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정부의 노동정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대형로펌 출신의 노동 전문 변호사 모시기 경쟁에 나서고 있다. 중대재해법 처벌을 피하려는 대기업은 물론 정보기술(IT) 분야 벤처기업, 외국계 기업들까지 산재·인사노무(HR) 이슈 관련 전략 마련에 관심을 쏟으면서 해당 인력들의 몸값도 뛰고 있다.

노동전문 변호사 잇따라 기업행

강한승
강한승
김앤장 법률사무소 노동그룹에서 노사관계 분야 리더로 일한 정종철 변호사는 지난 1월 쿠팡의 핵심 계열사인 쿠팡풀필먼트 대표로 자리를 옮겨 3인 공동대표이사 체제의 한 축을 맡고 있다. 노동 분야 출신 변호사가 대기업 대표급으로 스카우트된 사례는 흔하지 않다. 쿠팡 본사에는 김앤장 출신인 강한승 변호사가 이미 경영관리총괄 대표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사이 변호사 10여 명이 대거 쿠팡행을 택했다. 이러다 보니 최근 노동을 주요 분야로 삼는 변호사들 사이에선 “변호사는 쿠팡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은 변호사와 못 받은 변호사로 나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돌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 노동팀의 최고참급인 김모 변호사도 최근 삼성전자 노사 부문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정종철
정종철
이런 현상은 일부 대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 대형로펌 중견급 변호사는 “중대재해법 외에 노동 분야가 중요한 요소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나 컴플라이언스(법률 준수)에도 대비할 필요성이 생기면서 IT·중견·외국계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노동 전문 변호사를 찾아나서고 있다”며 “중견급 변호사들이 기업 의뢰를 받은 헤드헌터를 만나는 일도 드물지 않다”고 귀띔했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기업들은 로펌이 비용을 대 유학을 다녀온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나이대의 변호사를 가성비가 좋다는 이유로 선호한다”며 “특히 해당 기업 사건을 맡았던 팀을 로펌에서 한꺼번에 영입하는 등 적응 기간이 필요 없는 검증된 인사를 챙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노무 분야 수요 더 커질 것”

노동법 시장은 2013년 경영계를 강타한 통상임금 소송, 2014년 박근혜 정부가 저성과자 해고와 임금피크제 도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추진했던 이른바 ‘양대지침 정책’을 기점으로 매년 급속히 성장해 왔다.

‘친노동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직장 내 괴롭힘법(근로기준법), 주 52시간제 도입, 근로감독 강화, 비정규직 제로(0) 등 각종 ‘노동개혁’ 정책이 펼쳐져 근로자들의 권리 의식이 확산되고 노동조합 활동도 활발해졌다. 예전이라면 사내에 머물렀을 문제들이 법원으로 향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특히 최고경영자(CEO)를 정조준한 중대재해법이 지난 1월 27일 전격 시행되면서 노동 관련 이슈는 더 이상 기존 인사부서에 맡겨놓을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됐다는 게 노사문제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고참 변호사들의 기업행, 개업 등으로 주요 국내 로펌 노동팀에선 중견급 변호사 ‘품귀’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중대재해법 컨설팅 등 기업들의 업무 의뢰는 크게 늘고 있는데 정작 일을 맡길 변호사가 부족한 상황이다. 1월에는 법무법인 율촌과 바른이 중대재해 전문 인력을 뽑는다는 공개채용 공고를 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주니어 변호사들 사이에선 노동 분야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한 대형로펌 노동팀 변호사는 “예전에는 로펌 입사 변호사들이 노동 분야를 기피했는데 지금은 가장 인기 있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경제계 일각에선 차기 보수 정권에선 노동 문제가 상대적으로 덜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고 현재의 노동 변호사 ‘반짝 호황’도 사그라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물론 상반된 전망도 있다. IT기업 한 인사담당자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휘청거렸던 네이버는 인사노무팀이 10명 수준으로 회사 규모에 비해 너무 작다”며 “지급 여력이 큰 스타트업이나 IT기업들이 성장에만 치중하다 보니 인사노무 대응에 취약한 경우가 많아 시장 성장 여력은 여전히 크다”고 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