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당국이 처음으로 뉴욕증시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있는 중국 기업 목록을 내놨다. 미국에 상장한 270여 개 중국 기업은 상세한 감사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상장폐지될 위기에 몰렸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10일(현지시간)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얌차이나, 바이오 기업 베이진과 자이랩, 허치메드, 반도체 장비업체 ACM리서치 등 5개사를 ‘외국회사책임법’ 적용 대상 리스트에 올렸다.

외국회사책임법은 2020년 12월 미 의회가 통과시킨 법률이다. 미 증시에 상장한 외국 기업에 미국 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의 감독을 받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미국은 2001년 엔론의 회계부정 사건 이후 상장사에 독립된 회계법인이 작성한 감사보고서를 PCAOB가 다시 검증하도록 하는 이중 감시 체계를 마련했다. 상장사들은 감사보고서의 바탕이 되는 상세한 기업 현황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중국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이 2013년 체결한 회계협정에 따라 PCAOB가 아니라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의 검증만 거치면 되는 예외를 인정받아왔다. 하지만 2020년 초 ‘중국판 스타벅스’로 불리던 루이싱커피가 3억달러 규모의 매출을 부풀린 게 발각되면서 상장폐지되는 등 중국 기업들의 회계 불투명성 문제가 계속 제기됐고,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회계협정을 파기했다.

이어 의회도 사실상 중국 기업을 겨냥한 조치로 평가되는 외국회사책임법을 입법했다. 다만 외국회사책임법은 3년 연속으로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기업의 상장을 폐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 중국 기업들의 퇴출이 시작되는 시점은 2021~2023년 보고서를 내지 않은 게 확정되는 2024년 초다.

이날 공개된 리스트는 SEC가 외국회사책임법 적용 대상으로 확인한 기업들이다. 2021년 실적을 공개했지만 상세 보고서는 내놓지 않아 법을 위반한 상태가 된 것이다. SEC는 이 리스트를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뉴욕에 상장된 270여 개 중국 기업의 시가총액이 2조달러(약 2465조원)를 넘으며 이들이 퇴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기업들의 주가는 일제히 폭락했다. 얌차이나는 이날 11%, ACM리서치는 22% 급락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8%),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아이치이(-22%) 등 리스트에 아직 들어가지 않은 기업들의 주가도 큰 폭으로 내렸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