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청와대 '불통 500m'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은 자신의 보좌관을 시켜 박근혜 대통령에게 관련 보고서를 전달했다. 그 방식이 알려지면서 논란을 낳았다. 보좌관은 자전거를 타고 대통령 집무실인 본관으로 달려갔는데, 위급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구식’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는 박근혜 정부 시절뿐 아니라 역대 어느 정부에서나 일상적으로 벌어진 일이다.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을 만나고 보고서를 전달하기 위해 급할 땐 자전거와 승용차를 이용하는 게 보통이다. 청와대 구조 탓이다. 대통령 집무실·부속실이 있는 본관과 비서실장·수석비서관 등 참모들이 근무하는 여민관은 500m가량 떨어져 있다. 도보로는 10분 정도 걸린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과 참모들 간 대면 접촉이 힘들어 전화 통화나 서면 보고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서실장까지 대통령을 만나려고 부속실에 면담 신청을 해야 하니 500m가 ‘불통’과 ‘인(人)의 장벽’을 만들어낸 셈이다. 참모들이 대통령을 만나기 힘들어 부속실 도움을 받다 보니 ‘문고리 권력’의 힘이 커지는 부작용도 생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민관에도 집무실을 만들었지만, 불통의 거리를 좁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역대 대선 후보들이 청와대를 광화문 정부청사로 이전하는 공약을 단골로 내놓은 것도 이런 격리구조 때문이다. 8476㎡ 넓이의 한옥식 청와대 본관이 ‘구중궁궐’의 권위주의 이미지를 풍겨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이전론의 이유였다. 본관 대통령 집무실은 출입문에서 책상까지 거리가 약 15m에 달한다. 장관이 보고를 마치고 뒷걸음질로 나오다가 다리가 꼬여 넘어지는 일도 있었다.

청와대 이전이 매번 도루묵이 된 이유는 경호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광화문 청사는 대로변에 있어 테러 공격에 취약하다. 다른 이유도 있다. 청와대는 넓은 녹지공간이 있어 산책과 사색하기 좋다.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온 뒤 마음이 바뀌면서 민심과 괴리를 불렀다.

윤석열 당선인이 집무실을 광화문 청사로 옮기는 공약을 실천하겠다고 했다. 임기 첫날부터 광화문 청사에서 근무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한 것이다. 국민과 소통하고 권위주의에서 탈피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약속을 지키길 바라며, 이참에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나는 계기까지 만든다면 헌정사에 큰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