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청와대를 전면 재건축하자
국가 지도자의 집무실과 관저는 크기와 개방 수준에서 그 나라 민주주의 수준과 반비례한다. 러시아 크렘린이 그렇다. 푸틴 대통령이 참모들과 4m에 달하는 긴 테이블을 놓고 떨어져 앉아 회의하는 모습은 기괴하다. 중국 국가주석 집무실이 있는 중난하이는 황제들이 기거하던 곳답게 거대하고 고압적·권위적이다. 세습왕조 국가 북한의 주석궁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건축이 정치를 결정하고, 정치가 건축을 결정한다”(미쿠리야 다카시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는 말대로다.

반면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대개 집무실·관저가 크지 않고, 국민과의 거리도 가깝다. 미드에서 보듯 미국 백악관은 한밤중 긴급 상황이 벌어지면 대통령이 잠옷 바람에 나와 참모들과 머리를 맞댄다.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오벌오피스)과 비서진 사무실이 있는 ‘웨스트윙’은 대통령 가족 거주 공간(중앙관저)과 붙어 있다. 누구나 백악관 담장 앞까지 가서 사진을 찍고, 시위도 한다.

영국 총리관저 다우닝가 10번지는 본래 18세기 지어진 일반 타운하우스여서 여느 집과 다를 바 없다. 그 안에서 비서진이 함께 근무하고, 옆집 11번지 재무장관과도 바로 연결된다. 스웨덴의 총리 집무실은 건물 사이에 파묻힌 듯 아담하다.

이에 비하면 청와대는 구중궁궐이나 다름없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경복궁을 누르는 듯한 이 터는 본래 조선총독부 관저 자리였다. 1991년 완공된 대통령 집무실(본관)과 관저는 비서동(棟)에서 직선거리로만 500~600m에 이른다. 본관과 관저 사이도 200m다. 본관까지 걸어서 10분 가까이 걸려 참모들은 급하면 자동차나 자전거를 탔다. 비서실장조차 면담 일정을 따로 잡아야 할 정도다. 애초에 소통을 배제하고 권위·위엄을 우선한 탓이다.

대통령이 돼 이런 환경에서 지내다 보면 의지와 무관하게 세상과 동떨어진 ‘제왕적 대통령’이 되기 십상이다. ‘공간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경구가 떠오른다. 그래서 역대 정권마다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자는 공약이나 논의가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도 예외가 아니다. ‘국민과 소통’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을 내건 윤석열 당선인의 의지가 확고하다. 공약대로 집무실을 광화문 청사(정부서울청사 또는 외교부 청사), 관저는 삼청동 총리공관을 쓰는 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경호 교통 등의 문제로 대신 용산 국방부(집무실)·한남동(관저) 이전안이 유력하다는 소식이다.

당선인은 ‘왕궁 같은 청와대’ ‘100%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광화문이든 용산이든 옮기는 게 간단치 않다. 광화문은 사방 노출된 게 단점이다. 용산은 한남동 관저까지 4㎞다. 매일 아침저녁 교통·통신 통제를 한다면 시민들의 볼멘소리가 나올 게 뻔하다. 옮겨도 문제, 안 옮겨도 문제인 셈이다.

무엇이 최선일까.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당선인이 청와대로 들어갈 확률은 제로(0)”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왜 옮기는가’를 따져보면 이 말도 도그마처럼 들린다. 청와대 이전 취지는 하드웨어(위치)보다 소프트웨어(의지)를 우선한 약속이 아닌가. 대통령이 참모들 앞에서 A4를 읽는 게 아니라 수시로 기자회견을 열고 직접 국민과 만나겠다는 게 당선인 생각이다. 토리와 아침 산책을 하고, 어려운 이들을 불러 요리 솜씨를 발휘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대통령 눈높이가 보통 사람과 맞춰질 때 비로소 제왕에서 ‘소통 대통령’으로 내려온다. 그게 당선인 의지 아닌가.

그러면 아예 발상을 바꿔보자. 공약 준수가 국민에게 또 다른 불편을 안긴다면 재고하는 게 좋다. 총리실이나 국방부의 연쇄 이전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럴 바엔 기존 청와대를 시대적 요구에 걸맞게 전면 개조하는 게 낫다. 백악관을 벤치마킹해 집무실-참모사무실-관저를 수평으로 일체화하는 것이다. 우선 비서동에 임시 집무실을 마련하고, 본관 재건축이 끝나면 참모들과 함께 들어가면 된다.

상업용 건물 하나 짓는 데도 몇 년씩 걸리는 판에, 청와대 재건축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윤 당선인은 임기 내내 못 들어갈 공산이 크다. 그러면 어떤가. 다음 대통령들이 쓰면 된다. 차제에 청와대를 전면 재건축해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 헤드쿼터’로 만드는 방향으로 통 크게 구상해 보자. 이때 고려할 것은 국가 경쟁력과 행정 스마트화가 우선이다. ‘뭣이 중헌가’ 생각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