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전쟁 발 인플레 공포에 먼저 두 손 든 유럽, 다음 주 미국 Fed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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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미 동부시간) 뉴욕 증시가 개장하기 전 줄줄이 이어진 세 가지 이벤트의 결과는 두 개는 부정적, 하나는 중립적으로 드러났습니다. 미국 시간 새벽 4시 40분께 끝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외무장관 협상은 결실이 없었습니다. 이어 아침 7시 40분께 유럽중앙은행(ECB)은 통화정책회의를 끝낸 뒤 예상보다 강한 매파적 태도를 보여 시장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리고 오전 8시 30분 미국에선 2월 소비자물가(CPI)가 예상과 같은 7.9%로 발표됐습니다.
이런 이벤트의 결과는 뉴욕 증시에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① 러시아-우크라이나 외무장관 협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회담은 단 1시간 반 만에 끝났습니다. 깊이 있는 토론이 없었다는 뜻이겠지요. 회담 종료 직후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리 쿨레바 외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는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공격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전달한 대략의 얘기는 우크라이나가 그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때까지 공격을 계속할 것이며, 이러한 요구 중 가장 최소한은 항복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러시아의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협상 테이블에 휴전 협정이 논의되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민간인 피난을 위한 인도주의적 통로에 대해 약속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와 관련, 바이탈 날리지의 애덤 크리스펄리 설립자는 "기자회견의 헤드라인 중 일부는 별로 고무적이지 않지만, 이번 회담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과정의 하나"라면서 "여전히 회담이 열린 것, 그리고 라브로프 장관의 몇몇 발언은 고무적"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라브로프 장관의 세 가지 멘트가 고무적이라고 밝혔는데요. 첫 번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보장을 논의하는 데 열려 있다고 밝힌 것, 두 번째, 우크라이나에서 나온 중립화 논의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말한 것, 세 번째는 미래 어느 시점에 푸틴과 젤린스키가 만날 가능성도 있다고 밝힌 것 등을 지적했습니다.
크리스펄리 설립자는 "오늘은 돌파구가 없지만 이런 발언을 고려할 때 계속 회의 진전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내 생각은 양국의 출구 전략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현재 상황은 양국 모두에게 견딜 수 없는 상황"이라며 러시아는 군사 작전에서 진전을 거두고 있지 못하며 경제는 서방의 제재로 파괴되고 있고, 우크라이나는 무차별적인 폭격에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② 채권 매입 앞당겨 끝내겠다는 ECB 시장은 ECB가 전쟁 불확실성으로 금리 인상 등을 늦출 것으로 예상했었습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3월 회의 결과는 상당히 매파적이었습니다. 성명 발표 직후 이탈리아의 채권 금리가 24bp나 폭등한 게 이를 대변합니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팬데믹 긴급매입프로그램(PEPP) 3월 종료
-기존 자산매입프로그램(APP) 3분기에 종료할 수 있음. 채권 매입 규모는 기존 월 200억 유로에서 4월 400억 유로로 늘린 뒤 5월 300억 유로, 6월 200억 유로로 감축. (기존 계획은 2분기 400억 유로, 3분기 300억 유로, 4분기 200억 유로)
-'필요할 경우 금리를 더 낮출 수 있다'라는 문구 삭제
정리하면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기존 계획보다 4개월 빨리 끝내고, 연말 금리 인상 가능성도 시사한 것입니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럽의 인플레 우려를 높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경제 활동과 인플레이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특히 에너지 가격에 '상당한 상방 위험'이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ECB는 유로존의 올해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기존 3.2%에서 5.1%로 높였습니다. 내년 전망도 2.1%(기존 1.8%)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ECB는 성명에서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러시아의 침공은 인플레이션 우려만 높이는 게 아닙니다. 경제 활동도 둔화시키죠. ECB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4.2%에서 3.7%로 낮췄습니다. 즉 스태그플레이션 역풍을 인정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경제적 불확실성에도 자산매입을 끝내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죠. 다만 자산매입 종료 직후 곧(Shortly) 금리 인상을 하겠다는 가이던스를 없앴습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채권 매입 종료 후 얼마 뒤(Some Time) 금리가 변경될 것이며, 이는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혀 물가안정과 경기 둔화 사이에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는 "회의에서 격렬한(Intense) 논의가 오갔다면서 "최대한 민첩함과 유연성을 두는 것으로 타협이 이뤄졌다. 최대한 많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게 노력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ING는 "오늘 결정은 올해 말 이전에 첫 번째 금리 인상의 문을 활짝 열어둔 것"이라면서 매파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ECB가 현시점에서 높고 가속화되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우크라이나에서 진행 중인 전쟁과 극도로 높은 불확실성에 대응해 ECB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라고 평가했습니다.
③비관과 낙관이 교차한 CPI 미국의 2월 CPI는 전년 대비 7.9% 오르고, 전월보다는 0.8% 오른 것으로 발표됐습니다. 높았지만 8%대도 아니었고 예상과 같았습니다. 음식료와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CPI는 전년 대비 6.4%, 전월 대비 0.5%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 에너지 폭등->물가 상승
전월 대비 0.8% 상승에는 에너지, 식료품 상승세가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에너지는 전월보다 3.5%나 올라 0.8% 상승 중 0.26%포인트를 차지했습니다. 유가가 2월 말 러시아의 침공 이후 급등한 걸 고려하면 향후 몇 달 헤드라인 인플레이션은 더 치솟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블룸버그는 3월 9%대 수치가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식료품 가격도 전달보다 1% 올랐습니다. 전년 동기보다는 7.9% 올라 1981년 이후 최대 상승 폭을 나타냈습니다.
⒝ 가속화되고 있는 건 아니다
월가가 가장 집중해서 보는 건 전월 대비 근원 CPI 수치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지금은 언제부터 떨어질지가 핵심이기 때문에 전월 대비 수치가 가장 중요하다"라면서 "에너지와 음식료 가격은 변동성도 심하고 Fed가 통화 정책으로 제어하기도 어려운 만큼 빼고 보는 게 맞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전월 대비 근원 CPI는 지난 10월 0.6% 11월 0.5%, 12월 0.6%, 1월 0.6%에 이어 2월 0.5%가 나왔습니다. 이와 관련, 저스틴 울퍼스 미시간대 경제학과 교수는 "근원 CPI만 보면 인플레이션이 높긴 하지만 가속화되고 있다고 볼 순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 서비스로 확산 지속
사실 상품 가격은 안정화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를 일으켜온 중고차 가격은 전월 대비 내림세로 돌아섰습니다. 중고차 세탁기 등 내구재 가격의 상승 속도도 더뎌졌습니다. 문제는 물가 상승세가 이미 상품에서 서비스업으로 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비스 물가는 전월 대비 0.5%, 전년 대비 4.4% 높아졌습니다.
근원 CPI는 전월 대비 0.5% 올랐는데요. 이제 일시적 요인(팬데믹 관련 항공료, 호텔비 및 자동차 관련)은 비중이 대폭 줄었습니다. 대신 한번 오르면 지속해서 상승하는 '끈적끈적한' 요인인 주거비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월 주거비는 0.5% 상승해 작년 11월 이후 가장 높아졌습니다. 근원 CPI 상승률 0.5% 중 0.19%포인트를 차지했습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평균 0.11% 정도만 차지했었지요. 손성원 로욜라 매리마운트대 교수는 “주거비는 점진적으로 상승하기 마련이다. 향후 몇 달간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섞여있다 보니, 보는 시각도 조금 다릅니다. 판테온매크로의 이안 셰퍼드슨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지는 않았다. 하지만 거의 정점에 도달했으며 늦여름까지는 헤드라인과 근원 수치 모두 많이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울퍼스 교수는 "공급망이 회복되면서 중고차를 포함해 상품의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가격이 정상으로 떨어지면 실제로 인플레이션 수치를 밀어 내릴 수 있다. 인플레이션의 많은 요소가 하락할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TIAA은행의 크리스 게프니 월드마켓 회장은 "인플레이션은 확실히 높다. 오늘 아침 CPI 수치는 불편하다”라면서 "전쟁에도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알파트랄의 맥스 곡먼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핵심은 중고차가 아니라 이제 주거비와 음식이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러시아의 침공이 중단될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다음 달 수치도 기대 이하일 것 같지 않다. 시장은 결국 이 전쟁이 Fed를 덜 매파적이 아니라 더 매파적으로 만들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중앙은행(Fed) 인사들은 올해 인플레이션을 3%대로 낮추겠다고 밝혀왔는데, 지금처럼 전월 대비 수치가 0.5%가 나오면 6%대가 된다"라면서 3월 FOMC에서 좀 더 공격적인 점도표가 나오거나, 예상보다 좀 더 이른 5, 6월께 대차대조표 축소가 시작될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실제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서는 올해 기준금리 인상 예상 횟수가 다시 7회로 높아졌습니다. 또 기준금리 움직임을 잘 따르면 2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1.7%를 넘어섰습니다. CPI는 이날 시장을 뒤흔들지는 않았습니다. 예상과 비슷했고, 오는 15~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미치는 영향도 거의 없습니다. 제롬 파월 의장이 이미 0.25% 인상하겠다고 밝혔으니까요. 또 2월 수치는 러시아 침공 이전 수치이고 향후 더 오를 것입니다. 미국자동차협회에 따르면 미국의 휘발유 가격만 해도 한 달 전에는 전국 평균 1갤런당 2.82달러였는데 이날 4.32달러로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이날 뉴욕 채권시장에서 금리는 두 단계 상승했습니다. 연 1.93%대에 머물던 국채 10년물은 ECB 회의 결과가 나온 오전 7시 40분께 1.99% 수준까지 뛰었습니다. =잠시 1.96%대로 떨어진 뒤 오전 8시 30분 CPI가 공개되고 나서 다시 오름세를 가속했습니다. 오전 10시가 넘자 다시 2%를 넘었습니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처음입니다. 한때 2.021%까지 올랐습니다. 30년물 수익률은 2.40%를 넘어섰습니다. 2021년 5월 이후 최고치입니다. 뉴욕 증시에서 주요 지수는 1% 수준 큰 폭의 내림세로 출발했습니다. 나스닥은 오전 11시 30분께 한때 2.5%까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후 하락 폭을 상당히 만회했습니다. 유럽연합(EU)의 요제프 보렐 외교안보대표가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푸틴은 자신이 우크라이나를 정복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실패했다”라고 밝힌 뒤부터 올랐습니다. 보렐 대표는 "푸틴은 우리를 분열시킬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것도 실패했다. 또 대서양(미국과 유럽) 관계도 약화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다 실패했다. 이제는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다우는 0.35%, S&P500 지수는 0.43% 내렸고 나스닥은 0.95% 하락했습니다. 이날 유가는 오락가락하다가 이틀째 하락했습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2.6% 내린 배럴당 105.8달러, 브렌트유는 1.8% 내린 109달러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장 초반에는 급등하기도 했습니다. WTI의 경우 5% 이상 올라 114.88달러까지 상승했습니다. 이는 전날 OPEC+ 회원국들에게 증산을 요청하겠다던 아랍에미리트(UAE)가 OPEC+의 기존 증산 방침을 준수하겠다고 밝힌 탓입니다. 그러나 지금 유가가 수요 파괴의 시작을 앞당길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결국은 하락했습니다.
매일 큰 폭으로 출렁이는 주가와 유가, 금리처럼 지금 투자자들은 확신이 없습니다. 어제 급등하자 바닥론이 잠깐 나오기도 했지만, 다수는 아닙니다. CNBC의 마이크 산톨리 주식평론가는 "랠리는 최근 하락세를 반전시킬 만큼 충분히 광범위하거나 강력하지 않다. S&P500 지수가 4350 이상을 넘는 게 곰(비관론자)들의 마음을 바꾸기 시작하는 첫 번째 단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월가의 스트라테가스리서치는 "뉴욕 증시가 바닥에 다가갔다는 확신이 들려면 9가지 징후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지금 그 가운데 충족이 된 것은 3개뿐입니다. 뉴욕 생명의 윤제성 CIO는 "충분히 용감하거나 현금이 너무 많아서 지금 주식을 사려는 사람이라면 고배당주 ETF를 사는 것도 괜찮다"라고 말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이런 이벤트의 결과는 뉴욕 증시에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① 러시아-우크라이나 외무장관 협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회담은 단 1시간 반 만에 끝났습니다. 깊이 있는 토론이 없었다는 뜻이겠지요. 회담 종료 직후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리 쿨레바 외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는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공격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전달한 대략의 얘기는 우크라이나가 그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때까지 공격을 계속할 것이며, 이러한 요구 중 가장 최소한은 항복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러시아의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협상 테이블에 휴전 협정이 논의되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민간인 피난을 위한 인도주의적 통로에 대해 약속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와 관련, 바이탈 날리지의 애덤 크리스펄리 설립자는 "기자회견의 헤드라인 중 일부는 별로 고무적이지 않지만, 이번 회담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과정의 하나"라면서 "여전히 회담이 열린 것, 그리고 라브로프 장관의 몇몇 발언은 고무적"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라브로프 장관의 세 가지 멘트가 고무적이라고 밝혔는데요. 첫 번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보장을 논의하는 데 열려 있다고 밝힌 것, 두 번째, 우크라이나에서 나온 중립화 논의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말한 것, 세 번째는 미래 어느 시점에 푸틴과 젤린스키가 만날 가능성도 있다고 밝힌 것 등을 지적했습니다.
크리스펄리 설립자는 "오늘은 돌파구가 없지만 이런 발언을 고려할 때 계속 회의 진전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내 생각은 양국의 출구 전략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현재 상황은 양국 모두에게 견딜 수 없는 상황"이라며 러시아는 군사 작전에서 진전을 거두고 있지 못하며 경제는 서방의 제재로 파괴되고 있고, 우크라이나는 무차별적인 폭격에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② 채권 매입 앞당겨 끝내겠다는 ECB 시장은 ECB가 전쟁 불확실성으로 금리 인상 등을 늦출 것으로 예상했었습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3월 회의 결과는 상당히 매파적이었습니다. 성명 발표 직후 이탈리아의 채권 금리가 24bp나 폭등한 게 이를 대변합니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팬데믹 긴급매입프로그램(PEPP) 3월 종료
-기존 자산매입프로그램(APP) 3분기에 종료할 수 있음. 채권 매입 규모는 기존 월 200억 유로에서 4월 400억 유로로 늘린 뒤 5월 300억 유로, 6월 200억 유로로 감축. (기존 계획은 2분기 400억 유로, 3분기 300억 유로, 4분기 200억 유로)
-'필요할 경우 금리를 더 낮출 수 있다'라는 문구 삭제
정리하면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기존 계획보다 4개월 빨리 끝내고, 연말 금리 인상 가능성도 시사한 것입니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럽의 인플레 우려를 높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경제 활동과 인플레이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특히 에너지 가격에 '상당한 상방 위험'이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ECB는 유로존의 올해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기존 3.2%에서 5.1%로 높였습니다. 내년 전망도 2.1%(기존 1.8%)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ECB는 성명에서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러시아의 침공은 인플레이션 우려만 높이는 게 아닙니다. 경제 활동도 둔화시키죠. ECB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4.2%에서 3.7%로 낮췄습니다. 즉 스태그플레이션 역풍을 인정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경제적 불확실성에도 자산매입을 끝내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죠. 다만 자산매입 종료 직후 곧(Shortly) 금리 인상을 하겠다는 가이던스를 없앴습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채권 매입 종료 후 얼마 뒤(Some Time) 금리가 변경될 것이며, 이는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혀 물가안정과 경기 둔화 사이에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는 "회의에서 격렬한(Intense) 논의가 오갔다면서 "최대한 민첩함과 유연성을 두는 것으로 타협이 이뤄졌다. 최대한 많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게 노력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ING는 "오늘 결정은 올해 말 이전에 첫 번째 금리 인상의 문을 활짝 열어둔 것"이라면서 매파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ECB가 현시점에서 높고 가속화되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우크라이나에서 진행 중인 전쟁과 극도로 높은 불확실성에 대응해 ECB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라고 평가했습니다.
③비관과 낙관이 교차한 CPI 미국의 2월 CPI는 전년 대비 7.9% 오르고, 전월보다는 0.8% 오른 것으로 발표됐습니다. 높았지만 8%대도 아니었고 예상과 같았습니다. 음식료와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CPI는 전년 대비 6.4%, 전월 대비 0.5%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 에너지 폭등->물가 상승
전월 대비 0.8% 상승에는 에너지, 식료품 상승세가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에너지는 전월보다 3.5%나 올라 0.8% 상승 중 0.26%포인트를 차지했습니다. 유가가 2월 말 러시아의 침공 이후 급등한 걸 고려하면 향후 몇 달 헤드라인 인플레이션은 더 치솟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블룸버그는 3월 9%대 수치가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식료품 가격도 전달보다 1% 올랐습니다. 전년 동기보다는 7.9% 올라 1981년 이후 최대 상승 폭을 나타냈습니다.
⒝ 가속화되고 있는 건 아니다
월가가 가장 집중해서 보는 건 전월 대비 근원 CPI 수치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지금은 언제부터 떨어질지가 핵심이기 때문에 전월 대비 수치가 가장 중요하다"라면서 "에너지와 음식료 가격은 변동성도 심하고 Fed가 통화 정책으로 제어하기도 어려운 만큼 빼고 보는 게 맞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전월 대비 근원 CPI는 지난 10월 0.6% 11월 0.5%, 12월 0.6%, 1월 0.6%에 이어 2월 0.5%가 나왔습니다. 이와 관련, 저스틴 울퍼스 미시간대 경제학과 교수는 "근원 CPI만 보면 인플레이션이 높긴 하지만 가속화되고 있다고 볼 순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 서비스로 확산 지속
사실 상품 가격은 안정화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를 일으켜온 중고차 가격은 전월 대비 내림세로 돌아섰습니다. 중고차 세탁기 등 내구재 가격의 상승 속도도 더뎌졌습니다. 문제는 물가 상승세가 이미 상품에서 서비스업으로 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비스 물가는 전월 대비 0.5%, 전년 대비 4.4% 높아졌습니다.
근원 CPI는 전월 대비 0.5% 올랐는데요. 이제 일시적 요인(팬데믹 관련 항공료, 호텔비 및 자동차 관련)은 비중이 대폭 줄었습니다. 대신 한번 오르면 지속해서 상승하는 '끈적끈적한' 요인인 주거비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월 주거비는 0.5% 상승해 작년 11월 이후 가장 높아졌습니다. 근원 CPI 상승률 0.5% 중 0.19%포인트를 차지했습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평균 0.11% 정도만 차지했었지요. 손성원 로욜라 매리마운트대 교수는 “주거비는 점진적으로 상승하기 마련이다. 향후 몇 달간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섞여있다 보니, 보는 시각도 조금 다릅니다. 판테온매크로의 이안 셰퍼드슨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지는 않았다. 하지만 거의 정점에 도달했으며 늦여름까지는 헤드라인과 근원 수치 모두 많이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울퍼스 교수는 "공급망이 회복되면서 중고차를 포함해 상품의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가격이 정상으로 떨어지면 실제로 인플레이션 수치를 밀어 내릴 수 있다. 인플레이션의 많은 요소가 하락할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TIAA은행의 크리스 게프니 월드마켓 회장은 "인플레이션은 확실히 높다. 오늘 아침 CPI 수치는 불편하다”라면서 "전쟁에도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알파트랄의 맥스 곡먼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핵심은 중고차가 아니라 이제 주거비와 음식이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러시아의 침공이 중단될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다음 달 수치도 기대 이하일 것 같지 않다. 시장은 결국 이 전쟁이 Fed를 덜 매파적이 아니라 더 매파적으로 만들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중앙은행(Fed) 인사들은 올해 인플레이션을 3%대로 낮추겠다고 밝혀왔는데, 지금처럼 전월 대비 수치가 0.5%가 나오면 6%대가 된다"라면서 3월 FOMC에서 좀 더 공격적인 점도표가 나오거나, 예상보다 좀 더 이른 5, 6월께 대차대조표 축소가 시작될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실제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서는 올해 기준금리 인상 예상 횟수가 다시 7회로 높아졌습니다. 또 기준금리 움직임을 잘 따르면 2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1.7%를 넘어섰습니다. CPI는 이날 시장을 뒤흔들지는 않았습니다. 예상과 비슷했고, 오는 15~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미치는 영향도 거의 없습니다. 제롬 파월 의장이 이미 0.25% 인상하겠다고 밝혔으니까요. 또 2월 수치는 러시아 침공 이전 수치이고 향후 더 오를 것입니다. 미국자동차협회에 따르면 미국의 휘발유 가격만 해도 한 달 전에는 전국 평균 1갤런당 2.82달러였는데 이날 4.32달러로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이날 뉴욕 채권시장에서 금리는 두 단계 상승했습니다. 연 1.93%대에 머물던 국채 10년물은 ECB 회의 결과가 나온 오전 7시 40분께 1.99% 수준까지 뛰었습니다. =잠시 1.96%대로 떨어진 뒤 오전 8시 30분 CPI가 공개되고 나서 다시 오름세를 가속했습니다. 오전 10시가 넘자 다시 2%를 넘었습니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처음입니다. 한때 2.021%까지 올랐습니다. 30년물 수익률은 2.40%를 넘어섰습니다. 2021년 5월 이후 최고치입니다. 뉴욕 증시에서 주요 지수는 1% 수준 큰 폭의 내림세로 출발했습니다. 나스닥은 오전 11시 30분께 한때 2.5%까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후 하락 폭을 상당히 만회했습니다. 유럽연합(EU)의 요제프 보렐 외교안보대표가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푸틴은 자신이 우크라이나를 정복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실패했다”라고 밝힌 뒤부터 올랐습니다. 보렐 대표는 "푸틴은 우리를 분열시킬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것도 실패했다. 또 대서양(미국과 유럽) 관계도 약화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다 실패했다. 이제는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다우는 0.35%, S&P500 지수는 0.43% 내렸고 나스닥은 0.95% 하락했습니다. 이날 유가는 오락가락하다가 이틀째 하락했습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2.6% 내린 배럴당 105.8달러, 브렌트유는 1.8% 내린 109달러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장 초반에는 급등하기도 했습니다. WTI의 경우 5% 이상 올라 114.88달러까지 상승했습니다. 이는 전날 OPEC+ 회원국들에게 증산을 요청하겠다던 아랍에미리트(UAE)가 OPEC+의 기존 증산 방침을 준수하겠다고 밝힌 탓입니다. 그러나 지금 유가가 수요 파괴의 시작을 앞당길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결국은 하락했습니다.
매일 큰 폭으로 출렁이는 주가와 유가, 금리처럼 지금 투자자들은 확신이 없습니다. 어제 급등하자 바닥론이 잠깐 나오기도 했지만, 다수는 아닙니다. CNBC의 마이크 산톨리 주식평론가는 "랠리는 최근 하락세를 반전시킬 만큼 충분히 광범위하거나 강력하지 않다. S&P500 지수가 4350 이상을 넘는 게 곰(비관론자)들의 마음을 바꾸기 시작하는 첫 번째 단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월가의 스트라테가스리서치는 "뉴욕 증시가 바닥에 다가갔다는 확신이 들려면 9가지 징후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지금 그 가운데 충족이 된 것은 3개뿐입니다. 뉴욕 생명의 윤제성 CIO는 "충분히 용감하거나 현금이 너무 많아서 지금 주식을 사려는 사람이라면 고배당주 ETF를 사는 것도 괜찮다"라고 말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