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풍경' 담은 추상…사빈 모리츠 개인전
세로 2m에 가까운 커다란 캔버스에 색을 쌓고 또 쌓는다.

아무런 스케치 없이 오로지 감정과 감각에 의한 붓질이 거듭된다.

그림에서 작가 자신이 어떤 울림을 받을 때 비로소 작품은 완성된다.

화면의 모호한 형상이 품은 이야기는 작가 혹은 관람객의 개인적인 기억일 수도, 인류와 자연의 역사일 수도 있다.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독일 여성화가 사빈 모리츠(53)의 아시아 첫 개인전 '레이징 문'(Raging Moon)이 개막했다.

사빈 모리츠는 개인과 집단의 기억, 그 기억으로부터 형성된 추상의 풍경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펼치는 작가다.

1969년 동독에서 태어난 그는 1985년 서독으로 이주해 오펜바흐미대를 거쳐 1991년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90)의 지도를 받았고, 그의 아내가 됐다.

구상과 추상, 사진과 회화, 고전과 반 고전의 영역을 넘나드는 작업을 해온 리히터처럼 사빈 모리츠의 작업도 변화무쌍하다.

동독에서 보낸 유년기의 경험과 전쟁의 참상을 표현한 구상 작업을 하던 작가는 2015년부터 추상 회화로 '정신적 풍경'을 다루기 시작했다.

어둡고 무거운 역사적, 정치적 소재를 담아내던 그의 캔버스에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채로운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때로는 경쾌하게 역동적인 에너지를 쏟아내고, 때로는 깊은 내면을 표현하듯 진지해진다.

이번 전시는 그가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제작한 회화, 에칭 연작 등 50여 점을 소개한다.

2015년 이후에도 그는 추상과 구상을 자유롭게 오가며 작업해왔다.

사빈 모리츠는 "구상 회화가 구체적인 경험과 공간, 생각을 표현한다면 추상 회화는 보편적이지 않은 인간의 영역과 감각적인 영역을 다루며 정신적인 세계로 옮겨간다"고 말했다.

4월 24일까지.
'정신적 풍경' 담은 추상…사빈 모리츠 개인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