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문화재 독립운동, 역사의 공백을 메우다
“유물을 보려는 사람이 누구인지 직접 봐야겠습니다.”

사경(寫經)을 팔겠다는 재일동포는 까다로웠다. 고려 우왕 때 만들어져 임진왜란 때 일본이 약탈해 간 물건이었다. 유물의 진가를 알고 소장할 만한 사람인지, 행여 고가에 일본에 되팔려는 장사꾼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했다.

1971년 당시 중견기업인이자 문화재 수집가였던 호림 윤장섭 성보실업 회장(1922~2016·사진)은 반드시 유물을 손에 넣고 싶었다. 웃돈을 치르고라도 물건을 가져올 심산이었다. 그런데 일본으로 날아가 만난 소장자 장갑순 선생은 흥정조차 하지 않고 물건을 건네줬다. ‘고국에 돌려보내라’는 부친 장석구 선생의 뜻에 따른다고 했다. 훗날 호림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이자 국보로도 지정된 ‘백지묵서묘법연화경’은 이렇게 고국으로 돌아왔다.

‘한국 3대 사립미술관’으로 우뚝

40년 문화재 독립운동, 역사의 공백을 메우다
‘개성상인 1세대’로 꼽히는 호림은 성보실업과 유화증권 등을 창업한 기업인이다. 평생에 걸쳐 국보와 보물 수십여 점을 비롯해 1만5000여 점의 문화재를 수집한 컬렉터로도 유명했다. 미술사학자 최순우(1916~1984)와 황수영(1918~2011)의 간청으로 1969년 잡지 《고고미술》 발간을 도우면서 문화재와 인연을 맺은 이후 도자기와 서화 등 다양한 문화재를 수집했다.

호림은 수집품을 사회에 공개하고 대중과 공유하는 데 힘썼다. 1981년 비영리법인 성보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이듬해 서울 대치동에 호림박물관을 열어 공공 전시를 시작했다. 1999년 신림동으로 본관을 이전하고 2009년 강남구 신사동에 분관을 세웠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호림박물관은 간송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과 더불어 국내 3대 사립미술관으로 손꼽힌다. 1만7000여 점에 이르는 소장품 중 국보가 8점, 보물이 54점에 달한다. 서울시지정문화재도 9건 있다. 백지묵서묘법연화경 외에 호림박물관이 서울 한복판 빌딩값을 치르고 가져왔다는 국보 ‘백자청화매죽문호’, 왕실에서 사용했던 최고급 대형 청화백자 ‘백자청화오족용문대호’ 등이 대표 소장품으로 꼽힌다.

호림박물관은 유물 구입 및 전시, 연구 등 박물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몇 안 되는 사립박물관이기도 하다. 호림이 재단에 유물 소유권을 모두 넘기고 개인 재산을 기부해 박물관의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토록 한 덕분이다. 박물관은 재단 기금에서 나오는 임대 수입과 배당금으로 직원 인건비와 전시 비용 등을 충당하고 있다.

개관 40주년 특별전 ‘기억’ 열려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는 개관 4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 ‘기억’이 열리고 있다. 도자기와 토기, 철기와 회화 등 문화재 170여 점과 조덕현, 이주용, 임민욱 등 현대 작가의 작품을 함께 소개하는 전시다.

3부로 구성된 전시 중 1부 ‘마음이 우러나다’에서는 삶의 시작을 알리는 태항아리(아기의 태를 담는 항아리)와 태지석(태항아리의 주인공을 기록한 석판), 제기 등을 선보인다. 2부 ‘삶이 이어지다’에서는 삼국시대 갑옷 등 무덤 부장품을 만날 수 있다. 3부 ‘참이 드러나다’는 기억의 근거를 시각화한 조선시대의 초상화와 계회도(풍류를 즐기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문인들의 계 모임을 담은 그림)가 걸렸다.

전시실 중앙 긴 벽에서는 가로 7m에 달하는 조덕현의 초상화 모듬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일제강점기 유리건판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작가가 그린 그림들이다. 전시실 마지막에서는 이주용이 한국 최초의 상업사진관인 천연당사진관을 모티브로 만든 설치 작품과 함께 기념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전시는 6월 30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