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 산모 이송 지연 사례 잇따르자 외출 삼가고 '집콕' 돌입
전국 확진 임산부 2천여명 추정…산모 분만 병상은 160개 불과
전문가 "지역 거점 분만 의료기관 마련해 응급환자 대비해야"

"차라리 감염될 거면 임신 중기 때 감염되길 바라는 마음마저 생겨요.

그러면 최소한 출산 임박해서 확진될 가능성은 작을 것 같아서…"
"진통 오면 어디로 가나"…분만실 부족에 임신부 불안 최고조
용인에 사는 임신 38주 차 A(34) 씨는 최근 열흘여 간 한 번도 외출하지 않았다.

출산이 임박한 확진 산모가 분만실을 찾아 수 시간을 헤매다가 헬기까지 타고 이송됐다는 보도를 본 이후부터다.

출퇴근하는 A씨의 남편은 지난 한 주 동안만 자가 진단키트를 4개나 썼다.

사무실에선 마스크를 벗지 않고 식사도 따로 하지만, 조금이라도 타인과 접촉이 생겼을 땐 귀가 전 음성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A씨는 "누가 보면 유난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막달에 확진이 됐다가 진통이 왔을 때 병원에 가지 못하면 태어날 아이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며 "일상을 포기하더라도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A씨뿐 아니라 임산부들이 모여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불안감이 극에 달한 상태다.

한 37주 차 임신부는 게시물을 통해 "남편이 확진자와 접촉해 친정으로 피신했는데, 이번에는 친정아버지가 확진이 났다"며 "어디를 가나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 혼자 있을 수밖에 없는데 너무 두렵다"고 털어놨다.

"진통 오면 어디로 가나"…분만실 부족에 임신부 불안 최고조
이들의 걱정처럼 최근 확진 임신부들이 분만실을 찾아 헤매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16일 경기도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13일 재택치료를 받던 평택의 확진 산모가 30여 곳 병원에서 입원을 거부 당한 끝에 헬기를 이용, 신고 5시간 40분 만에 300여㎞ 떨어진 경남 창원의 병원으로 이송됐다.

지난 9일에는 광명의 산모가 6시간을 길에서 헤매다 130㎞ 떨어진 충남 홍성에서 출산했고, 지난 8일에는 광주에 사는 산모가 헬기로 200여㎞를 날아 전북 남원까지 이송되는 등 연일 비슷한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2월 중순까지 확진 판정을 받은 임신부는 총 595명이다.

2월 15일 이후에는 역학조사 간소화로 임신 여부는 집계되지 않았다.

다만 2월 중순 당시 일일 신규 확진자 수는 최대 9만여명 수준으로, 최근 일일 확진자가 40만명을 넘는 것을 고려하면 현재 확진 임신부 수는 2천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확진 산모 분만 병상 수는 전국 160개로, 전염병 확산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정부는 이번 주까지 병상 수를 252개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늘어나는 확진 산모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진통 오면 어디로 가나"…분만실 부족에 임신부 불안 최고조
이에 정부는 지난 8일 건강보험에 '분만 격리관리료' 항목을 신설해 확진 산모의 자연분만과 제왕절개에 가산 수가 300%를 적용하는 대책을 내놨다.

확진 산모를 수용했을 때 병·의원이 얻는 이익을 높여 다니던 병원에서 출산이 가능하게끔 하는 유도책이지만 일선 현장에선 비관적인 목소리가 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산부인과 관계자는 "확진 산모를 수용해 출산하더라도 별도의 회복실과 신생아 관리실을 마련하고 관련 인력까지 새로 배치하는 등 후속 조치들이 필요하다"며 "300%의 수가 인상으로 메꾸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산모와 신생아들은 백신 접종률이 낮은 고위험군이라 확진자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며 "그러면 결국 확진 산모만 전문적으로 받는 병원이 될 수밖에 없는데 개인병원으로선 감당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산부인과 관계자는 "확진 산모가 분만 중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경우 관련 전문의가 없는 일반 병원에선 대처가 어렵다"며 "자칫하다 의료사고로 이어질 경우 책임소재를 가리는 문제도 뒤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분만을 전문으로 하는 별도의 지역거점 의료기관을 마련하는 게 병상 부족 해결의 근본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김동석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일반 병·의원이 확진 산모와 일반 산모를 동시에 수용하는 건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고, 당연히 일반 산모들의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며 "확진자 전문 병원으로 갔다가 팬데믹이 끝날 경우 문을 닫아야 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확진 산모 수용을 쉽게 결정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전반적인 의료 여건이 어렵더라도 공공 의료기관이 나서서 분만 의료를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을 거점별로 마련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라며 "산부인과 의사 부족 문제도 심각한데 이번 팬데믹을 거울삼아 필수 의료 인력들이 충분히 갖춰질 수 있도록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