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대담=오형규 논설실장
선대위 해산과 함께 다시 학자로 돌아온 그는 이번 대선 결과를 어떻게 볼까. 최 교수는 “0.7%포인트의 득표율 격차는 국민이 선거를 통해 여야 모두에 주는 격려이자 회초리”라고 평가했다. 어느 한쪽에 일방적인 승리도, 일방적인 패배도 주지 않음으로써 양측 모두에 반성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는 “과거 중진국 상위 레벨에 도달했던 모든 나라는 사회 분열로 인해 쇠퇴의 길을 걸었다”며 “다음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행했던 국민 분열을 극복하고 사회 통합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 통합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이룰 수 있는 것일까. 답을 듣기 위해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이 11일 최 교수를 만났다.
▷국민은 정권교체를 택했지만 표 차이가 근소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국민이 여야 모두에 격려와 회초리를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민주당에는 완전한 패배는 아니지만 이전까지 분명히 문제가 있었으니 반성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줬습니다. 동시에 국민의힘엔 완전한 승리를 주지 않음으로써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주문한 셈입니다.”
▷미미한 표 차이가 국민 분열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맞는 얘기입니다. 다음 대통령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국민 분열을 추슬러 사회 통합을 이루는 일입니다. 통합이란 게 모두가 하나의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도 인정해주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인식, 즉 공화(共和)의 정신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왜 지금 국민 분열이 심한 것일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분열을 직접 조장한 영향이 큽니다. 대표적으로 문 대통령은 열혈 지지자를 의미하는 이른바 ‘문빠’ 세력이 상대 진영에 비난 문자를 집단적으로 보내는 등의 행위를 ‘경쟁을 흥미롭게 해주는 양념’이라며 옹호했습니다. 이처럼 집단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빠 문화’가 심해지면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어렵습니다.”
▷통합은 어떻게 이뤄야 하는 것입니까.
“지나친 자신감을 갖고선 진정한 의미의 통합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통합은 서로가 양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 이뤄질 수 있습니다. 하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내 말을 따르라’는 권위주의적 태도일 뿐, 통합을 지향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호남 발전 공약을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호남 발전 공약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통합은 복합쇼핑몰 하나 세워준다고 이뤄지진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통합을 이루기 위해선 호남 사람들이 왜 아직도 국민의힘에 마음을 열지 않는지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과거에 경험한 소외감, 특히 5·18 트라우마는 겪어보지 않고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뿌리 깊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정신적인 포용, 진정한 공감이 통합의 시작입니다.”
▷통합은 왜 중요합니까.
“통합은 사회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제적 발전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중진국 상위 레벨에 도달했다가 선진국으로 올라선 나라는 역사상 한 곳도 없습니다. 모두 쇠퇴의 길을 걸었는데요, 아르헨티나와 멕시코가 대표적입니다. 이들이 선도국 진입 문턱에서 공통적으로 겪었던 세 가지 현상이 있습니다. 정치 갈등 격화, 사회 분열, 그리고 포퓰리즘입니다.”
▷모두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네요.
“그렇습니다. 사회 통합만이 세 가지 병폐적 현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은 중진국 최상위 레벨에 있죠. 경제적으로는 이미 많은 통계 지표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포장하기도 합니다. 국민도 삼성전자와 방탄소년단(BTS)이 우리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모든 나라의 본모습은 그 나라의 정치에서 드러납니다. 아무리 삼성전자와 BTS가 있다 하더라도 정치 갈등, 사회 분열, 그리고 포퓰리즘이 심화한다면 우리는 선도국으로 도약하기 상당히 어려울 것입니다.”
▷국민 개인 차원에선 통합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합니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민주주의에 걸맞은 시민의식을 갖춰야 합니다. 생각하지 않는 시민은 백성입니다. 생각하는 백성이 시민입니다. 왕정국가의 백성은 생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왕의 생각을 대행할 뿐이었죠. 왕이 모든 결정을 하고 책임을 졌기 때문입니다. 반면 민주주의 시대엔 왕이 아니라 개인 모두가 생각을 하며 책임을 집니다. 생각을 하지 않는 순간 진영논리에 갇히게 됩니다.” ▷권력자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항상 민주와 자유라는 높은 차원의 가치를 더 중히 여겨야 합니다. 반대 세력의 특정 사건이나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민주와 자유의 가치를 훼손하며 권력을 행사해선 안 됩니다. 국가가 높은 차원의 가치를 훼손한 대표적인 사례가 문재인 정부의 5·18특별법입니다. 5·18에 대한 왜곡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제한했습니다. 새 정부는 더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조성해야 합니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리가 왜 항상 긴장하며 전쟁을 대비해야 하는지 적나라하게 알려줬습니다. 혹자는 ‘설마 전쟁이 일어나겠어?’라며 맹목적인 평화주의를 부르짖지만 이런 주장은 듣기에만 좋을 뿐 국가의 안전엔 해롭습니다. 평화는 평화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만 지킬 수 있습니다.”
▷지정학적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한국은 어떤 외교 원칙을 세워야 할까요.
“어떤 나라든 대한민국의 영토와 문화, 역사를 존중하고 욕심내지 않는지를 최우선으로 살펴야 합니다. 영토 문화 역사를 고려하지 않고 이념이나 눈앞의 이익만 좇아 관계를 맺으면 나라 근본이 흔들리게 됩니다.”
▷중국은 사드 보복과 같이 어떻게든 한국에 영향을 미치려 할 텐데요.
“그걸 감당하지 못해 상대국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게 바로 ‘굴종’입니다. 굴종이 계속되면 속국이 되죠. 우리는 흔히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의식만 앞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일본의 식민 지배에 앞서 중국이 장기간 한국을 속국처럼 대해온 역사도 균형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내외적으로 참 험난한 앞날이 기다리고 있네요.
“패러다임 전환기는 위기이기도 하지만 한 단계 도약할 기회이기도 합니다. 한국 국민은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 이상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우리 모두가 자신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때입니다.”
■ 최진석은 누구
노장사상 연구 동양철학자
5·18특별법 비판으로 주목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30년가량 노장(老莊)사상을 연구한 동양철학자다.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동양철학 석사 학위, 중국 베이징대에서 도가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노자와 장자의 사상, 삶의 태도 등을 중심으로 대중 강연을 해온 그는 지난해 12월 ‘나는 5·18을 왜곡한다’는 시(詩)를 SNS에 올리며 지식인 사회에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시에는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면 형사 처벌하도록 한 5·18특별법이 자유를 위축시키고 민주주의 정신을 위반한다는 비판이 담겼다. 지난 1월엔 안철수 대선 후보의 요청으로 국민의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2개월 동안 안 후보의 대선 레이스를 도왔다.
△1959년 전남 함평 출생 △1986년 서강대 철학과 졸업 △1988년 서강대 동양철학 석사 △1996년 베이징대 도가철학 박사 △1998~2017년 서강대 철학과 교수 △2005~2007년 서강대 동아연구소장 △2018년~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2019년~ 새말새몸짓 이사장
정리=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