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서 단상에 올라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서 단상에 올라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이런 대선이 없었다. 역대급 비호감 후보라면서 막판엔 지지세력이 결집하는 모습이 영 낯설다. 결과는 또 어떤가. 종이 한 장 차이보다 더한 초박빙이었다. 가슴 쓸어내린 국민의힘도 승리라는 말 앞엔 겸연쩍은 게 사실이다.

야권 후보 단일화 효과도 분명치 않다. 단일화가 없었다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필패(必敗)했을 것이란 추측은 가능하다. 그러나 위기감을 느낀 민주당 지지표가 더 뭉치게 만들었고, 초박빙 승부를 자초했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결국 이번 대선 결과를 놓고 활짝 웃음 지은 정치세력은 하나도 없다. 묘하다. 한국 대선에선 어느 한쪽으로 완벽히 쏠리지 않는 민심의 결과가 나온다는 정설이 또 한 번 입증됐다.

민의(民意)는 여야, 진보 대 보수, 국가주의 대 자유주의 가운데 '49 대 51' 지점을 가리킨 셈이다. 윤석열 후보 측이 승리하긴 했지만, 정권심판론이 대세였다고 강하게 주장하기 힘든 결과다. 반대로 이재명 후보 측은 막판 추격을 통해 나름 의미를 챙겼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SNS에 "많이 아프지만, 그래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여러분은 패배하지 않았다"고 자위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승자와 패자가 그리 명쾌하게 구분되지 않는 대선이 됐다. 후보들은 비호감이지만, 그들이 대변하는 정치적 가치, 후대에 물려주고 싶은 미래 세상의 가치란 측면에서 국민은 양쪽 손을 다 들어준 것이다. 하나하나 열거하기 입이 아플 정도인 문재인 정부 5년의 실정(失政)에도 민심은 민주당에 완전히 등을 돌렸다기보다 '회초리'를 들었다 볼 수 있다. 야당엔 정권교체 선물을 안기는 동시에, 신중하고 자중하라는 당부를 담은 듯한 지지율을 보였다. 완벽한 패자는 없고, 모두가 조금씩 얻은 게 있는 선거였다.

국민 여론과 민심이 깊은 골을 내며 갈라졌지만, 통합과 협치(協治)가 필요한 정치 구도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어차피 5년 단임 정권에서 혁명하듯 세상을 뒤집을 순 없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만 강조하며 대못을 박아서도 안 되고, 박히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 모두 안다. 40%대 초반 득표율로 잠간 위임받은 권력을 독단 행사해온 현 정부가 국민의 눈을 뜨게 한 것이다. 행한 만큼 돌려받는다는 평범한 진리도 작동할 것이다. 이런 인식을 우리 정치사회의 성숙으로 연결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번 대선의 유일한 패자는 현 정권의 과거 운동권 방식 구태(舊態)가 아닐까 싶다. 어떻게든 선거에선 승리해야 하고, 아름다운 후퇴나 퇴장은 그들 사전에 없다. 거악(巨惡)에 맞선 싸움에선 어쩔 수 없다며 자신들의 허물은 짐짓 모른 체하는 내로남불 행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루고자 하는 정치·정책적 목표를 위해 민주적 절차와 수단은 쉽게 무시했다. 탈원전을 위해 월성 원전 경제성을 조작한 의혹이 대표적이다. 대의민주주의의 허점을 보완한다는 각종 공론화위원회도 결국 어용·관변조직으로 활용했다.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더니 '갈라치기'에만 신공을 보인 정권이 뻔뻔하게도 대통령 당선인에게 "대통합을 이뤄달라"고 하는 코미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모두가 승자'라고 인식하면 눈앞 세상이 달리 보일 수 있다. 대선에서 졌다고 "나라가 어떻게 위태로워지는지 지켜보자"는 식으로 독설을 내뿜는 극단은 줄어들 것이다. 나라를 두 동강이 내는 자들은 솎아내겠다는 정치권의 각성도 필요하다. 행정부와 의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정치 권력과 사법제도, 정치인과 전문관료, 시민운동과 언론이 제각기 본령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윤석열 행정부와 거대야당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가 사사건건 부딪치는 게 아니라, 다음 선거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기 위한 '미인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