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되살린 '1994 대학살'의 추억 [이태호의 빚과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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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FO Insight]
국내 증권사도 ‘금리상승 장기화’ 이례적 경고
“부실기업 줄부도 외환위기 낳았던
Fed 금리인상 부정적 여파 대비해야”
국내 증권사도 ‘금리상승 장기화’ 이례적 경고
“부실기업 줄부도 외환위기 낳았던
Fed 금리인상 부정적 여파 대비해야”
푸틴은 글로벌 채권시장의 오랜 흐름까지 바꿔놓을까요?
채권시장 10년 태평성대가 마침표에 다다랐다는 진단이 여의도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 최대 금융시장을 충격에 빠뜨리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어떤 신호가 어떤 미래를 예고하고 있는 걸까요.
국내 회사채(credit) 시장 전문가인 김상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 8일 보고서에서 앞으로 채권가격의 꾸준한 하락을 예상했습니다. 그는 "이제부터 물가, 채권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금리가 속절없이 상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금리가 하락해야 모두가 행복한 채권시장에서 주식시장의 '매도'(sell) 추천 보고서 이상으로 찾아보기 힘든 비관론입니다.
김 연구원을 비롯해 비관론을 제기하는 소수의 연구원은 최근 원자재 가격 급등과 거래상대방 신뢰 악화에 주목합니다. 원자재 가격을 추종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골드만삭스 상품지수(GSCI)를 보면 11일까지 최근 한 달 동안에만 약 13% 상승했습니다. 올해 들어선 28% 급등했습니다. 유럽 은행과 신흥국 채권의 부도위험(신용스프레드)도 상승세입니다. 이런 흐름은 이제 막 시작 단계란 관점에서 "앞으로의 시대가 가져올 '거대한 변화'는 인플레 장기화와 금리상승 압력의 강화"라는 우려를 내놓기 시작한 겁니다.
장기간 인플레이션을 잊고 살아온 글로벌 채권 금리는 지난 10여 년에 걸쳐 대부분의 구간 떨어지기만 했습니다. 굳이 어두운 과거를 찾는다면 2013년 '긴축발작'(taper tantrum) 정도인데, 끊임없는 'D'(deflation)의 공포에 그마저도 해피엔딩으로 끝났습니다.
꽃길만 걷던 채권시장에서 최근 흘러나오기 시작한 경고는 '1994년 채권시장 대학살'(1994 bond market massacre)을 떠올리게 합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이 가져왔던 충격이었는데요. 그로부터 3년 뒤 벌어진 한국의 국가 부도에 영향을 미칠 만큼 금융사상 주목할 만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빌 클린턴 정부는 1994년 당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기대심리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금리를 인상해야겠다고 판단한 앨런 그린스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장은 그해 2월 기준금리를 연 3%에서 3.25%로 기습 인상하며 채권시장을 '침공'합니다. 지금 글로벌 경제가 코로나19로부터 회복 국면에 있자면, 당시는 미국 경제가 저축대부조합 부도 사태 충격으로부터 벗어나던 때였습니다.
Fed는 이후에도 기준금리를 올려 1995년 2월 무려 연 6%로 만듭니다. 방심하고 있던 채권 투자자들은 안전자산 계좌에 적힌 마이너스 수익률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신흥국 문제는 이때부터 심각해졌습니다. 기업 실적은 그대로인데 금융비용이 가파르게 오르자 금융회사들이 허약한 국가와 기업 투자를 피하기 시작한 겁니다. 누구에게나 퍼주던 유동성이 말라붙자 남미·동남아시아 정부와 기업이 허둥대기 시작했습니다. 빚 많기로 유명했던 한국의 대기업그룹도 그 여파로 1997년 연쇄 부도를 겪어야 했습니다.
최근 인플레와 금리 인상을 경고하는 목소리 저변에는 이처럼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담겨 있습니다. 김상훈 KB증권 자산 배분 전략가는 최근 신흥국 국채가격의 하락 소식을 전하는 보고서에서 "연준(Fed)의 금리인상 영향이 있다는 점에서 1990년대 중후반 멕시코 데킬라 위기, 태국과 한국의 외환위기 이전 현상과 유사하다"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채권금리의 장기 상승 시대가 모두에게 악재로 받아들여야 할 일은 아닙니다. 1970년대, 1960년대 중반~1980년대 초 글로벌 '대 인플레이션'(great inflation) 시대에도 밝은 면은 있었습니다. 가령 많은 생명보험사들의 재무제표가 좋아질 수 있고, 절대금리 상승으로 장기간 희생을 강요받았던 이자 생활자의 형편이 나아질 수도 있습니다.
다만 금리가 사상 최저였던 작년 '기업가치 평가'의 주요 잣대로 떠올랐던 'PDR'(Price to Dream Ratio·꿈 주가 배수)은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넘치는 유동성의 최대 수혜자였던 적자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도 새로운 각오가 필요해 보입니다. 신규 자금 없이 버텨야 하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 길어질 수 있으니까요.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 매체인 마켓인사이트가 최근 벌인 설문에서 벤처캐피털(VC) 대표 90%는 "국내 스타트업 가치가 현재 고평가돼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채권시장 10년 태평성대가 마침표에 다다랐다는 진단이 여의도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 최대 금융시장을 충격에 빠뜨리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어떤 신호가 어떤 미래를 예고하고 있는 걸까요.
국내 회사채(credit) 시장 전문가인 김상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 8일 보고서에서 앞으로 채권가격의 꾸준한 하락을 예상했습니다. 그는 "이제부터 물가, 채권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금리가 속절없이 상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금리가 하락해야 모두가 행복한 채권시장에서 주식시장의 '매도'(sell) 추천 보고서 이상으로 찾아보기 힘든 비관론입니다.
김 연구원을 비롯해 비관론을 제기하는 소수의 연구원은 최근 원자재 가격 급등과 거래상대방 신뢰 악화에 주목합니다. 원자재 가격을 추종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골드만삭스 상품지수(GSCI)를 보면 11일까지 최근 한 달 동안에만 약 13% 상승했습니다. 올해 들어선 28% 급등했습니다. 유럽 은행과 신흥국 채권의 부도위험(신용스프레드)도 상승세입니다. 이런 흐름은 이제 막 시작 단계란 관점에서 "앞으로의 시대가 가져올 '거대한 변화'는 인플레 장기화와 금리상승 압력의 강화"라는 우려를 내놓기 시작한 겁니다.
장기간 인플레이션을 잊고 살아온 글로벌 채권 금리는 지난 10여 년에 걸쳐 대부분의 구간 떨어지기만 했습니다. 굳이 어두운 과거를 찾는다면 2013년 '긴축발작'(taper tantrum) 정도인데, 끊임없는 'D'(deflation)의 공포에 그마저도 해피엔딩으로 끝났습니다.
꽃길만 걷던 채권시장에서 최근 흘러나오기 시작한 경고는 '1994년 채권시장 대학살'(1994 bond market massacre)을 떠올리게 합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이 가져왔던 충격이었는데요. 그로부터 3년 뒤 벌어진 한국의 국가 부도에 영향을 미칠 만큼 금융사상 주목할 만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빌 클린턴 정부는 1994년 당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기대심리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금리를 인상해야겠다고 판단한 앨런 그린스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장은 그해 2월 기준금리를 연 3%에서 3.25%로 기습 인상하며 채권시장을 '침공'합니다. 지금 글로벌 경제가 코로나19로부터 회복 국면에 있자면, 당시는 미국 경제가 저축대부조합 부도 사태 충격으로부터 벗어나던 때였습니다.
Fed는 이후에도 기준금리를 올려 1995년 2월 무려 연 6%로 만듭니다. 방심하고 있던 채권 투자자들은 안전자산 계좌에 적힌 마이너스 수익률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신흥국 문제는 이때부터 심각해졌습니다. 기업 실적은 그대로인데 금융비용이 가파르게 오르자 금융회사들이 허약한 국가와 기업 투자를 피하기 시작한 겁니다. 누구에게나 퍼주던 유동성이 말라붙자 남미·동남아시아 정부와 기업이 허둥대기 시작했습니다. 빚 많기로 유명했던 한국의 대기업그룹도 그 여파로 1997년 연쇄 부도를 겪어야 했습니다.
최근 인플레와 금리 인상을 경고하는 목소리 저변에는 이처럼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담겨 있습니다. 김상훈 KB증권 자산 배분 전략가는 최근 신흥국 국채가격의 하락 소식을 전하는 보고서에서 "연준(Fed)의 금리인상 영향이 있다는 점에서 1990년대 중후반 멕시코 데킬라 위기, 태국과 한국의 외환위기 이전 현상과 유사하다"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채권금리의 장기 상승 시대가 모두에게 악재로 받아들여야 할 일은 아닙니다. 1970년대, 1960년대 중반~1980년대 초 글로벌 '대 인플레이션'(great inflation) 시대에도 밝은 면은 있었습니다. 가령 많은 생명보험사들의 재무제표가 좋아질 수 있고, 절대금리 상승으로 장기간 희생을 강요받았던 이자 생활자의 형편이 나아질 수도 있습니다.
다만 금리가 사상 최저였던 작년 '기업가치 평가'의 주요 잣대로 떠올랐던 'PDR'(Price to Dream Ratio·꿈 주가 배수)은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넘치는 유동성의 최대 수혜자였던 적자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도 새로운 각오가 필요해 보입니다. 신규 자금 없이 버텨야 하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 길어질 수 있으니까요.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 매체인 마켓인사이트가 최근 벌인 설문에서 벤처캐피털(VC) 대표 90%는 "국내 스타트업 가치가 현재 고평가돼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