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각 멤버들도 ‘거트(gut·배짱)’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관 제의를 받았다고 본인 스스로 능력도 안 되면서 덥석 물어선 곤란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존 F 케네디 시절 미국의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너마라(사진) 얘기를 들려줬다.

“케네디가 당선되고 나서 국무·국방·재무장관 등 3대 핵심 보직 임명을 위해 각각 2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인사검증을 해 쇼트리스트 5명씩 후보를 추렸다고 해요. 당시 국방장관 후보에 오른 인물이 맥너마라 포드 회장이었는데, 케네디가 인터뷰하기 위해 만났더니 대뜸 호칭부터 ‘미스터 프레지던트’가 아니고 ‘미스터 프레지던트 일렉트’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우리처럼 사석에서는 그냥 ‘대통령님’이라고 하면 되는데, 굳이 ‘대통령 당선인’이라고 부른 거죠. 케네디 기분이 팍 상하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케네디가 상원의원 시절 쓴 《용기있는 사람들》이란 책을 들고 나타나서 ‘이 책 당신이 쓴 것 맞냐’고 물어봤다는 겁니다. 미국의 역대 정·재계, 관계 주요 인물들의 스토리를 엮어 쓴 것인데, 퓰리처상까지 받은 책이죠. 케네디가 ‘맞다’고 하니 이번엔 ‘제가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하고 거꾸로 케네디가 인터뷰당하는 상황이 벌어진 거예요. 등장인물들을 놓고 1시간가량 토론을 벌인 후 맥너마라가 한마디 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제가 대통령으로 모실 만한 분입니다. 저를 국방장관에 임명해주시면 최선을 다해 직을 수행하겠습니다’라고요. 케네디는 하도 괘씸해 ‘당장 나가라’며 내보냈고, 맥너마라는 본인이 버려진 카드인 줄 알고 마음을 접었다고 해요. 그런데 웬걸, 나흘 뒤 조각 명단을 발표했는데 거기에 맥너마라 국방장관 명단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윤 전 장관은 “실제 맥너마라는 미국의 역대 국방장관 중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인물로 기록돼 있다”며 “우리에겐 먼 얘기일지 몰라도 장관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대통령이나 청와대 지시에 무조건 굽신거릴 게 아니라 원칙에 어긋난 지시가 내려오면 ‘아니다’라고 말할 용기를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도 재임 중 투자개방형 병원 도입 문제를 놓고 당시 여론 눈치를 보던 이명박 대통령 앞에서 복지부 장관과 삿대질을 하면서 싸웠던 일화가 있다.

윤 전 장관은 대통령의 인재 발탁 방식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선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 얘기를 전해줬다.

“대처 총리가 취임한 당시 이른바 ‘영국병’으로 경제가 휘청거렸는데, 가장 큰 문제가 노조의 불법파업, 그중에서도 탄광노조 파업이었다고 합니다. 탄광이 멈추면 석탄보급이 안 돼 경제가 멈추니 정부로선 속수무책이었죠. 그래서 매번 정부는 노조와 협상하다가 오래 못 가 두손을 들곤 했습니다. 해법을 놓고 고심하던 대처 총리는 노동부 장관 후보로 4명을 추려놓고 1 대 1 면접에서 ‘당신이 장관이 되면 탄광노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중 한 후보가 이런 방안을 제시했답니다. ‘탄광노조와의 대치가 장기전으로 가더라도 정부가 버티려면 석탄 보급을 확보하는 게 관건인데, 자원이 풍부한 호주 정부와 계약해 대규모 석탄을 수입해 비밀창고에 쌓아두고 노조와 협상하면서 장기전으로 몰고가자’였다는 거죠.

대처 총리는 그 후보의 제안을 받고 장관으로 발탁해 맡겼고, 제안대로 밀어붙인 결과 결국 노조를 손들게 만들었고, 영국병을 치유하는 계기가 됐다는 겁니다.”

윤 전 장관은 “해당 분야 장관 자리에 최적임자를 어떻게 추려내느냐를 보여준 좋은 사례”라며 “한국도 노동개혁이 정말 중요한 과제인데 대통령이 확실한 철학과 정책 방향, 기준을 갖고 제대로 실행할 전문가를 장관으로 발탁해 모든 것을 믿고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