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부터 5000달러로 설정된 국내 면세점 구매 한도가 폐지됐다. /연합뉴스
18일부터 5000달러로 설정된 국내 면세점 구매 한도가 폐지됐다. /연합뉴스
5000달러(약 600만원)였던 내국인 면세점 구매 한도가 폐지됐다. 기획재정부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면세 업계를 지원하고 해외 소비를 국내로 돌리기 위해 관세청 시행규칙을 고쳤고 18일 시행된다”고 밝혔다. 면세업계를 지원하기 위한 조치지만, 정작 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면세점 백화점보다 비싼데…굳이"

19일 면세업계에 따르면 이제 해외로 나가는 내국인은 면세점에서 한도 제한 없이 마음껏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이번 조치는 외화 유출과 과소비를 막기 위해 정부가 지난 1979년 구매 한도를 신설한 지 43년 만이다. 1979년 500달러였던 한도는 1985년 1000달러, 1995년 2000달러, 2006년 3000달러, 2019년 5000달러로 증가해왔다.

다만 600달러인 면세 한도는 현행대로 유지된다. 면세업계에서 크게 환영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마음껏 물건은 살 수 있지만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는 금액은 600달러(약 73만원) 뿐이라서다. 600달러 초과분에 대해서는 20~55%의 관세를 물어야 한다.
18일부터 5000달러로 설정된 국내 면세점 구매 한도가 폐지됐다. /뉴스1
18일부터 5000달러로 설정된 국내 면세점 구매 한도가 폐지됐다. /뉴스1
이 경우 면세 한도를 크게 넘는 가격의 제품은 백화점보다 비싸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샤넬 ‘클래식 스몰 플랩백’은 이달 기준 면세점에서 8340달러(약 1000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이 핸드백을 출국시 면세점에서 사서 귀국할 경우 자신신고 감면액 15만원을 제외한 총 394만원 가량의 세금을 세관에 납부해야 한다. 면세점 구매가격와 세금을 합치면 총 1394만원으로, 백화점 정상가격 1180만원보다 214만원이 더 비싸다.

신혼부부들이 혼수품으로 많이 찾는 시계인 오메가 ‘문워치 프로페셔널(42㎜)’도 면세점에선 약 1016만원이지만 백화점에선 810만원이다.

면세 한도는 여전히 높지 않은데 초과분에 대해 세금이 많이 붙는 탓이다. 관세법에 따르면 600달러 이상의 구매 금액 중 185만2000원까지는 간이세율 20%, 185만2000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50%의 간이세율이 적용된다.

코로나19 확산 전 종종 해외여행을 다니며 면세점을 이용해 왔던 박모 씨(41)는 “면세점에서 제품을 사는 이유는 세금을 감면받아 백화점 등 보다 저렴하게 사기 위한 것인데 되레 더 비싸다면 면세점을 이용할 이유가 없다”며 “결국 백화점에서 사는 게 값도 더 쌀 뿐만 아니라 포인트, VIP 등의 혜택까지 받을 수 있는 셈인데 굳이 면세점을 찾겠나”라고 말했다.

인기 명품 '샤넬·루이비통' 면세점엔 없어

반론도 있다. 최근 명품 선호현상이 커지면서 리셀 시장에서도 인기 명품에 수백만~수천만원의 프리미엄(웃돈)이 붙기 때문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리셀업자들에게 비싼 프리미엄을 주는 것보다 세금을 더 내고 사는 게 낫다”는 말도 나온다.
18일부터 5000달러로 설정된 국내 면세점 구매 한도가 폐지됐다. /뉴스1
18일부터 5000달러로 설정된 국내 면세점 구매 한도가 폐지됐다. /뉴스1
하지만 이같은 목적을 가진 소비자들이 면세점을 들르더라도 인기있는 명품 브랜드들은 이미 국내 면세점에서 방을 뺀 상황이다. 샤넬코리아는 “3월 31일 자로 부산과 제주 시내 면세점 패션 부티크의 영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1월 루이뷔통은 롯데면세점 제주점 매장문을 닫았고 신라면세점 제주점, 롯데면세점 부산점,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점에서 이달 말 줄줄이 철수한다. 앞서 롤렉스는 지난해 10여 개에 이르는 국내 면세점 매장을 대부분 정리했다.

소비자들이 실질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물품이 제한됐다는 것이다. 면세업계에선 “정부의 대응이 늦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면세점 매출이 급격히 줄고 브랜드들은 떠나고 있는데 대책이 미흡하다”며 “현행 체계에서는 화장품이나 소품 등 구매가가 크지 않은 제품들만 면세점에서 선호되지 200~300만원이 넘어가는 명품의 경우 면세점에서 살 유인이 별로 없다”고 비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