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시선] 상처받지 않는 자들의 세상
원로 교수님과 차를 마셨다. 그분이 물었다. 이 사회에 대한 상징어를 하나만 제시한다면 뭐가 있겠느냐고. 나는 ‘SS’라고 말했다. “SS? 나치친위대(Schutzstaffel)?” “아니요. 소시오패스 소사이어티.” 우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1920년생 시인 파울 첼란은 유대계 루마니아인이었다. 당시 루마니아의 교양인들은 독일어를 사용했다. 1942년 첼란은 강제수용소로 끌려간다. 어느 아침, 유대인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서 있었다. 사람이 많은 쪽은 가스실로 가는 것이었고 적은 쪽은 외부로 팔려나가는 줄이었다. 유대인이 트럭과 교환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보초가 한눈을 팔 때 첼란은 줄을 바꿔서 섰다. 이송 책임자는 명단과 유대인의 수가 맞지 않자, 첼란이 몰래 선 줄의 맨 앞 사내를 가스실로 가는 줄에 대신 세웠다. 첼란은 전쟁 뒤에도 살아남아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다. 그는 나치 유대인 수용소 생존자들에게 나타나는 모든 종류의 후유증을 앓았다. 그중 지독한 것이 ‘살아남았다는 죄의식’과 ‘사냥당하고 있다는 망상’이었다. 1970년 첼란은 센강에 투신자살한다. 대강 이 정도가 독일 문학에 조예가 있다면 알고 있을 시인 파울 첼란에 관한 정보다. 전공이 ‘나치 시대의 파시즘과 예술가의 저항’인 나는, 요즘도 이와 관련된 문건들을 수집해 뒤적이곤 한다. 흔치 않은 취미다.

죽기 3년 전인 1967년, 첼란은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오두막을 방문한다. 그곳은 하이데거 추종자들의 성지였다. 《존재와 시간》은 1927년 그곳에서 집필됐다. 히틀러 치하에서 하이데거는 프라이부르크대 총장이었고, 1935년 ‘나치즘의 내적 진리와 위대함’을 선언했다. 편지에 ‘히틀러 만세’를 서명했고, ‘卍’자 핀을 착용한 채 나치 경례를 하고 나치당에 당비를 납부했으며 가스실에서의 시체 제작 과정을 기계화된 농업에 비유했다. 그에게는 유대인 제자가 많았다.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 철학자 한스 요나스, 허버트 마르쿠제 등이 그들이다. 아렌트는 애인이기도 했다. 하이데거는 나치 전력에 대해 얼버무렸다. 오두막 방문 전날, 첼란은 프라이부르크대에서 시 낭독회를 가진 뒤 하이데거를 처음으로 만났다. 첼란은 그의 철학을 존경했지만, 그와 함께 사진 찍기를 거부한다. 그렇다면, 왜 첼란은 다음날 오두막에 간 것일까? 그는 방명록에 “사유(思惟)하는 인간의 진심 어린 말을 희망한다”고 적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끝까지 침묵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비평가가 아니라 소설가로서 궁금하다. 만약 하이데거가 첼란에게 사과까지는 아니더라도, 후회한다고 고백했더라면 3년 뒤 그렇게 자살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모를 일이다. 신이 아니고서야 한 사람의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어쩐지 첼란이 홀로코스트의 후유증 때문만이 아니라, 하이데거에게서 세상(인간)이라는 거대한 절망의 벽을 마주하게 됐다고 본다. 그것은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의 그것보다 더 절망스러운 고통일 수 있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생각한다’라는 명제를 ‘인간은 언제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꾼 철학자다. 인간은 고통스러울 때 생각하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타인의 고통이 고통스럽지 않은 하이데거는 거짓말쟁이였기에 첼란은 저런 말을 방명록에 적었을 것이다. 몰래 줄을 바꿔 서서 타인을 자기 대신 죽게 한 자신처럼 제발 후회라도 해달라고 말이다. 하이데거는 1976년 5월 26일, 87세로 자연사했다.

왜일까. 대선이 끝난 뒤 하이데거와 첼란을 읽으며 위와 같은 ‘망상’에 사로잡혔다. 누가 집권하건 간에, 멀쩡한 사람들도 정치 진영에만 들어가면 자신이 지지하는 소시오패스를 위해 사이코패스가 된다. 이 기저에는 타인에 대한 적개심이 마약인 불행한 개인들이 있다. 그들을 이용하는 것은 정치인이지만 정작 대중은 속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앙망하고 있는 것인가? 더 역겨운 것은 증오의 장사꾼들이고,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일단 마음이 약하면 시들거나 죽게 되는 사회다. 진실 따윈 인정 않는 저 뻔뻔함이 공포스럽다. 상처받지 않는 것은 상처 주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이다. 마음이 아플 때 우리는 사유하고 진실해진다. 망상일 뿐일까? 1967년 그날, 상처받은 시인이 거짓말쟁이 철학자 앞에서 느꼈던 그 거대한 벽이 지금 우리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