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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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이 전기료 폭탄을 맞고 있다. 독일의 한 가정은 얼마 전 850달러(약 100만원)가 찍힌 전기·가스 요금 고지서를 받고 충격에 빠졌다. 평소의 1년치 요금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공장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세계 2위 아연 제련업체인 니르스타가 9배나 치솟은 전기료 때문에 3주간 공장을 멈추는 사태를 맞았다. 이 회사의 전기료는 킬로와트시(㎾h)당 50유로(약 6만원)에서 최근 400유로(약 54만원)로 뛰었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전기료와 가스료가 3배 안팎으로 뛰었다.

탈원전 ‘에너지 수입국’의 후회

왜 이렇게 됐을까. 성급하게 추진한 탈원전 정책 때문이었다. ‘친환경’에 앞장선 독일은 전체 발전의 40% 이상을 신재생에 의존하며 모자라는 건 러시아산 천연가스로 충당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 속에 러시아의 가스 공급이 줄어들자 전력난에 봉착했다. 프랑스도 비슷한 사정이다. 신재생 에너지의 발전효율이 생각보다 낮은 것 또한 문제였다.

유럽 각국이 탄소배출을 줄이자며 탈원전에 나섰지만, 사실 원전의 탄소배출량은 신재생 발전보다 적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태양광발전의 생애 주기 탄소배출계수는 1㎾h당 이산화탄소환산(CO2eq) 및 중간값 기준 48g인 반면 원전은 12g에 불과하다. 원전의 탄소배출량이 태양광 발전의 4분의 1 수준이라는 얘기다.

원전의 경제성도 높다. 우리나라만 봐도 설비 구축 비용과 사용 후 핵연료 처리비용을 감안한 원전의 1㎾h당 정산단가가 67.9원으로 LNG(247.1원) 등 다른 분야보다 싸다.

프랑스, 원전 14기 추가로 건설

‘탈원전’의 부작용을 뒤늦게 깨달은 나라들은 다시 원전을 늘리기로 했다. 프랑스는 오는 2050년까지 원전 14기를 추가 건설하기로 했다. 영국은 기존의 원전 수명을 20년 연장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도 녹색금융 활성화를 위한 ‘택소노미’에 천연가스와 함께 원전을 포함하며 ‘원전=친환경 에너지’라는 점을 확인했다. IPCC 역시 재생에너지 확대 외에 2050년까지 원전을 2010년 대비 2.5~6배 늘리라고 권고했다. 최대 탄소배출국인 중국은 원전을 150기나 추가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잃어버린 5년’ 동안 뒷걸음질을 쳤다. 한전의 영업손실은 올해 2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정부가 전기료 인상을 억지로 미룬 탓에 우리 국민은 더 무거운 요금 폭탄을 맞게 됐다.

더 심각한 것은 에너지 정책이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는 점이다. 원전을 줄이고 천연가스 수입을 늘렸다가 러시아로부터 치명타를 맞은 독일은 땅을 치고 있다. 에너지 자립은 국민의 일상생활뿐 아니라 생존 자체를 좌우하는 중차대한 문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