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형의 현장노트] '기념'의 의미밖에 찾을 수 없는 '왕자 호동' 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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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60주년 기념작
창단 당시 올린 창작 오페라
현대적·상징적 연출로 복원
대본·음악 공감 얻기엔 '미흡'
창단 당시 올린 창작 오페라
현대적·상징적 연출로 복원
대본·음악 공감 얻기엔 '미흡'
'가곡의 왕' 슈베르트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생전에도 큰 인기를 끈 가곡은 물론 피아노곡과 현악 4중주 등 실내악, '미완성'과 '그레이트' 등 교향곡이 사후에 재발견·재평가되면서 오늘날에도 각 분야의 핵심 레퍼토리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슈베르트는 모두 17편의 오페라를 썼고, 이 중 5편은 작곡가 생전에 무대에 올랐지만, 지금은 거의 잊히다시피 했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피에라브가스' 정도입니다. 슈베르트를 좋아한 이탈리아 명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 예술감독 재직 시절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려 호평받고, 음반도 냈지만 이후 주요 오페라극장의 레퍼토리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부실한 대본을 가장 큰 이유로 꼽습니다. 음악도 부분적으로는 뛰어난 선율미를 가진 넘버들이 있지만 세월의 검증을 이기고 살아남기에는 극적 구성력과 혁신성 면에서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요약하자면 슈베르트가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재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는 것이죠.
국립오페라단이 창단 60주년 기념작으로 지난 11, 12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린 장일남(1932~2006)의 오페라 '왕자 호동' 공연은 슈베르트까지 생각이 미치게 했습니다. 이 작품만 보면 한국인의 애창 가곡 '비목' '기다리는 마음'을 지은 장일남이 오페라 작곡가로서는 평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왕자 호동'은 국립오페라단이 1962년 창단 작품으로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작품입니다. 공연 프로그램 북에 따르면 이 작품은 초연 당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부실한 대본은 혹평받았습니다. 초연 이후 한 번도 다시 무대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작곡가도 서른 살에 완성한 그의 첫 오페라에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작품에서 미흡한 점을 많이 발견했고, 개작의 의욕을 보였지만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서양 오페라 역사에서도 슈베르트는 물론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로 추앙받는 모차르트, 바그너, 베르니, 푸치니 등도 첫 작품이 성공했거나, 초연 당시는 좋은 평가를 받았더라도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경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국립오페라단은 창단 첫 공연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작곡가 스스로 미흡하다고 여긴 작품을, 그것도 작곡가 사후인 6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렸습니다. 오페라 연출가보다는 뮤지컬 제작자로 유명한 한승석이 연출하고, 디자이너 코너 머피가 무대와 의상을 맡았습니다. 지휘자 여자경이 이끄는 클림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작곡가 전예은이 편곡과 음악 자문을 했습니다. 11일 공연에는 이승왕(호동), 박현주(낙랑공주), 김남두(최리왕). 박정민(장초 장군) 등이 출연했습니다. 공연은 대본이나 음악, 무대, 연출 등 여러 면에서 '현대 오페라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베르디의 초기 '애국 오페라' 느낌이 납니다. 음악이 쉬지 않고 이어지고, 몇몇 선율이 반복되는 점에선 바그너의 영향도 엿보입니다.
유치진의 5막 동명 희곡을 3막으로 줄인 고봉인의 대본은 초연 당시 지적대로 서사가 부족할 뿐 아니라 극적 구성력이나 가사의 호소력도 미약했습니다.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극 내용 자체가 공감을 얻기 힘듭니다. 호동이 최리왕에게 '겨레의 배신자'라 꾸짖고, 낙랑공주도 자명고를 찢는 명분으로 사랑뿐 아니라 겨레를 앞세우는데요. 역사적으로나 내용상으로나 설득력이 약합니다.
호동이 자애를 베푼 최리왕을 배신하고, 낙랑공주는 오직 사랑에 눈이 멀어 조국과 아버지를 배신하고, 큰어머니의 계략에 상심한 호동이 자살하는 이태준의 소설 '왕자 호동'이 원래 설화와 더 가까울 뿐 아니라 보편적인 정서에도 훨씬 와닿습니다. 공연에서는 오히려 낙랑공주의 정치의식을 더 부각하는데, 연출 포인트를 잘못 잡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부 음악 재배치와 국악기 추가 등을 제외하면 원곡의 선율과 오케스트레이션을 그대로 살렸다는 음악은 평범하고 밋밋합니다. 베르디 '애국 오페라' 수준의 합창과 아리아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음악적 감동을 받기에는 위력이 약합니다.
공연은 초연에 없던 프롤로그를 1막 앞에, 판소리 창을 3막 앞에 배치했습니다. 원작의 부족한 서사를 보완하기 위한 의도입니다. 프롤로그가 특이합니다. 마치 신파극이나 무성영화를 보는 듯이 연출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흐르는 가운데 소리꾼 두 명이 각각 객석 양편에서 무대를 바라보며 변사처럼 해설과 목소리 연기로 호동과 낙랑공주가 사랑에 빠지고, 호동이 포로로 잡히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호동 부하들의 화려한 액션 연기도 펼쳐집니다. 뮤지컬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합니다. 3막 앞에선 소리꾼들이 고수와 함께 무대에 등장해 소리와 사설로 극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다양한 장르와 양식이 섞이는 현대 공연의 흐름을 반영합니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대목은 여기까지입니다. 1~3막의 본 공연은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현대적이고 상징적인 무대와 의상 등 현대 오페라의 특징을 일부 보여줍니다. 경사진 계단 구조의 미니멀리즘 무대입니다. 원작의 한계 때문이겠지만 역동적인 프롤로그와는 달리 정적인 연출입니다.
계단에 층층이 선 병사들은 합창할 때 다소 움직임이 있을 뿐 기본은 부동자세입니다. 주역들의 동선도 단조롭습니다. 배우들의 표정과 동작은 관습적이고 상투적이어서 극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현대 오페라 무대에서 요구하는 실감 나는 연기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찢는 3막 하이라이트 장면도 상징적으로 연출합니다. 원작 대본에서 무고수에게 술을 먹여 재우는 장면을 생략합니다. 자명고 실물은 등장하지 않고 낙랑공주가 허공에 칼을 휘두르는 동작만 보여줍니다. 낙랑공주가 고뇌하고 갈등하다가 마침내 자명고를 찢기까지의 흐름을 죽 이어서 보여주기 위한 연출로 보입니다만 좀 싱거운 감이 있습니다.
이 장면 직후 불쑥 나타나는 무고수의 등장은 갑작스럽습니다. 원작의 앞부분을 생략한 탓입니다. 기존 배역과 결이 다른 무고수의 과장된 의상과 분장은 실소가 나올 만큼 어색합니다. 흐름을 깹니다. 이날 공연 중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공연은 해오름극장의 온갖 무대 기계장치를 빈번하게 활용합니다.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은 좋지만 무대나 세트가 오르내릴 때마다 들리는 기계음은 거슬렸습니다. 특히 무대 가까이 앉은 관객에겐 더 크게 들려 불편했을 수 있겠습니다.
60년간 잠들어 있던 작품을 되살려 현대적 공연으로 재탄생시킨 제작진의 노력은 평가할 만합니다. 하지만 원작의 한계가 느껴지는 이날(11일) 공연의 완성도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국립오페라단 창단 작품이 어땠는지, 초창기 한국 창작오페라 수준이 어땠는지 실연을 통해 확인해 보는 '기념'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찾기는 어려운 무대였습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하지만 오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슈베르트는 모두 17편의 오페라를 썼고, 이 중 5편은 작곡가 생전에 무대에 올랐지만, 지금은 거의 잊히다시피 했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피에라브가스' 정도입니다. 슈베르트를 좋아한 이탈리아 명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 예술감독 재직 시절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려 호평받고, 음반도 냈지만 이후 주요 오페라극장의 레퍼토리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부실한 대본을 가장 큰 이유로 꼽습니다. 음악도 부분적으로는 뛰어난 선율미를 가진 넘버들이 있지만 세월의 검증을 이기고 살아남기에는 극적 구성력과 혁신성 면에서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요약하자면 슈베르트가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재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는 것이죠.
국립오페라단이 창단 60주년 기념작으로 지난 11, 12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린 장일남(1932~2006)의 오페라 '왕자 호동' 공연은 슈베르트까지 생각이 미치게 했습니다. 이 작품만 보면 한국인의 애창 가곡 '비목' '기다리는 마음'을 지은 장일남이 오페라 작곡가로서는 평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왕자 호동'은 국립오페라단이 1962년 창단 작품으로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작품입니다. 공연 프로그램 북에 따르면 이 작품은 초연 당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부실한 대본은 혹평받았습니다. 초연 이후 한 번도 다시 무대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작곡가도 서른 살에 완성한 그의 첫 오페라에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작품에서 미흡한 점을 많이 발견했고, 개작의 의욕을 보였지만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서양 오페라 역사에서도 슈베르트는 물론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로 추앙받는 모차르트, 바그너, 베르니, 푸치니 등도 첫 작품이 성공했거나, 초연 당시는 좋은 평가를 받았더라도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경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국립오페라단은 창단 첫 공연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작곡가 스스로 미흡하다고 여긴 작품을, 그것도 작곡가 사후인 6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렸습니다. 오페라 연출가보다는 뮤지컬 제작자로 유명한 한승석이 연출하고, 디자이너 코너 머피가 무대와 의상을 맡았습니다. 지휘자 여자경이 이끄는 클림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작곡가 전예은이 편곡과 음악 자문을 했습니다. 11일 공연에는 이승왕(호동), 박현주(낙랑공주), 김남두(최리왕). 박정민(장초 장군) 등이 출연했습니다. 공연은 대본이나 음악, 무대, 연출 등 여러 면에서 '현대 오페라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베르디의 초기 '애국 오페라' 느낌이 납니다. 음악이 쉬지 않고 이어지고, 몇몇 선율이 반복되는 점에선 바그너의 영향도 엿보입니다.
유치진의 5막 동명 희곡을 3막으로 줄인 고봉인의 대본은 초연 당시 지적대로 서사가 부족할 뿐 아니라 극적 구성력이나 가사의 호소력도 미약했습니다.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극 내용 자체가 공감을 얻기 힘듭니다. 호동이 최리왕에게 '겨레의 배신자'라 꾸짖고, 낙랑공주도 자명고를 찢는 명분으로 사랑뿐 아니라 겨레를 앞세우는데요. 역사적으로나 내용상으로나 설득력이 약합니다.
호동이 자애를 베푼 최리왕을 배신하고, 낙랑공주는 오직 사랑에 눈이 멀어 조국과 아버지를 배신하고, 큰어머니의 계략에 상심한 호동이 자살하는 이태준의 소설 '왕자 호동'이 원래 설화와 더 가까울 뿐 아니라 보편적인 정서에도 훨씬 와닿습니다. 공연에서는 오히려 낙랑공주의 정치의식을 더 부각하는데, 연출 포인트를 잘못 잡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부 음악 재배치와 국악기 추가 등을 제외하면 원곡의 선율과 오케스트레이션을 그대로 살렸다는 음악은 평범하고 밋밋합니다. 베르디 '애국 오페라' 수준의 합창과 아리아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음악적 감동을 받기에는 위력이 약합니다.
공연은 초연에 없던 프롤로그를 1막 앞에, 판소리 창을 3막 앞에 배치했습니다. 원작의 부족한 서사를 보완하기 위한 의도입니다. 프롤로그가 특이합니다. 마치 신파극이나 무성영화를 보는 듯이 연출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흐르는 가운데 소리꾼 두 명이 각각 객석 양편에서 무대를 바라보며 변사처럼 해설과 목소리 연기로 호동과 낙랑공주가 사랑에 빠지고, 호동이 포로로 잡히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호동 부하들의 화려한 액션 연기도 펼쳐집니다. 뮤지컬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합니다. 3막 앞에선 소리꾼들이 고수와 함께 무대에 등장해 소리와 사설로 극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다양한 장르와 양식이 섞이는 현대 공연의 흐름을 반영합니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대목은 여기까지입니다. 1~3막의 본 공연은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현대적이고 상징적인 무대와 의상 등 현대 오페라의 특징을 일부 보여줍니다. 경사진 계단 구조의 미니멀리즘 무대입니다. 원작의 한계 때문이겠지만 역동적인 프롤로그와는 달리 정적인 연출입니다.
계단에 층층이 선 병사들은 합창할 때 다소 움직임이 있을 뿐 기본은 부동자세입니다. 주역들의 동선도 단조롭습니다. 배우들의 표정과 동작은 관습적이고 상투적이어서 극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현대 오페라 무대에서 요구하는 실감 나는 연기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찢는 3막 하이라이트 장면도 상징적으로 연출합니다. 원작 대본에서 무고수에게 술을 먹여 재우는 장면을 생략합니다. 자명고 실물은 등장하지 않고 낙랑공주가 허공에 칼을 휘두르는 동작만 보여줍니다. 낙랑공주가 고뇌하고 갈등하다가 마침내 자명고를 찢기까지의 흐름을 죽 이어서 보여주기 위한 연출로 보입니다만 좀 싱거운 감이 있습니다.
이 장면 직후 불쑥 나타나는 무고수의 등장은 갑작스럽습니다. 원작의 앞부분을 생략한 탓입니다. 기존 배역과 결이 다른 무고수의 과장된 의상과 분장은 실소가 나올 만큼 어색합니다. 흐름을 깹니다. 이날 공연 중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공연은 해오름극장의 온갖 무대 기계장치를 빈번하게 활용합니다.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은 좋지만 무대나 세트가 오르내릴 때마다 들리는 기계음은 거슬렸습니다. 특히 무대 가까이 앉은 관객에겐 더 크게 들려 불편했을 수 있겠습니다.
60년간 잠들어 있던 작품을 되살려 현대적 공연으로 재탄생시킨 제작진의 노력은 평가할 만합니다. 하지만 원작의 한계가 느껴지는 이날(11일) 공연의 완성도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국립오페라단 창단 작품이 어땠는지, 초창기 한국 창작오페라 수준이 어땠는지 실연을 통해 확인해 보는 '기념'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찾기는 어려운 무대였습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