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브레턴우즈 체제 시즌 3가 시작된다 [한경 코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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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리셋

그레이트 리셋(Great reset)은 2021년 다보스 세계 경제 포럼의 의제였다. 당시 세계의 엘리트와 리더들은 온라인에서 모여 코로나 사태 이후의 새로운 정상(New normal)에서 더 나아가 세계의 전면적 쇄신을 통해 다시 새롭게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하자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레이트 리셋'을 말 그대로 직역하면 대대적 초기화, 또는 재설정을 뜻한다. 마치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공장 초기화' 버튼을 누르듯 세계가 힘을 합쳐 구시대적인 문화와 시스템을 버리고 더 공평하고 지속할 수 있는 세상을 새롭게 구축하자는 의미를 담은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리셋'한다는 말인가? 그레이트 리셋이라는 말 자체는 표면적으로 기후 문제나 인종차별 등 범지구적인 문제들을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세계 경제 포럼이 이 의제를 밀고 있는 진짜 목적은 미 패권 및 달러의 붕괴를 준비하자는 것이다. 코로나 위기 후, 미 연방준비은행이 QE(양적완화 정책) 규모를 천문학적으로 늘리며 국채 발행이 급증했는데, 향후 머지않아 QE가 한계에 다다르면 미국 달러화 중심의 국제 금융시스템도 불가역적으로 붕괴하게 된다는 것이 골자다.

브레턴우즈 체제

국제 금융이 미국 달러화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 계기는 1944년 브레턴우즈 협정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되어갈 즈음,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들은 전후 국제 금융시스템을 어떻게 만들고 운영해 나갈지 논의했는데,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 44개국 대표들이 모여 이에 대한 결론에 합의한 체제라 하여 '브레턴우즈 체제'라 불렀다.

브레턴우즈 체제를 통해 미국의 달러화는 세계의 기축통화가 되었다. 달러는 금과 교환 비율을 설정하여 가치를 유지했고, 다른 모든 나라들의 자국 통화 가치는 달러에 연결해 간접적 형태의 금 태환제도를 만들었다. 달러를 가져가면 언제든 금과 일정 비율로 교환할 수 있었으니 각국 정부는 금을 직접 보유하기보다는 달러 사용을 선호했고, 이는 2차대전 이후 세계 경제의 회복에 상당한 이바지를 했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이제 달려를 가져와도 금 못 바꿔준다"를 선언한 '닉슨 쇼크'를 계기로 시즌 2를 맞이했다. 달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유지되던 금본위제가 완전히 끝나고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신용화폐 기반 시스템이 등장했다.

그 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우리도 잘 알고 있다. 미국은 달러의 과잉발행에 의한 채권매입 정책을 유지하고 있고 나머지 국가들은 '안전자산'이라는 이유로 달러 표시 자산을 잔뜩 보유하여 미국과 자신들의 운명을 일체화시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0년 성명을 발표하고 지금의 신용화폐 기반 국제 금융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에 문제가 생겨 전 세계의 투자자들이 달러와 채권을 팔아치우면 모든 국가의 부가 삭감되는 현 구조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현 금융 시스템에 균열이 가고 있다는 증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처음 나왔다. 각국 정부는 미국 부동산 시장의 붕괴가 전 세계로 전이되며 유럽 PIIGS 사태 등으로 번지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이에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최후의 안전자산'인 금 보유액을 늘리기 시작했다. 이는 브레턴우즈 체제가 출범한 1944년 이후로 5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제 브레턴우즈 체제 시즌 3가 시작된다 [한경 코알라]
▲연도별 전 세계 중앙은행 금 보유액 추이 / 출처: World Gold Council

이 흐름은 2014년, 크리미아반도를 점령한 러시아에 미국이 금융 제재를 가하며 더욱 가속화되었다. 제재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러시아 중앙은행은 미국 국채는 꾸준히 매도하는 대신 금은 미친 듯이 사들였다. 이런 움직임에 일부 다른 국가의 중앙은행들도 합류하면서, 2014년 이후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미국 국채보다 3배나 많은 금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제 브레턴우즈 체제 시즌 3가 시작된다 [한경 코알라]
▲러시아 중앙은행의 금 vs. 미국 국채 보유액 / 출처: 트위터

최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의 목적으로 미국과 유럽 연합이 러시아 중앙은행의 보유 외환을 동결해 버렸다. 러시아가 수십 년간 원유와 광물을 팔아 모아온 재산이 한순간에 압류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브레턴우즈 체제 시즌 2의 종료를 알렸다. 각국 정부는 러시아가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신용화폐를 기축 자산으로 보유하는 것은 더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브레턴우즈 체제 시즌 3가 온다

스위스 취리히에 기반을 둔 글로벌 투자회사인 크레디스위스의 투자 전략가이자 거시경제학자인 포자르 졸탄(Pozsar Zoltan)은 지금 경제 상황을 브레턴우즈 체제 시즌 3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한다. 러시아 중앙은행의 달러와 유로 기반 외환보유고가 손쉽게 동결되었다는 사실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더 이상 신용화폐는 안전하지 않으며, 실물화폐(Commodity money)로 갈아타는 것이 유리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실물화폐는 가치가 '제조된 실물'로부터 기원하는 돈을 말한다. 전통사회에서 쓰였던 실물화폐의 예로는 금, 은, 구리 등 광물이나 소금, 후추 등의 향신료, 쌀, 보리, 옥수수 등의 곡식, 그리고 말, 소, 돼지 등의 가축이 있다. 이런 원자재들의 가치는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믿음과 탄탄한 수요에 기인하므로 국가의 신용에 크게 영향받지 않는다.

최근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본격화되자 러시아의 주요 수출 품목인 원유와 광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40달러 밑이던 원유 가격은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고, 러시아가 전 세계 생산량의 10%를 담당하는 니켈 가격은 500%나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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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켈 가격(미터톤, 달러) 추이 / 출처: 블룸버그

가장 강력한 실물화폐인 금 가격도 올해 들어서만 18%나 상승했다. 금 선물시장의 미결제 약정 수도 2020년 이후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만약 금 가격이 오르는 이유가 달러화에 치중되어있던 글로벌 자금이 이번 러시아 자산 동결을 계기로 일부 금으로 분산된 결과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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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현물 가격 추이 / 출처: 트레이딩뷰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국제금융 질서를 목격하게 될 수도 있다. 만약 달러패권이 무너진다면 세계는 예전처럼 다시 금본위제로 돌아가게 될까? 아니면 각국 정부가 경쟁적으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CBDC가 새로운 기축통화로 등장할까?

혹은 비트코인 같은 새로운 가치중립적 자산이 급부상할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비트코인은 어떤 재화가 화폐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따질 때 거론하는 화폐의 5가지 속성(분할 가능성, 대체 가능성, 내구성, 희소성, 이동성) 모두에서 금보다 우월한 특성을 보였다.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면 될수록 비트코인을 준비자산으로 쓰려는 수요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

아직 무엇이 앞으로 다가올 브레턴우즈 체제 시즌 3의 주인공이 될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지난 수십 년간 유지되어온 국제 금융질서가 크게 요동칠 가능성은 매우 커졌다.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미리 알고 대비할 것이냐, 아니면 모르고 있다가 낙오할 것이냐일 뿐이다.
백훈종 샌드뱅크 COO는…

안전한 크립토 투자 앱 샌드뱅크(Sandbank)의 공동 창업자 겸 COO이다. 가상자산의 주류 금융시장 편입을 믿고 다양한 가상자산 투자상품을 만들어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샌드뱅크를 만들었다. 국내에 올바르고 성숙한 가상자산 투자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각종 매스컴에 출연하여 지식을 전파하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