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 패배한 더불어민주당과 승리한 국민의힘의 분위기가 확연하게 다릅니다.

민주당 분위기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대선 패배를 책임지고 물러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 10일 "승리를 안기지 못한 책임에 통감한다"면서도 "우린 정말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후보가 역대 민주당 대선 후보 가운데 최고 득표수와 득표율을 올린 데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의 득표율 차이는 0.73%포인트에 불과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선 직후 SNS에 "지고도 지지 않은 선거도 있는 법"이라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여러분은 패배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임 전 실장은 "어느 때보다 간절함이 컸던 선거라 힘이 들고 많이 아프다"면서도 "우리가 가져야 할 가치와 철학과 태도를 잃지 않은 훌륭한 선거였다"고 평가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오히려 승리한 국민의힘의 '패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강훈식 민주당 전략기획본부장은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이준석 대표가 집권당 대표가 되는 것에 여성의 두려움이 있다. 그런 것이 (선거 결과에) 반영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박지현 민주당 여성위원회 부위원장도 "이 대표의 혐오 정치 전략, 세대 포위론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부분에 대해 이 대표는 책임을 느끼고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정치권에서 좀 떠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대선에서 승리한 국민의힘 분위기는 "이못싸(이겼지만 못 싸웠다)"에 가깝습니다. 탄핵으로 정권을 빼앗긴 지 5년 만에 대선을 승리로 이끈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게 오히려 '선거 책임론'이 제기되면서 '내홍' 조짐까지 보이는 겁니다.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은 라디오 방송에서 이 대표 책임론에 대해 "조금 다루기가 어려운 일"이라면서도 "20·30대 중에서 여성 표가 우리에게 이번에 아픔을 줬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미경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 대표의 '세대 포위론'에 대해 "적절한 전술은 아니었다"며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윤 당선인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약속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두고도 당내 이견이 노출됐습니다. 서울 서초갑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조은희 전 서초구청장은 라디오 방송에서 "여가부를 부총리급으로 격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윤 당선인의 호남 득표율이 이 대표가 공언한 20%에 한참 밑돈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왔습니다.

이 대표는 이런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이 대표는 "보통 조종석에 앉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왜 라과디아로 바로 회항해서 착륙을 시도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이야기를 한다"며 책임론을 반박했는데요. 희생자 없이 비행기를 무사히 비상 착륙시켰는데도 책임론에 휩싸였던 영화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의 주인공에 빗댄 겁니다.

이 대표는 "신(新) 지지층 확장은 보수정당의 생존 문제"라며 "20·30세대, 호남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지지자가 있다면) 찾아가서 정책을 개발하고 고민하겠다"고 맞섰습니다.

'여가부 부총리급 격상' 주장에 대해서는 "당선인의 정책을 적극 지원해 국정 운영의 안정을 가져와야 할 책임이 있다"며 "대선 공약에 대한 비판이나 지적은 가볍게 하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정권교체론이 높았는데도 윤 당선인의 득표율이 기대에 못 미친 사실을 두고 국민의힘 내부가 쪼개진 건데요. 윤 당선인은 왜 예상보다 득표율이 낮았을까요?

전날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당선인에게 투표한 423명을 대상으로 '윤 후보에게 투표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2개까지 자유 응답)라고 물은 결과 응답자의 39%는 '정권교체'를 꼽았습니다. 이어 '상대 후보가 싫어서, 그보다 나아서'란 응답이 17%, '신뢰감' 15%였습니다.

반면 윤 당선인에게 투표하지 않은 457명에게 투표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경험 부족'이 18%로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또 '무능과 무지'가 13%, '검찰 권력과 검찰 공화국' 6%, '가족 비리·비호감' 각 5%로 뒤를 이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뽑은 417명에게 '이 후보에게 투표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물은 결과에서는 '상대 후보가 싫어서, 그보다 나아서'란 응답이 26%로 가장 높았습니다. 이어 '경험과 경력'이 20%, '능력' 18%, '잘할 것으로 기대·정책과 공약'이 각 13%, '민주당 지지 및 정치 성향 일치'가 11%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민의힘이 선거 결과를 두고 내전을 벌이는 동안 민주당은 지난 11일 새로운 원내대표를 '교황 선출 방식'으로 뽑기로 결정했습니다. 소속 의원 전원이 후보가 되고, 한 사람이 과반의 득표를 얻을 때까지 무제한 투표를 진행하겠다는 겁니다. 원내대표 선거 과정에서 당내 분열과 갈등이 노출되는 걸 차단하기 위한 취지입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나 봅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