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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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까지의 세계 주식 시장은 구글과 메타 등 소위 테크주의 약세, 그리고 금속과 에너지 등을 중심으로 한 원자재주의 강세로 요약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여러 전문가들이 원인을 진단한 바 있다. 코로나19로 유동성이 풀린 상황에서 테크주에 몰렸던 돈이 금리인상을 앞두고 빠져나오고 있다는 것. 그리고 공급망 혼란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이 단순히 1~2년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10년 이상의 장기 사이클이 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놓은 사람이 있다. 모건스탠리에서 신흥시장 투자를 통괄하고 있는 루치르 샤르마 사장이다.

테크주와 원자재주의 역사적 디커플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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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 28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현재를 테크주와 원자재주의 장기 사이클이 엇갈리는 변곡점으로 분석했다. 테크주와 원자재 주는 역사적으로 한쪽이 호황을 누리면 다른 쪽이 어려움을 겪는 관계를 지속해 왔다는 것이 이유다.

미국 증시에서 원자재주가 본격적으로 비상한 것은 1950~1970년대까지다. 2차 오일쇼크에 원유값이 오르며 1980년대에는 미국 전체 주식시장 가치의 60%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때 테크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 테크주의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 닷컴버블을 앞둔 2000년 테크주가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이르렀다. 이때 원자재주의 비중은 크게 쪼그라들어 10%에 그쳤다.

최근 테크주의 비중은 40%지만, 원자재주는 금속과 에너지를 합쳐 5%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2000년 정점을 찍은 테크주의 시장 비중이 서서히 감소하고, 다시 원자재주의 비중이 늘어날 때가 됐다는 것이 샤르마의 주장이다.

"석유가 데이터를 압도할 것"

단순한 주가 움직임만 놓고 테크주와 원자재주의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10년간 두 분야에 들어간 연구개발·시설 투자의 규모와 성과를 감안할 때 테크주의 가치는 부풀려졌고, 원자재의 희소성에 무게가 실릴 시점이라는 것도 이유다.

펜데믹 이후 디지털 및 가상현실 등에 대한 투자가 늘며 테크 관련 투자는 전체 기업 투자의 52%에 이른다. 하지만 이같은 투자는 부풀려진 기대감에 비해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 증시에서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2조6000억달러로 그중 85%가 테크 기업이다.

특히 페이스북에서 이름을 바꾼 메타의 주가 급락은 테크주 대부분에 낀 거품을 말해준다는 것이 샤르마의 설명이다. 재작년 연간 실적보고회를 통틀어 메타버스라는 이름을 단 한번만 언급했지만, 작년에는 분기에 100번 이상을 언급했다.

이처럼 테크 기업들이 투자 및 기대에 부응하는 수익성을 올리지 못하는 동안 실물 자산 및 소비재의 가격은 크게 올랐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도 테크주에 투자하는 것보다 집이나 차량을 구입하는데 들어갈 돈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이와 상반되게 원자재주의 호황은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역시 테크 기업과 반대로 원자재 기업들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다.

탄소 감축이 강조되는동안 광산 및 석유 시추 등과 관련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에너지 기업들은 1988년 이후 처음으로 시설 감가상각비보다 적은 돈을 에너지 생산설비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공급 혼란과 관계 없이 적지 않은 기간의 에너지 품귀가 예상되는 이유다.

탄소 저감 노력은 오히려 원자재 기업들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전기차는 내연차의 3배, 풍력 발전소는 화석연료 발전소의 10배 이상의 구리가 필요해 관련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샤르마는 다음과 같이 예견했다.

"2010년대에 테크 업계에서 가장 유행했던 말이 '데이터는 미래의 원유'라는 것이었다.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말은 2020년대 '원유가 미래의 데이터'라는 말로 뒤바뀔지 모른다."

분석의 한계와 실현 가능성

신문 기고에 따른 분량의 한계인지 모르겠지만 샤르마의 글을 읽다보면 의문이 드는 부분이 많다. 자율주행과 증강현실 등의 분야에서 테크 기업들의 혁신이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첫번째다. 2000년 이후 우리 삶을 가장 크게 바꿔온 테크 기업들의 영역 확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팬데믹 직후 마이너스까지 선물에서 찍었던 원유 가격이 최근 배럴당 120달러를 넘은데서 보듯 원자재 가격의 변동성은 어느 때보다 크다. 그리고 그만큼 원자재에 대한 전망은 빗나가기 일쑤였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쏟아부은 돈이 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원자재로 흘러가며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라는 전망이 그 예다. 하지만 이는 미국에서 시작된 셰일 혁명으로 실패한 예언이 됐고, 투자자들은 최근까지 손실을 감내해야 했다.

물론 샤르마는 투자의 세계에서 반짝이는 혜안을 발휘해 왔다. 1996년부터 모건스탠리에서 투자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그가 운용하는 자산은 25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니켈과 알루미늄 등 주요 금속의 가격은 당분간 오를 것으로 예상되며 저탄소 경제에서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기자가 만난 정부 실무자들도 2050년까지 탄소를 대폭 줄이겠다는 약속을 믿지 못하고 있는만큼, 원유와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수요는 예상보다 길게 유지될 수 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