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석 칼럼] 은행, 계급장 떼면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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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CBDC, 테크핀, 데이터 등 디지털 혁명 시대 은행은 IT회사?
CBDC, 테크핀, 데이터 등 디지털 혁명 시대 은행은 IT회사?
디지털 혁명시대에 은행은 IT산업의 일종으로 분류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하여 고객관리, 대출 심사, 투자 분석, 자산관리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원을 아예 'AI은행원'으로 배치하는 시대다.
정장에 넥타이를 맨 화이트 칼러의 대명사인 은행원들도 이제 디지털뱅킹 시대에 무한 변모를 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내은행들도 정부의 행정력으로 부여한 은행업 라이선스(계급장)만 있을 뿐이지 테크핀(TechFin) 회사보다 경쟁력이 점점 뒤쳐지고 있다.
현재 은행들의 모습은 앞으로 수년 안에 크게 변모할 것이다. 아니 은행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견해도 많다. 무엇이 은행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2) 분산되는 은행(Distributed Bank) 시나리오: 기존 은행과 테크 핀이 서로 분업함.
3) 강등되는 은행(Relegated Bank) 시나리오: 은행업이 테크 핀에 흡수되어 후방 사업으로 퇴화함.
4) 비 중개 은행(Disintermediated Bank) 시나리오: 블록체인 기술로 인해 제삼자에 의한 중개 기능, 즉 금융 업무 자체가 사라짐"이라는 4가지 시나리오다.
놀랍게도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7년에 바젤은행감독위원회(BIS)가 은행업의 미래에 관해 예상한 시나리오다. 첫 번째 시나리오를 제외하면 전부 은행에 위협적인 상황이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그야말로 최악의 가정인데 사실상 그런 흐름으로 가고 있다. 가상자산의 하나인 이더리움을 이용해 수신·여신·보관·보험·옵션 거래 등에서 탈중앙화를 지향하는 디파이( DeFi, definance) 움직임이 해외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한국도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리고 테크핀이 금융 산업의 지형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테크핀은 금융사가 IT기술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사용하는 핀테크(FinTech) 개념과 유사하지만, IT 기업이 행위 주체인 점을 강조한 용어다. 즉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IT 기업이 주체가 되어 기술과 금융을 접목하려는 시도를 뜻한다.
이러한 테크핀의 부상으로 은행 없는 은행 서비스가 가능해지고 있다. 예금·송금·대출·환전 등 은행의 금융 서비스를 테크핀들이 분화·특화해가면서 은행 서비스는 계속되지만, 은행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은행업이 테크핀에 흡수되어 후방 사업으로 퇴화하는 세 번째 시나리오는 현재 한국에서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지난 3년 동안 많은 사람이 카카오나 토스 등 테크 핀이 제공하는 앱을 통해 스마트폰으로 자금을 이체했는데 이 둘을 포함하여 인터넷 전문은행이 3개나 생겼는데 총 21개 은행의 '메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상당수 금융 소비자들이 거래 은행의 존재를 점점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기존 은행들은 앱을 통해 접수된 자금 이체 지시를 기계적으로 수행만 하는, 테크핀의 백 오피스로 전락할 수 있다. 실제 네이버, 다음 또는 교통카드 사업자들이 하는 일을 은행업(금융업)이라고 대중이 인식하는 상황이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2030년대 후반이 되면 은행은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로 개인이나 기업의 사생활 및 경제활동을 정부가 훤히 들여다볼 수 있고, 자금 중개 등 금융 권력의 정부 독점, 가상화폐 시장의 대폭 축소 등 더 많은 단점이 있다.
CBDC는 기능과 구조상 중앙은행과 사용자 사이의 은행, 카드와 같은 결제회사와 자금중개회사, 투자를 판단하는 투자금융 회사 등의 기능이 대폭 줄어들거나 사실상 필요 없게 된다. 금융, 결제, 투자와 같은 경제활동 전반을 중앙은행과 정부가 독점적 권력으로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CBDC의 전면적인 시행은 금융구조가 완전하게 개편이 되면서 기존의 금융회사는 몰락하거나 단순한 보조 기능만 가지게 되는 딜레마에 빠진다. 따라서 금융산업, 통화정책, 금융안정에 막대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게 된다.
현재 CBDC를 정식으로 통용하는 나라는 바하마, 나이지리아, 동 카리브해 7국 연합 등이다. 하지만 이런 나라들은 온라인 결제 능력이 부족해 대안으로 사용하는 성격이 강하다. 주요 추진 나라 중에서 중국이 가장 먼저 치고 나가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2020년부터 선전, 쑤저우 등 10여 개 도시에서 시민들이 ‘디지털 위안화’로 부르는 CBDC를 사용하게 하는 시범 운영을 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실험 등을 하며 준비 중이나, 시행에는 신중한 입장이다.
머지않아 한국도 CBDC 발행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마 그 시점은 한국과 경제, 안보에 동맹 관계 등에 있는 미국의 CBDC 추진 일정과 같이 갈 것이다. 그동안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충분하게 기술, 방식, 제도는 물론이고 한국은행법, 은행법 등 관련 입법 보완도 검토하고 추진해야 한다.
CBDC 발행이 본격화하면 기존 금융시스템의 대변혁은 불가피하다. 그때가 멀어 보이지 않는다. 생존하려면 은행은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따라서 그는 인간성을 중시하는 하이터치 개념을 도입하여 최첨단 기술 문명에 대한 균형감각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인간성을 수호하는 기술을 받아들이고, 인간성을 저해하는 기술은 거부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상업 은행들의 영업 환경 악화는 국제적인 대세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계 기업뿐만 아니라 알리페이, 위챗 등 중국의 테크 핀들도 기존 금융업을 크게 위협하고 물론 기존 은행들도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금융 빅데이터를 활용하거나, 다른 금융사 고객도 간편 결제가 가능한 개방형 결제 플랫폼을 만드는 등 다양한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금융 산업 생태계의 변화가 은행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테크 핀과 전통적 은행은 협력과 경쟁을 동시에 하는 ‘프레너미( frenemy)' 관계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 테크 핀의 새로운 도전을 전통 은행들이 디지털 전환을 가속하는 배경으로 파악하는 시각도 있다. 마찬가지로 기존 금융산업생태계는 가상자산(암호화폐) 생태계와 공통분모를 찾아 유익한 점을 공유해야 한다.
플랫폼 기업들이 전자상거래와 물류에서 확보된 빅데이터를 금융 활동에 접목해 발휘하게 될 ‘플랫폼 파워’는 기존 은행들이 모아 온 노하우나 경험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이 크고 정교하다. 데이터의 질이 좋다. 방대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해 맞춤형 금융상품 개발도 가능할 것이고, 정보 기반 신용평가모델 구축에서도 기존 은행보다 우위에 놓일 수 있다.
이처럼 물류(logistics), 상류(trade), 금류(finance)가 결합하면 금류 하나만 담당하는 금융기관보다 경쟁력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 흐름 속에서 기존 금융기관, 특히 상업 은행들이 테크 핀과 경쟁하려면 무엇보다 돈을 중개한다는 전통적 사고에서 벗어나 데이터를 활용하는 디지털 하이테크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 “돈이 아니라 데이터를 맡기면 이자를 준다”는 식의 사고 전환과 데이터 활용이 필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고객 빅데이터와 블록체인, AI 등을 활용할 수 있는 ‘하이테크’ 인력이 크게 보강되어야 한다. 또 고객을 기다리는 서비스가 아니라 고객을 찾아다니며 고객과의 접점을 대폭 확대하는 ‘하이 터치’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돈만이 아니라 점점 확대되는 디지털 자산의 관리까지 맡길 수 있도록 새로운 서비스를 늘려가야 한다.
필자는 1997년 동남은행 재직시절 온라인시대가 오리라 예상하고 온라인쇼핑몰을 은행이 에스크로뱅킹(Escrow Banking) 시스템을 제공하여 소비자와 판매자가 안전하게 매도·매수를 하는 방안을 만들었다.
14일간 구매 자금을 묶어두고 매수확정이 되면 판매자에게 자금을 이체하는 서비스였다. 이를 통해서 고객의 구매내용 등 패턴 데이터를 통하여 은행은 여신심사 자료로 활용하려는 의도였다. 너무 앞서간 것인지, 아무튼 정부는 당시 금융구조조정을 은행의 경쟁력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으로 하여 좌절되었지만, 지금은 필자가 그렸던 금융시스템이 보편화 되었다.
이제 기존 금융기관들은 혁신 전략을 대출 관행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국내 은행들은 수십 년 동안 미국의 투자은행을 모델로 삼으면서 유가증권 투자 활동에 주력해왔다. 여신 업무는 부동산 담보 대출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고객의 신용이 나 기술에 대한 평가는 부동산 감정기관이나 기술평가기관에 위임해왔다.
고객의 재산(담보물)에만 지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고객과 고객의 사업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던 셈이다. 고객의 자금 수요를 능동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엄청난 빅데이터를 무기로 삼은 테크핀들 의 도전을 절대 이길 수가 없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1년 상반기 19개 국내은행의 당기순이익은 10.8조 원이다. 연간으로 추정하면 21.6조 원이다.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 은행당 평균 1.14조 원의 당기순익을 낸 것이다. 현재는 은행업 인가제로 과점(寡占, oligopoly)적 이익을 내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고객의 생활 방식과 관심사에 대한 모든 정보를 지닌 것과 다르지 않았다. 데이터였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관들이 미국의 투자은행 경영 방식을 가져오면서 이런 장점들이 조금씩 사라져 갔다.
따라서 전통 은행들이 테크 핀과 경쟁하려면 과거로 돌아길 필요가 있다. 단기적·유동적 운전자금을 대출할 때도 장기적·고정적 설비자금을 대출할 때처럼 실수요를 파악하는 세심함과 부지런함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전년도 매출액과 담보물만 파악할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떤 용도로 얼마의 자금을 지출해왔는지 등을 세심하게 파악해 신용을 평가하는 것이다.
독일의 은행이 이러한 방식을 취해왔는데, 그 결과 담보물만 챙기는 우리나라 은행보다 고객과의 관계가 훨씬 긴밀하고 안정적이라고 평가받는다.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지 않는다면, 초저녁도 안되어 불 끄고 문을 닫으면서 은행 점포가 높은 임대료를 감수하면서 길목 좋은 건물의 1 층에 있을 이유가 없다.
디지털 혁명시대, 은행 역시 적자생존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한경닷컴 The Lifeist> 박대석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정장에 넥타이를 맨 화이트 칼러의 대명사인 은행원들도 이제 디지털뱅킹 시대에 무한 변모를 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내은행들도 정부의 행정력으로 부여한 은행업 라이선스(계급장)만 있을 뿐이지 테크핀(TechFin) 회사보다 경쟁력이 점점 뒤쳐지고 있다.
현재 은행들의 모습은 앞으로 수년 안에 크게 변모할 것이다. 아니 은행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견해도 많다. 무엇이 은행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 먼저 4 가지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1) 더 나은 은행(Better Bank) 시나리오: 은행들이 AI·빅데이터·클라우드 컴퓨팅 등 IT 기술을 금융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접목함으로써 테크 핀의 도전을 물리침.2) 분산되는 은행(Distributed Bank) 시나리오: 기존 은행과 테크 핀이 서로 분업함.
3) 강등되는 은행(Relegated Bank) 시나리오: 은행업이 테크 핀에 흡수되어 후방 사업으로 퇴화함.
4) 비 중개 은행(Disintermediated Bank) 시나리오: 블록체인 기술로 인해 제삼자에 의한 중개 기능, 즉 금융 업무 자체가 사라짐"이라는 4가지 시나리오다.
놀랍게도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7년에 바젤은행감독위원회(BIS)가 은행업의 미래에 관해 예상한 시나리오다. 첫 번째 시나리오를 제외하면 전부 은행에 위협적인 상황이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그야말로 최악의 가정인데 사실상 그런 흐름으로 가고 있다. 가상자산의 하나인 이더리움을 이용해 수신·여신·보관·보험·옵션 거래 등에서 탈중앙화를 지향하는 디파이( DeFi, definance) 움직임이 해외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한국도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리고 테크핀이 금융 산업의 지형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테크핀은 금융사가 IT기술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사용하는 핀테크(FinTech) 개념과 유사하지만, IT 기업이 행위 주체인 점을 강조한 용어다. 즉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IT 기업이 주체가 되어 기술과 금융을 접목하려는 시도를 뜻한다.
이러한 테크핀의 부상으로 은행 없는 은행 서비스가 가능해지고 있다. 예금·송금·대출·환전 등 은행의 금융 서비스를 테크핀들이 분화·특화해가면서 은행 서비스는 계속되지만, 은행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은행업이 테크핀에 흡수되어 후방 사업으로 퇴화하는 세 번째 시나리오는 현재 한국에서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지난 3년 동안 많은 사람이 카카오나 토스 등 테크 핀이 제공하는 앱을 통해 스마트폰으로 자금을 이체했는데 이 둘을 포함하여 인터넷 전문은행이 3개나 생겼는데 총 21개 은행의 '메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상당수 금융 소비자들이 거래 은행의 존재를 점점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기존 은행들은 앱을 통해 접수된 자금 이체 지시를 기계적으로 수행만 하는, 테크핀의 백 오피스로 전락할 수 있다. 실제 네이버, 다음 또는 교통카드 사업자들이 하는 일을 은행업(금융업)이라고 대중이 인식하는 상황이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2030년대 후반이 되면 은행은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 은행 등 금융업의 가장 큰 타격을 주는 것은 CBDC다.
법정 디지털 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이하 CBDC라 함) 디지털, 데이터 시대에 현금 없는 세상을 만들어 발권 비용과 관리비용이 들지 않고 불법자금거래 차단, 자금세탁 방지, 완벽한 세원 포착 등 많은 장점이 있다.그러나 반대로 개인이나 기업의 사생활 및 경제활동을 정부가 훤히 들여다볼 수 있고, 자금 중개 등 금융 권력의 정부 독점, 가상화폐 시장의 대폭 축소 등 더 많은 단점이 있다.
CBDC는 기능과 구조상 중앙은행과 사용자 사이의 은행, 카드와 같은 결제회사와 자금중개회사, 투자를 판단하는 투자금융 회사 등의 기능이 대폭 줄어들거나 사실상 필요 없게 된다. 금융, 결제, 투자와 같은 경제활동 전반을 중앙은행과 정부가 독점적 권력으로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CBDC의 전면적인 시행은 금융구조가 완전하게 개편이 되면서 기존의 금융회사는 몰락하거나 단순한 보조 기능만 가지게 되는 딜레마에 빠진다. 따라서 금융산업, 통화정책, 금융안정에 막대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게 된다.
현재 CBDC를 정식으로 통용하는 나라는 바하마, 나이지리아, 동 카리브해 7국 연합 등이다. 하지만 이런 나라들은 온라인 결제 능력이 부족해 대안으로 사용하는 성격이 강하다. 주요 추진 나라 중에서 중국이 가장 먼저 치고 나가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2020년부터 선전, 쑤저우 등 10여 개 도시에서 시민들이 ‘디지털 위안화’로 부르는 CBDC를 사용하게 하는 시범 운영을 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실험 등을 하며 준비 중이나, 시행에는 신중한 입장이다.
머지않아 한국도 CBDC 발행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마 그 시점은 한국과 경제, 안보에 동맹 관계 등에 있는 미국의 CBDC 추진 일정과 같이 갈 것이다. 그동안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충분하게 기술, 방식, 제도는 물론이고 한국은행법, 은행법 등 관련 입법 보완도 검토하고 추진해야 한다.
CBDC 발행이 본격화하면 기존 금융시스템의 대변혁은 불가피하다. 그때가 멀어 보이지 않는다. 생존하려면 은행은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 하이테크와 하이터치 전략이 하나의 대응 방안이 될 수 있다.
하이터치(high touch, 고감도)란 미국의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가 처음으로 제시한 개념이다. 현대사회는 첨단기술(high tech, 첨단기술)을 추구한 결과,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기술중독지대(technologically intoxicated zone)로 변해버렸다.따라서 그는 인간성을 중시하는 하이터치 개념을 도입하여 최첨단 기술 문명에 대한 균형감각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인간성을 수호하는 기술을 받아들이고, 인간성을 저해하는 기술은 거부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상업 은행들의 영업 환경 악화는 국제적인 대세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계 기업뿐만 아니라 알리페이, 위챗 등 중국의 테크 핀들도 기존 금융업을 크게 위협하고 물론 기존 은행들도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금융 빅데이터를 활용하거나, 다른 금융사 고객도 간편 결제가 가능한 개방형 결제 플랫폼을 만드는 등 다양한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금융 산업 생태계의 변화가 은행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테크 핀과 전통적 은행은 협력과 경쟁을 동시에 하는 ‘프레너미( frenemy)' 관계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 테크 핀의 새로운 도전을 전통 은행들이 디지털 전환을 가속하는 배경으로 파악하는 시각도 있다. 마찬가지로 기존 금융산업생태계는 가상자산(암호화폐) 생태계와 공통분모를 찾아 유익한 점을 공유해야 한다.
플랫폼 기업들이 전자상거래와 물류에서 확보된 빅데이터를 금융 활동에 접목해 발휘하게 될 ‘플랫폼 파워’는 기존 은행들이 모아 온 노하우나 경험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이 크고 정교하다. 데이터의 질이 좋다. 방대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해 맞춤형 금융상품 개발도 가능할 것이고, 정보 기반 신용평가모델 구축에서도 기존 은행보다 우위에 놓일 수 있다.
이처럼 물류(logistics), 상류(trade), 금류(finance)가 결합하면 금류 하나만 담당하는 금융기관보다 경쟁력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 흐름 속에서 기존 금융기관, 특히 상업 은행들이 테크 핀과 경쟁하려면 무엇보다 돈을 중개한다는 전통적 사고에서 벗어나 데이터를 활용하는 디지털 하이테크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 “돈이 아니라 데이터를 맡기면 이자를 준다”는 식의 사고 전환과 데이터 활용이 필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고객 빅데이터와 블록체인, AI 등을 활용할 수 있는 ‘하이테크’ 인력이 크게 보강되어야 한다. 또 고객을 기다리는 서비스가 아니라 고객을 찾아다니며 고객과의 접점을 대폭 확대하는 ‘하이 터치’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돈만이 아니라 점점 확대되는 디지털 자산의 관리까지 맡길 수 있도록 새로운 서비스를 늘려가야 한다.
필자는 1997년 동남은행 재직시절 온라인시대가 오리라 예상하고 온라인쇼핑몰을 은행이 에스크로뱅킹(Escrow Banking) 시스템을 제공하여 소비자와 판매자가 안전하게 매도·매수를 하는 방안을 만들었다.
14일간 구매 자금을 묶어두고 매수확정이 되면 판매자에게 자금을 이체하는 서비스였다. 이를 통해서 고객의 구매내용 등 패턴 데이터를 통하여 은행은 여신심사 자료로 활용하려는 의도였다. 너무 앞서간 것인지, 아무튼 정부는 당시 금융구조조정을 은행의 경쟁력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으로 하여 좌절되었지만, 지금은 필자가 그렸던 금융시스템이 보편화 되었다.
이제 기존 금융기관들은 혁신 전략을 대출 관행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국내 은행들은 수십 년 동안 미국의 투자은행을 모델로 삼으면서 유가증권 투자 활동에 주력해왔다. 여신 업무는 부동산 담보 대출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고객의 신용이 나 기술에 대한 평가는 부동산 감정기관이나 기술평가기관에 위임해왔다.
고객의 재산(담보물)에만 지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고객과 고객의 사업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던 셈이다. 고객의 자금 수요를 능동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엄청난 빅데이터를 무기로 삼은 테크핀들 의 도전을 절대 이길 수가 없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1년 상반기 19개 국내은행의 당기순이익은 10.8조 원이다. 연간으로 추정하면 21.6조 원이다.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 은행당 평균 1.14조 원의 당기순익을 낸 것이다. 현재는 은행업 인가제로 과점(寡占, oligopoly)적 이익을 내고 있을 뿐이다.
▲ Back to the past, 조금은 과거로 돌아갈 필요도?
필자가 행원 시절에는 고객의 전기료, 전화요금, 벌금은 물론이고 등록금, 기숙사비 등 돈으로 지급하는 각종 공과금 및 비용을 수납했다. 그리고 기업은 대부분 당좌계정을 통하여 어음이나 수표를 사용했다. 따라서 고객의 과거와 현재의 신용상태, 사업 현황과 자금 수요를 파악하는데 큰 기준이 되었다.오늘날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고객의 생활 방식과 관심사에 대한 모든 정보를 지닌 것과 다르지 않았다. 데이터였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관들이 미국의 투자은행 경영 방식을 가져오면서 이런 장점들이 조금씩 사라져 갔다.
따라서 전통 은행들이 테크 핀과 경쟁하려면 과거로 돌아길 필요가 있다. 단기적·유동적 운전자금을 대출할 때도 장기적·고정적 설비자금을 대출할 때처럼 실수요를 파악하는 세심함과 부지런함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전년도 매출액과 담보물만 파악할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떤 용도로 얼마의 자금을 지출해왔는지 등을 세심하게 파악해 신용을 평가하는 것이다.
독일의 은행이 이러한 방식을 취해왔는데, 그 결과 담보물만 챙기는 우리나라 은행보다 고객과의 관계가 훨씬 긴밀하고 안정적이라고 평가받는다.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지 않는다면, 초저녁도 안되어 불 끄고 문을 닫으면서 은행 점포가 높은 임대료를 감수하면서 길목 좋은 건물의 1 층에 있을 이유가 없다.
디지털 혁명시대, 은행 역시 적자생존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한경닷컴 The Lifeist> 박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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