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차기 정부 조직개편 검토에 착수하면서 ‘통상(通商)’ 업무 전담을 둘러싼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간 기싸움이 치열하다. 외교부는 ‘경제안보’ 논리를 펴며 10년 전 산업부에 빼앗긴 통상 조직의 원상복귀를, 산업부는 ‘공급망 관리’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며 현 체제 유지를 각각 주장하고 있다.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돼온 양 부처 간 신경전이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교육부,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등 조직 및 업무 통폐합 가능성에 관가는 술렁이고 있다. 차기 정부에서 폐지가 유력한 여성가족부의 업무를 가져오기 위한 부처 간 샅바 싸움도 시작됐다.

정권 따라 운명 바뀌는 ‘통상’

산업부의 반격 "기업 사활 걸린 공급망, 외교부가 관리할 수 있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통상업무에 대한 공약을 내지 않았다. 다만 ‘경제안보’가 화두로 떠오른 만큼 신흥 안보 관련 이슈를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안보 컨트롤타워(가칭 신흥안보위원회)에서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대선 후보 시절 산업부가 산업·에너지만 맡고 통상은 분리해 외교부로 옮기겠다고 공약했다.

외교부는 작년부터 통상 업무 재탈환을 위해 뛰어왔다. 윤 당선인과 안 위원장 캠프에도 외교부를 외교통상부로 확대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안을 일찌감치 제시했다는 전언이다. 지난 17일에는 안호영 북한대학원대 총장 등 전·현직 외교부 관료들이 총출동한 포럼을 열고 ‘통상 업무 환원’을 주장했다. 안 총장은 “경제외교는 정부조직법상 외교부가 하게 돼 있는데 여기서 통상만 뗀다는 것은 변화된 경제, 안보 현실을 정확히 반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그동안 대응을 자제하던 산업부는 “외교부가 공급망 중심의 통상환경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조직 논리로 대응하고 있다”고 반격했다. 산업 현장과의 긴밀한 소통 없이는 디지털·탈탄소·공급망 등 신통상 이슈를 다룰 수 없다는 점에서다. 산업 정책의 협조 없이는 통상 협상이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는 게 산업부가 내세우는 논리다. 한 통상 관료는 “외교부가 통상 협상에 나서면 사사건건 산업부에 협조를 요청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조직개편으로 불필요한 비효율을 만들어 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통상교섭본부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외교통상부 하부 조직으로 신설된 이후 외교부와 산업부의 줄다리기가 이어진 분야다. 박근혜 정부는 통상교섭본부를 폐지하고 해당 업무를 산업부로 이관했고, 문재인 정부가 통상교섭본부를 산업부 내에 재설치하면서 지금의 체제를 갖췄다.

“보여주기식 조직개편 고리 끊어야”

과기정통부 1차관실(과학)을 교육부와 합쳐 ‘과학기술교육부’(가칭)를 만든다는 안이 돌면서 두 부처 내 미묘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이명박 정부 때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의 ‘악몽’이 재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입시 관련 교육 현안에 밀려 중차대한 과학기술 정책이 뒤로 밀린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 역시 걱정하는 눈치다. 당장 인수위부터 ‘과학기술교육분과’로 구성되면서 처음부터 교육이 뒷전으로 밀린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신설되고 시·도교육청의 위상이 커지긴 했지만 유치원·어린이집 통합 등 윤석열 정부의 교육 공약을 이끌기 위해서라도 교육부 존재가 확실해야 한다는 주장을 앞세우고 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윤 당선인의 새 정부가 금융위를 기재부에 합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008년 정부조직개편으로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가 합쳐지기 전까지 금융위 업무는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등에서 맡았다. 기획조정분과 간사인 추경호 의원, 경제1분과 간사인 최상목 전 차관 등이 기재부 출신인 것도 조직개편 가능성이 점쳐지는 이유다. 특히 최 전 차관은 거시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기재부에서 금융 정책도 집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가부 폐지에 따른 정책 이관을 놓고도 부처 간 눈치 싸움이 치열하다. 기존 정책 중 양육 및 부양 관련 업무는 보건복지부, 여성인력 개발 및 활용은 고용노동부로 이관될 가능성이 높다. 성폭력 피해자 보호 등은 법무부로 이관될 전망이다. 직업 개발 등과 관련해서는 고용부가 갖고 갈 가능성도 있다. 어떻게 선을 긋느냐를 놓고 부처 간 갑론을박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5년마다 반복되는 정부조직개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비판도 많다. 실익이 없는 조직개편에 힘을 쏟기보다는 새 정부의 구상을 구체화하는 조직정비가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홍석우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조직개편이 곧 새로운 정책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며 “정부 조직도 미국처럼 정권에 관계없이 큰 틀을 유지해 가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이지훈/송영찬/김남영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