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는 보수적으로…비관적 현실주의 관점 필요한 때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다. 유대인 청년 귀도는 그야말로 해맑고 긍정적이다. 도라와 결혼해 아들 조수아를 얻는다. 하지만 전쟁이 터지면서 독일군에 의해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간다.

귀도는 참혹한 수용소에서도 특유의 긍정 에너지로 조수아를 안심시킨다. 마침내 전쟁이 끝났지만 독일군은 증거를 없애려고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다.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 독일군에게 끌려가면서 이를 숨어서 지켜보는 아들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익살스럽게 행진하는 귀도의 모습이 그려진다. 죽음을 앞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도 아들을 위해 유쾌하게 붙잡혀 가는 ‘긍정적 환상’의 대표적 장면이다.

영화의 감동을 잠시 제쳐두고 현실적으로 따져보자. 비극적인 위기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누구일까. 독일 나치 치하의 유대인 수용소를 다룬 베스트셀러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비롯한 여러 자료는 긍정적 환상을 품는 사람이 아니라 ‘비관적 현실주의자’가 살아남는다고 설명한다.

투자는 보수적으로…비관적 현실주의 관점 필요한 때
주가 급락으로 벼랑 끝에 몰린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는 투자자가 많다. 지난 15일엔 그런 위기감이 극대화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치열해진데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결정을 앞두고 불확실성이 한껏 고조돼서다.

코스피지수가 올 1월 말 기록한 저점을 지키지 못하고 허물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었다. 지수 하단을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시장엔 긴장감이 팽배했다. 긴장을 넘어 공포를 느끼는 투자자도 많았다.

다행히 지난 17일 아침 공포가 자취를 감췄다. Fed가 3년3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제로금리 시대’를 끝냈지만 제롬 파월 Fed 의장이 “미국 경제가 침체로 빠질 가능성은 낮다”고 밝히면서 시장이 반등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협상에 진전이 있다는 소식도 전해져 투자자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긍정적 환상을 꿈꿀 형편은 아니다. 긍정적 환상보다는 비관적 현실주의가 적합한 국면이다. 인플레이션 우려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불씨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식 투자에서 비관적 현실주의는 어떤 의미일까. 보수적으로 투자하고, 원금 회복 또는 목표 수익 달성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고 각오하는 것이다. 순식간에 화끈한 수익을 거머쥐는 환상은 경계해야 한다.

비관적 현실주의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대형 우량주 꾸준히 사 모으기가 있다.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 위기를 언제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지만 비관적인 현 상황에서는 대형 우량주가 ‘현실적’ 대안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판단에 공감하는 개인투자자가 적지 않다. 이달 들어 개인 순매수 1~2위 종목은 삼성전자와 LG에너지솔루션으로 나타났다. 개인은 특히 삼성전자에 매수세를 집중시켰다. 위기 상황에선 ‘똘똘한 한 종목’이라고 판단한 투자자가 많았다는 의미다.

개인이 산 만큼 외국인과 기관은 삼성전자를 순매도했다. 나중에 웃는 쪽이 어디일지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개인의 삼성전자 ‘사자’가 비관적 현실주의에 근거한 선택이라고 한다면, 비극적인 위기에서 살아남는 선택이 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주식시장이 주저앉고 나서 우울한 표정의 투자자가 적지 않다. 주식 투자에선 비관적 현실주의로 임하더라도, ‘인생은 아름다워’의 아버지 귀도처럼 환한 웃음으로 일상을 살아가자. 투자에서의 진지함과 현실주의가 자칫 일상을 망치지 않도록 말이다.

장경영 한경 생애설계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