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모씨(30)는 지난해 가을 서울 은평구에 있는 전용면적 22㎡짜리 도시형생활주택에 보증금 1억6000만원을 주고 전세 계약을 맺었다. 독립 후 세 번째로 들어가는 전셋집이었지만 박씨는 이번에 처음으로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했다. 전셋값이 워낙 많이 오르다 보니 나중에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 커졌기 때문이다. 전세반환보증은 전세 계약이 끝났을 때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보증기관이 세입자에게 대신 지급하는 일종의 보험상품이다. 박씨는 “주변에 오피스텔이나 빌라에 전세로 들어갔다가 벌써 ‘깡통 전세(전세보증금이 매매가를 웃도는 집)’가 된 사례도 봤다”며 “약 50만원의 추가 보증료 부담을 감안해도 가입하는 게 낫다”고 했다.
"깡통 전세 무서워"…반환보증 가입 급증
최근 수년간 전셋값이 급등한 반면 연말부터 두드러진 거래 절벽으로 집값 상승세는 주춤하면서 깡통 전세 피해를 우려하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 지난 한 해 세입자가 자발적으로 가입한 전세반환보증 금액은 1년 새 40% 가까이 늘었고 올 들어서도 더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올 들어 반환보증 가입 더 늘어


21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건수는 전년(17만9374건)보다 29.4% 증가한 23만2150건으로 집계됐다. 가입 금액은 51조5508억원으로 전년(37조2595억원)보다 38.4% 늘었다. 각각 14.9%, 21.6%였던 전년도 증가율을 훌쩍 넘어섰다. 서울 마포구의 한 은행 지점 관계자는 “최근 수년간 워낙 전세를 끼고 집을 사들이는 ‘갭투자’가 성행한 데다 최근 들어서는 매매가가 전셋값보다 낮은 거래도 심심치 않게 나오면서 전세대출 상담 때 보증금 피해를 걱정하는 세입자가 많아졌다”며 “예전에 비해 전세반환보증에 가입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고 했다.

반환보증 가입 증가 추세는 올 들어 더 두드러졌다. 올 1~2월 기준 주택금융공사가 운영하는 전세반환보증 상품인 전세지킴보증 가입 건수와 금액은 각각 1195건, 2246억원으로 1년 전보다 34.9%, 44.3% 늘었다. 매달 20% 안팎인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은행의 전세대출 증가율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깡통 전세 세입자 불안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 10월부터 주택임대사업자의 보증보험 가입이 의무화됐음에도 세입자가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전세반환보증 가입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깡통 전세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졌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보통 세입자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우선변제권을 갖기 때문에 전세권 설정, 확정일자 등으로 법적 대항력을 갖추면 별도로 반환보증에 가입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매매가와 보증금 차이가 거의 없으면 우선변제권이 있어도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집주인이 해당 주택을 팔거나 경매에 넘겨도 낙찰금이 보증금보다 적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말 이후 지방은 물론 서울 일부 지역에서도 소형 주택을 중심으로 전셋값이 매매가보다 비싼 거래가 속출하면서 깡통 주택으로 전락할 위험에 놓인 세입자도 늘었다.

일부에서는 전셋값을 지나치게 밀어 올리는 전세대출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금융정책 추진 방향에서 “금융사가 공적 보증에 의존해 대출을 내주는 구조를 개선하겠다”며 전세금의 80~100%를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보증하는 비율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합류한 김소영 서울대 교수도 앞서 보증 축소가 바람직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