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에서 내린 공무원들은 앞다퉈 길가에 쌓여 있는 양파를 옮겼다. 10㎏ 단위로 묶여 성인 남성도 쉽게 들어서 옮기기 힘든 양파를 힘겹게 차로 옮기는 이들의 모습이 여기 저기서 보였다.
양파들은 몇 시간전 인근에서 있었던 시위의 소품으로 사용됐다. 이날 오후 한국양파연합회, 전국양파생산자협회는 농림부와 기재부 인근에서 '전국 양파 생산자 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양파가격 보장과 농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촉구했다.
하지만 집회 이후 인도에 쌓아둔 양파를 그대로 두고 철수하면서 일이 벌어졌다. 세종 청사 일대를 관리하는 청사관리본부 등에서 치울만한 인력을 동원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 커뮤니티 등을 통해 '양파를 갖고갈 이들은 가져가라'는 메세지가 공유되면서 공무원들도 퇴근길에 양파를 집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양파 줍줍'은 이날 밤 쌓여있던 양파들을 모두 집어가면서 끝났다. 소식을 들은 인근 주민들도 몰려들며 예상보다 빨리 소진됐다.
통상 시위에 사용되고 방치된 농산물은 사회단체에 기부하거나 도매시장에 판매된다. 하지만 14일에는 종일 내린 비에 양파가 젖어 부패 위험이 높아 이같은 처리가 불가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주최측이 농협에 처리를 의뢰한 가운데 쓰레기로 폐기할 경우 ㎏당 250원의 비용이 발생해 총 400만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됐다"며 "불가피하게 푸드뱅크에 기증하고 남은 물량을 시민들에게 나눠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세종청사 일대는 전국에서 가장 빈번하게 집회가 열리는 장소다. 세종경찰서에 따르면 6개월간 대략 1200건의 집회가 신고돼 절반 정도가 실제로 개최된다.
이에 따른 소음으로 중앙부처 근무 공무원들은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한다. 양파 농민들은 본인들의 주장을 알리며 공무원들에게도 작은 보상을 줬을지도 모르겠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