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주공 단지 내 견본주택에서 조합원들이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주고받은 공문을 보고 있다. /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둔촌주공 단지 내 견본주택에서 조합원들이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주고받은 공문을 보고 있다. /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국내 최대 규모 재건축으로 1만2032가구를 새로 짓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가 공사 중단 위기를 맞았다. 완공과 입주만 기다리던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신용불량자로 내몰릴 처지에 놓였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은 19일 둔촌주공 단지 내 견본주택에서 공사 중단 예고 등에 대한 설명회를 열었다. 일반분양을 통한 사업비 조달이 기약 없이 늦춰지는 상황에 공사를 중단하게 됐고, 여기에 더해 이주비 대출 만기까지 다가오자 조합원들이 자금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설명회를 연 것이다.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원들이 대여한 이주비는 1조2800억원 규모다. 그간 시공사업단이 사업비로 이주비 이자를 내고 있었지만, 사업비가 대부분 고갈됐다. 오는 7월이면 대출 만기도 도래한다. 사업이 파행을 빚으며 대출 연장도 불확실한 상태다.

이주비를 빌린 조합원은 이를 즉시 상환하거나 연장이 결정되더라도 최근 금리를 반영해 더 높은 이자를 부담해야 할 전망이다. 업계는 최악의 경우 조합원들이 가구당 2억~3억원 내외의 금액을 즉시 상환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설명회 장소에서 시공사업단은 이러한 내용과 함께 조합과 주고받은 공문들을 공개했다. 설명회를 찾은 조합원 김모씨는 시공사업단이 공개한 공문을 보며 "조합원들은 눈먼 장님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둔촌주공 단지 내 견본주택에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주고받은 공문이 전시됐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둔촌주공 단지 내 견본주택에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주고받은 공문이 전시됐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김씨는 "공사 기간이 연장된 이유가 시공사의 비협조적 태도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사실과 달랐다. 조합이 직접 공사 중지를 요청하고 특별한 이유 없이 마감재 승인을 차일피일 미룬 것이 원인이었다"며 "공사비 증액 절차에 하자가 있어 무효라고 하던데, 서울시 법률검토로는 문제가 없고 유효한 계약이라고 한다. 이런 내용을 우리만 몰랐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은 둔촌주공 재건축 일반분양은 당초 2020년 4월로 예정됐다. 입주도 2023년 8월로 예정된 바 있었지만, 공사기간이 지연되며 9개월 이상 늦춰질 전망이다.

조합원 이모씨도 "조합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제때 입주하는 것"이라며 "2024년이면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데, 갈 곳도 없이 빚더미에 앉을 것 같다. 일반 조합원에게 무슨 돈이 있어 이를 감당하겠느냐"고 토로했다. 그는 "조합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이주비까지 자신들이 쓰겠다고 한다"며 "조합원들의 피해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공개된 공문에는 조합이 설계 변경을 이유로 공사 중지를 요청하고, 마감재 승인을 반려하거나 시공에 필요한 실시 설계도서를 제때 제공하지 않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공문에 따르면 조합은 2020년 2월 착공으로부터 15개월이 지난 2021년 4월에야 실시 설계도서 중 일부만 제공했다. 나머지 실시 설계도서도 2021년 10월에야 전달했다. 견본주택에 적용된 마감재에 대해서도 "인정할 수 없다"며 반려했다. 또한 쓰레기 이송설비 등을 이유로 일부 구역의 공사 중지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미 낙찰된 시공업체의 변경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시공사업단은 평가를 거쳐 홈네트워크 공사업체로 A사를 선정했다. 이후 모델하우스 공개와 조합의 품평을 거쳐 계약이 체결됐지만, 조합은 A사를 B사로 변경하라고 시공사업단에 요구했다.

시공사업단은 업체를 변경하려면 조합이 A사와 공사 포기를 협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합은 A사가 낙찰 업체라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공사가 지연되며 납품이 늦춰지자 A사는 조합을 상대로 소송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조합원들이 설명회가 열린 견본주택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조합원들이 설명회가 열린 견본주택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시공사업단과 조합은 공사비 증액을 두고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둔촌주공 재건축 최초 공사비는 2조6000억원이지만, 2019년 12월 조합 총회와 한국부동산원(당시 한국감정원)의 검증을 거쳐 2020년 6월 3조2000억원으로 증액한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HUG 분양가 수용을 두고 내홍이 발생해 그해 8월 조합 집행부가 해임됐다. 2021년 5월 들어선 새 집행부는 2020년 6월 증액된 공사비 계약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조합은 대의원회를 열고 증액된 공사비 계약 취소 안건을 내달 총회에 상정하기로 하면서 강 대 강 대치를 예고했다. 일반분양 축소를 통한 보류지 추가확보, 조합 활동비 조달을 위한 조합원 이주비 이자 사용 등도 총회에서 의결한다는 방침이다. 총회에서 2020년 6월 체결된 공사비 계약 취소 안건이 통과되면 조합과 시공사업단은 법적 분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조합원인 이모씨는 "사업이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일반분양을 마치고 사업비와 이주비 대출을 모두 상환했을 것"이라며 "소송전이 벌어지면 입주 지연과 비용 증가를 피할 수 없다. 애꿎은 조합원들만 피해를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공사업단은 별도 안내일까지 견본주택에서 설명회를 상시 운영할 방침이다. 사업단 관계자는 "공개한 자료를 보고 조합원들이 직접 판단을 내리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