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애 숨쉬는 현장된 폴란드 국경 난민촌…유럽 각지에서 자원봉사 행렬
[지금 우크라 국경에선] 난민촌에 울려퍼진 존 레넌의 '이매진'(종합)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폴란드 남동부 메디카 국경검문소 인근 공터에선 10일(현지시간) 존 레넌 명곡 '이매진(Imagine)의 피아노 선율이 울려펴졌다.

이탈리아계 다비드 마르텔로(40)씨가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위로하고자 선사한 곡이다.

그는 당장 고장나도 이상하지 않을 낡은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꽁꽁 언 손을 입김으로 녹여가며 그렇게 여러 곡을 릴레이로 연주했다.

난민들은 하나같이 피아노 선율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듣게 된 피아노 연주에 얼어붙은 표정도 다소 풀리는듯 했다.

마르텔로씨는 "음악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았으면 한다.

나아가 우크라이나 땅에 어서 빨리 평화가 깃들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부터 스스로 조립한 그랜드 피아노를 밴에 싣고 분쟁 혹은 시위·테러 발생 지역을 찾아다니며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연주를 시작했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은 물론 바타클랑극장 테러 당시 프랑스 파리,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촉발된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도 연주한 바 있다.

[지금 우크라 국경에선] 난민촌에 울려퍼진 존 레넌의 '이매진'(종합)
수많은 우크라이나 난민이 밀려드는 폴란드 국경은 그 자체로 비극의 현장이지만 동시에 인간애와 연대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기도 하다.

국경 인근 난민 체류시설·쉼터에는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다.

각종 식료품은 물론 신발, 옷, 아기 기저귀·아이들 장난감, 여성 위생용품 등도 구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에 두고 온 가족과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영상통화를 할 수 있도록 무상 유심을 나눠주기도 한다.

모두 폴란드 시민의 기부금과 구호기구 지원금 등으로 마련된 물품이다.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급박하게 집을 떠난 우크라이나 난민에게는 생명줄과 같은 온정이다.

하지만 이들의 가슴을 무엇보다 따뜻하게 적시는 것은 현장 자원봉사자의 헌신과 희생이다.

이들 중에는 생업을 접고 현장에서 난민과 고난을 함께 하는 사람도 많다.

[지금 우크라 국경에선] 난민촌에 울려퍼진 존 레넌의 '이매진'(종합)
폴란드 출신 니콜라스(27)씨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메디카 검문소 인근에서 난민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다니던 영화제작사는 그만뒀고, 밴 차량을 포함해 일할 때 쓰던 모든 개인 물품도 메디카로 옮겼다.

자비를 털어 이곳에 쉼터로 쓸 천막을 치고 겨울철 먼 피란길을 온 난민이 몸을 녹일 수 있도록 난방 장치까지 달았다.

그가 메디카 쉼터를 만들고 정비하는데 쏟아부은 돈만 지금까지 1만유로(약 1천355만원)가 훌쩍 넘는다고 한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난민이 들어오기에 하루 20시간 이상 일할 때도 많지만 그는 불평 한번 하지 않고 묵묵히 이를 감수한다.

니콜라스 씨와 함께 상주 자원봉사자인 동갑내기 유스티나 씨도 난민을 돕고자 멀쩡히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그는 지난 주말 하루만 자원봉사하고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메디카에 왔다가 상주를 결심했다.

그러고는 회사에 전화해 퇴사하겠다고 했다.

[지금 우크라 국경에선] 난민촌에 울려퍼진 존 레넌의 '이매진'(종합)
무엇이 발걸음을 붙잡았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난민의 비극적인 현실과 너무도 열악한 현장 상황을 보고 그대로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부모님도 처음에는 자신의 이러한 결정에 무척 놀라며 걱정을 하셨지만 지금은 전폭적으로 지지와 성원을 보내준다고 한다.

본인 역시 비어있는 마트 건물의 찬 바닥에서 잠을 자야 하는 쉽지 않은 생활 환경이지만 고난에 처한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자신에게도 큰 기쁨과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메디카엔 이들과 같은 자원봉사자가 30∼40명 정도다.

육체적으로 매우 고된 일이라 2∼3일 만에 그만두는 일이 다반사지만 여전히 자원봉사 희망자가 많은데다 두 사람이 봉사자가 자주 바뀌어도 일이 연속되도록 체계를 마련해 큰 어려움은 없다.

언제까지 자원봉사를 할 것이냐고 묻자 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라고 답하며 웃음을 보였다.

[지금 우크라 국경에선] 난민촌에 울려퍼진 존 레넌의 '이매진'(종합)
최근 들어선 해외에서 들어오는 자원봉사자도 급격히 늘었다.

주로 20∼30대지만 '백발노장'도 많다.

국적도 유럽을 중심으로 미주·아시아 국가까지 다양하다.

영국인인 데이비드 폰드(65)씨는 메디카에서 가까운 국경 도시 프셰미실 중앙역에서 '짐꾼'으로 일하고 있다.

아이가 있는 가족의 짐을 들어주고 지친 아이를 안고서 목적지까지 옮겨다 주기도 한다.

군인 출신인 그는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은 당일 폴란드 국경으로 가는 짐을 쌌다고 한다.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일인지,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시민이 희생돼야 하는지 잘 알기에 가만있을 수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푸틴이 여기 와서 공포에 짓눌린 사람들의 얼굴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아야 해요"
[지금 우크라 국경에선] 난민촌에 울려퍼진 존 레넌의 '이매진'(종합)
우크라이나 난민이라고 제 동포를 돕는 자원봉사를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서 피란온 이라 스크나르(35)씨는 전쟁 발발 초기 일찌감치 국경을 넘어 폴란드로 왔다.

그는 애초 프랑스에 있는 친구를 찾아가려고 파리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하지만 프셰미실에서 고통과 좌절로 일그러진 수많은 우크라이나인 접하고서 현실에 새롭게 눈을 떴다고 한다.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파리행 티켓을 포기하고 폴란드에 남기로 했죠"
그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자신의 장점을 살려 이곳을 취재하는 해외 언론인을 위한 통역 봉사를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난민의 한마디 한마디는 그의 통역을 거쳐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난민의 비극이 외국 언론에도 생생히 육성으로 전달되면서 반전 여론의 씨앗이 되고 있다.

[지금 우크라 국경에선] 난민촌에 울려퍼진 존 레넌의 '이매진'(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