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 속 비애를 담아낸 '발레리나들의 화가', 드가[김희경의 7과 3의 예술]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눈 앞에서 멋진 발레 공연이 펼쳐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발레리나의 우아한 몸짓과 역동적인 움직임이 생생하게 다가오죠. 그림이라기 보다 공연 도중 한 장면을 사진으로 찰칵 찍은 듯한 느낌도 듭니다.
프랑스 출신 화가 에드가 드가(1834~1917)의 '무대 위의 무희'란 작품입니다. 빠르게 순간을 포착해서 간결하게 묘사한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름답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냈죠.
그런데 발레리나의 뒤에 있는 갈색 덩어리 같은 건 무엇일까요. 무대 배경이나 장치일까요. 이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갈색 아래에 사람들의 다리가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주인공 뒤에 있는 다수의 무용수들을 하나의 덩어리처럼 색칠해 표현한 겁니다. 이를 통해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가 주역에게만 쏟아지고 다른 무용수들은 그림자처럼 가려지는 슬픈 이면을 담았습니다.
드가는 이 작품 이외에도 발레리나들의 모습을 다수 그렸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들의 아름다움만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빛나는 모습 뒤에 가려진 애달픈 현실과 비애를 함께 담아냈죠. 진정한 '발레리나들의 화가'였던 드가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드가는 부유한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나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13살에 어머니를 잃는 슬픔을 겪었지만, 아버지와 평생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냈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문화적 경험도 할 수 있었죠. 아버지는 예술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아들을 위해 유명 미술 컬렉터들의 집에 데려가 주고, 많은 공연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예술가의 길을 갔던 건 아니었습니다. 드가의 어린 시절 그림 실력은 다른 유명 화가들에 비해 평범했습니다. 점차 자라나며 화가가 되고 싶어 하긴 했지만, 뜻을 접고 아버지의 바람대로 소르본대 법학부에 진학했죠.
하지만 법학을 공부하면서도 그림을 절대 놓지 않았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자주 가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했습니다. 많은 화가들이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내기 전까지 모사를 자주 했는데요. 드가는 그중에서도 특히 모사를 열심히 한 인물로 꼽힙니다.
모사 덕분에 평범했던 드가의 실력은 나날이 좋아졌습니다. 거장들의 작품을 따라 그리며 기초를 탄탄히 쌓으면서도, 정교하고 다양한 표현법들을 익힌 겁니다. 드가는 "거장들의 작품은 몇 번이고 모사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모사를 제대로 해야 무 한 개라도 제대로 그릴 수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실력을 쌓아가던 드가는 과감히 법학 공부를 그만두고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21살엔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습니다. 아버지도 아들의 결심을 응원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습니다. 덕분에 이탈리아로 떠나 3년이나 미술 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드가가 모사와 여행을 통해 접했던 거장들의 작품은 대부분 고전 미술에 해당했습니다. 신화, 역사 속 인물을 그린 작품들이었죠. 드가는 이들의 그림을 좋아했지만, 신화와 역사 이야기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드가는 인상파 대표 화가 중 한 명인 에두아르 마네를 알게 됐습니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우정을 유지하면서도 서로의 작품에 대해 솔직한 평가를 주고받았죠. 드가는 마네를 통해 다양한 인상파 화가들을 소개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며, 과거나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닌 현재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을 화폭에 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드가는 인상파 화가가 됐습니다.
하지만 드가의 작품들을 보면 인상파 그림들과 사뭇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의 한 순간을 그렸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하지만 클로드 모네가 야외에 나가 빛의 변화에 따른 수련, 산 등 자연의 모습을 그린 것과 달리 드가는 사람에 집중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방식 자체도 달랐습니다. 드가의 작품을 언뜻 보면 다른 인상파 화가들처럼 즉흥적으로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매우 치밀하고 정교하게 계산을 해서 완성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런 드가는 나중에 인상파와 결별하기도 했죠.
'발레 수업'이란 그림을 함께 살펴볼까요.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쥘 페로로가 발레를 가르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작품입니다. 수업을 듣고 있는 발레리나들의 포즈도 다양합니다. 목을 높게 치켜든 채 손으로 등을 긁는 소녀, 허리에 손을 올리고 휴식을 취하는 소녀, 페로로 앞에서 동작을 취해 보이는 소녀 등이 보이네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드가가 수업을 참관하고, 그중 한 순간을 빠르게 그린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런데 사실은 조금 다릅니다. 드가는 연습실을 여러 번 오가며 발레리나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수차례 스케치를 했습니다. 그중 발레리나들의 평소 모습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동작들을 고르고, 이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구도를 연구했죠. 그리고 이를 한데 모아 조합하고, 하나의 그림으로 만들었습니다. '순간 포착의 달인'이 빚어낸 명작이 실은 오랜 고민과 연구로 탄생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드가는 왜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발레리나에 천착했을까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화려함 이면에 자리한 지극히 현실적인 고충과 슬픔을 담으려 했던 겁니다.
당시 발레리나 중 많은 이들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발레를 시작했습니다. 하층민 출신으로,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강제로 발레를 배운 경우들이 많았죠. 파리에서 열리는 수많은 발레 공연은 그렇게 가난한 소녀 무용수들로 주로 꾸려졌습니다. 지나치게 혹독한 훈련과 잦은 공연으로 불구가 되는 소녀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일부 귀족들은 발레 연습 현장에 찾아와 자신들과 시간을 보낼 소녀를 고르기도 했습니다. 드가의 '무대 위 발레 리허설'이란 작품엔 이런 스폰서 귀족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림 가운데엔 음악에 맞춰 지휘를 하고 있는 선생님이 보입니다. 발레리나들은 그 주변에서 각각 다양한 동작을 선보이고 있죠. 그런데 오른쪽에 그려진 두 명의 남성이 보이시나요. 연습을 지켜보며 누구를 선택할지 고르고 있는 겁니다.
당시 파리엔 '벨 에포크(belle epoque·아름다운 시대)'라 불릴 만큼 문화·예술이 찬란하게 꽃 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에선 빛만큼 강하고 짙은 어둠이 내리고 있었죠.
드가는 화려함에만 도취되지 않고, 잘 드러나지 않았던 깊은 어둠을 찾아 응시했습니다.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붓을 잡고 열심히 화폭에 담았죠. 드가의 집요한 의지와 관찰 덕분에, 아름다우면서도 애달팠던 파리 발레리나들의 모습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프랑스 출신 화가 에드가 드가(1834~1917)의 '무대 위의 무희'란 작품입니다. 빠르게 순간을 포착해서 간결하게 묘사한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름답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냈죠.
그런데 발레리나의 뒤에 있는 갈색 덩어리 같은 건 무엇일까요. 무대 배경이나 장치일까요. 이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갈색 아래에 사람들의 다리가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주인공 뒤에 있는 다수의 무용수들을 하나의 덩어리처럼 색칠해 표현한 겁니다. 이를 통해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가 주역에게만 쏟아지고 다른 무용수들은 그림자처럼 가려지는 슬픈 이면을 담았습니다.
드가는 이 작품 이외에도 발레리나들의 모습을 다수 그렸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들의 아름다움만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빛나는 모습 뒤에 가려진 애달픈 현실과 비애를 함께 담아냈죠. 진정한 '발레리나들의 화가'였던 드가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드가는 부유한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나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13살에 어머니를 잃는 슬픔을 겪었지만, 아버지와 평생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냈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문화적 경험도 할 수 있었죠. 아버지는 예술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아들을 위해 유명 미술 컬렉터들의 집에 데려가 주고, 많은 공연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예술가의 길을 갔던 건 아니었습니다. 드가의 어린 시절 그림 실력은 다른 유명 화가들에 비해 평범했습니다. 점차 자라나며 화가가 되고 싶어 하긴 했지만, 뜻을 접고 아버지의 바람대로 소르본대 법학부에 진학했죠.
하지만 법학을 공부하면서도 그림을 절대 놓지 않았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자주 가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했습니다. 많은 화가들이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내기 전까지 모사를 자주 했는데요. 드가는 그중에서도 특히 모사를 열심히 한 인물로 꼽힙니다.
모사 덕분에 평범했던 드가의 실력은 나날이 좋아졌습니다. 거장들의 작품을 따라 그리며 기초를 탄탄히 쌓으면서도, 정교하고 다양한 표현법들을 익힌 겁니다. 드가는 "거장들의 작품은 몇 번이고 모사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모사를 제대로 해야 무 한 개라도 제대로 그릴 수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실력을 쌓아가던 드가는 과감히 법학 공부를 그만두고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21살엔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습니다. 아버지도 아들의 결심을 응원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습니다. 덕분에 이탈리아로 떠나 3년이나 미술 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드가가 모사와 여행을 통해 접했던 거장들의 작품은 대부분 고전 미술에 해당했습니다. 신화, 역사 속 인물을 그린 작품들이었죠. 드가는 이들의 그림을 좋아했지만, 신화와 역사 이야기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드가는 인상파 대표 화가 중 한 명인 에두아르 마네를 알게 됐습니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우정을 유지하면서도 서로의 작품에 대해 솔직한 평가를 주고받았죠. 드가는 마네를 통해 다양한 인상파 화가들을 소개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며, 과거나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닌 현재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을 화폭에 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드가는 인상파 화가가 됐습니다.
하지만 드가의 작품들을 보면 인상파 그림들과 사뭇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의 한 순간을 그렸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하지만 클로드 모네가 야외에 나가 빛의 변화에 따른 수련, 산 등 자연의 모습을 그린 것과 달리 드가는 사람에 집중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방식 자체도 달랐습니다. 드가의 작품을 언뜻 보면 다른 인상파 화가들처럼 즉흥적으로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매우 치밀하고 정교하게 계산을 해서 완성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런 드가는 나중에 인상파와 결별하기도 했죠.
'발레 수업'이란 그림을 함께 살펴볼까요.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쥘 페로로가 발레를 가르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작품입니다. 수업을 듣고 있는 발레리나들의 포즈도 다양합니다. 목을 높게 치켜든 채 손으로 등을 긁는 소녀, 허리에 손을 올리고 휴식을 취하는 소녀, 페로로 앞에서 동작을 취해 보이는 소녀 등이 보이네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드가가 수업을 참관하고, 그중 한 순간을 빠르게 그린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런데 사실은 조금 다릅니다. 드가는 연습실을 여러 번 오가며 발레리나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수차례 스케치를 했습니다. 그중 발레리나들의 평소 모습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동작들을 고르고, 이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구도를 연구했죠. 그리고 이를 한데 모아 조합하고, 하나의 그림으로 만들었습니다. '순간 포착의 달인'이 빚어낸 명작이 실은 오랜 고민과 연구로 탄생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드가는 왜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발레리나에 천착했을까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화려함 이면에 자리한 지극히 현실적인 고충과 슬픔을 담으려 했던 겁니다.
당시 발레리나 중 많은 이들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발레를 시작했습니다. 하층민 출신으로,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강제로 발레를 배운 경우들이 많았죠. 파리에서 열리는 수많은 발레 공연은 그렇게 가난한 소녀 무용수들로 주로 꾸려졌습니다. 지나치게 혹독한 훈련과 잦은 공연으로 불구가 되는 소녀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일부 귀족들은 발레 연습 현장에 찾아와 자신들과 시간을 보낼 소녀를 고르기도 했습니다. 드가의 '무대 위 발레 리허설'이란 작품엔 이런 스폰서 귀족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림 가운데엔 음악에 맞춰 지휘를 하고 있는 선생님이 보입니다. 발레리나들은 그 주변에서 각각 다양한 동작을 선보이고 있죠. 그런데 오른쪽에 그려진 두 명의 남성이 보이시나요. 연습을 지켜보며 누구를 선택할지 고르고 있는 겁니다.
당시 파리엔 '벨 에포크(belle epoque·아름다운 시대)'라 불릴 만큼 문화·예술이 찬란하게 꽃 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에선 빛만큼 강하고 짙은 어둠이 내리고 있었죠.
드가는 화려함에만 도취되지 않고, 잘 드러나지 않았던 깊은 어둠을 찾아 응시했습니다.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붓을 잡고 열심히 화폭에 담았죠. 드가의 집요한 의지와 관찰 덕분에, 아름다우면서도 애달팠던 파리 발레리나들의 모습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