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9% 상승했다. 두 달 연속 40년 만에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 유가 부담이 커지면서 당분간 물가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노동부는 올해 2월 CPI가 1년 전보다 7.9% 올랐다고 10일 발표했다. 1982년 1월(8.4%)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전달 상승률(7.5%)은 물론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7.8%)보다도 소폭 높았다.

에너지 식품 등 변동성이 큰 지표를 제외한 근원 CPI는 1년 새 6.4% 증가했다. 월 평균 근원 CPI 상승률은 0.5%로 전달(0.6%)보다 소폭 줄었다.

이날 발표된 CPI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 정책을 결정할 때 참고하는 주요 지표다. Fed는 오는 15~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연다. 이 자리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FOMC 개최 전 마지막으로 발표된 CPI가 예상대로 높게 나오면서 Fed가 금리 인상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 탓에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상승) 우려가 커지면서 Fed가 금리를 급격하게 올리지 못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이날 발표된 물가지표에는 전쟁 후 급등한 휘발유 가격 등은 완전히 반영되지 않았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당초 이달 중 미국의 물가 상승세가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했다. 전쟁 시작과 함께 에너지 비용이 급등하면서 물가 정점 예상 시기는 좀더 미뤄졌다.

앰허스트 피어포인트의 스테판 스탠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3~4월 CPI에 (전쟁으로 인한) 휘발유 가격 상승분이 반영될 것”이라며 “다음달 연간 CPI 상승률이 9%에 육박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미국의 연간 CPI 상승률이 마지막으로 9%를 넘었던 것은 1981년 11월(9.6%)이다. 영국 내셔널웨스트민스터은행은 유가가 배럴 당 200달러에 도달하면 4월 CPI 상승률이 9.7%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날 유럽중앙은행(ECB)은 가파른 물가상승세를 고려해 돈줄 죄는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올해 2분기 내내 400억유로로 확대하려던 자산매입 프로그램(APP) 계획을 바꿔 다음달 400억유로, 5월 300억유로, 6월 200억유로로 매입 규모를 줄일 방침이다. 연 -0.5%인 예금금리와 0%인 정책금리는 동결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