곧 권력이었다. 모든 전쟁은 다양한 형태의 세금으로 비용을 충당했다. 피라미드부터 백악관까지 주요 건축물은 세금이 없었다면 지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세금을 거둘 수 없게 됐을 때 왕이든 황제든 즉각 권력을 잃었다.

정부 권력은 세금을 거두는 데 필사적이었다. 14세기 이후 서구에서 권력자들은 인두세를 부과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직업이나 조상, 신체적 특징에 따라 성(姓)을 부여했다. 19세기 영국에선 마차, 수레, 벽돌, 유리, 벽지, 헤어 파우더, 외투, 시계는 물론 문장(紋章)에도 과세했다. 산업혁명기 22파운드를 버는 노동자는 간접세로 11파운드나 지불했다.

자연스레 생애 소득의 가장 큰 몫은 세금이 차지했다. 오늘날 영국 중산층 전문직은 평생 정부에 평균 360만파운드(약 58억원)를 낸다. 중세 농노가 영주의 보호를 받는 대가로 1주일의 반 이상을 영주의 토지를 경작해야 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것이다.

[책마을] 성장 멎게 하고 혁명 부른 세계의 굴뚝稅
통치자들은 각종 도덕적 명분을 들며 세금 부과를 정당화하려고 했다. 중세 시대 군주들은 전쟁에 나가고 싶지 않은 기사들로부터 ‘병역면제세(비겁세)’를 거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득세를 도입한 미국 정부는 새로운 세금에 ‘승리세’라는 이름을 붙여 본질을 호도했다. 조지 오스본 전 영국 재무장관은 국민 건강증진을 위해 설탕세를 도입한다고 주장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는 이유를 들어 유류세를 도입했다.

대부분 세금은 시작은 미미했으나 결과는 창대했다. 거의 모든 세금은 필요에 의해서, 임시세로 시작했다가 영구세로 바뀌었다. 도입할 때는 적은 금액이었다가 갈수록 납부액이 불었다. 현대사회 들어 세금은 제어장치를 잃고 몸집을 불렸다. 미국인은 평균적으로 소득의 38%를 세금으로 납부하고 영국인은 45%, 프랑스인은 57%를 세금으로 낸다.

세금은 역사와 문명의 향방에 결정적 역할을 하곤 했다. 마리아와 요셉은 세금을 내기 위해 베들레헴에 갔다가 예수를 출산했다. 개종한 자에겐 세금을 면제했던 덕에 이슬람교는 세력을 빠르게 확장했다. 인두세와 소금세는 프랑스 혁명을 불렀고, 설탕세와 인지세 도입은 미국 독립의 도화선이 됐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영국과 미국에 소득세가 도입됐다. 영국 대처 정부를 끌어내린 것도 주민세 도입이었다.

세금이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많은 이들이 세금에 둔감해졌다. 오늘날 대부분 세금은 모르는 사이에 원천징수되는 탓이다. 세금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개혁은 나중에 하겠지 하면서 미뤄지길 거듭할 뿐이다.

하지만 세금 징수는 결코 불변의 신성한 존재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고전적인 세금관을 뒤흔들고 있다. 고용 없는 대기업의 등장, 긱 경제의 부상,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가 급변하면서 세금 징수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세금은 줄이는 게 좋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세금은 사회의 부담이며 성장의 장애물이란 시각이다. 세금을 줄여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도 본다. 세금이 줄면 오히려 세수입은 늘고, 탈세는 줄어든다. 그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소득세, 부가가치세를 모두 합쳐 세금이 전체 소득의 15%를 넘지 않는 사회다. 당연히 법인세는 없다. 과연 그런 이상향이 도래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