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가격 통제에 병들어가는 전력시장
전력시장이 병들고 있다.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제도와 원칙은 정치 논리에 무력화됐고, 전기요금의 예측 가능성은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다. “이대로 가면 한국전력도, 에너지 시장도 모두 망한다”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대통령 선거 이후에 이 같은 상황은 더 심화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국전력은 21일로 예고됐던 올 2분기 전기요금 인상 여부 발표 일정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지난 20일 밝혔다. 발전연료 가격 인상분을 전기요금에 주기적으로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가 2020년 12월 도입된 이후 전기요금 발표 일정이 미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료비 연동제라는 전기요금 결정 원칙만을 따르면 전기요금은 지체 없이 인상돼야 정상이었다. 최근 석탄·액화천연가스(LNG)·원유 가격이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인해 천정부지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한전 역시 원칙에 따라 연료비 변동분을 반영한 전기요금 인상안을 지난 16일 정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관계부처 협의 등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한전에 전기요금 발표 일정을 연기하라고 통보했다. 정부가 내부적으로 하고 있다는 ‘협의’는 크게 두 가지다. 정부는 우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자 시절 ‘전기료 동결’을 공약한 만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의 추가적인 소통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 고려사항은 전기요금 인상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이다. 최근 원유값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전기요금마저 오르면 물가 관리가 힘들어질 것으로 기획재정부는 보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에 부정적인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 한전과 전력시장은 지속가능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전은 작년에도 고유가 상황에서 전기요금을 제때 올리지 못해 역대 최대인 5조8601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윤 당선인 공약대로 전기요금이 동결되면 올해 손실액이 20조원까지 불어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이 모든 상황이 정부 스스로 마련한 연료비 연동제를 정부 스스로 지키지 않은 탓에 발생했다. 정부는 작년 이맘때도 LNG 가격 급등 현상이 이상한파에 의한 ‘일시적 현상’이라며 전기요금 인상을 막았다. 작년 이상한파, 올해 우크라이나 사태 모두 정부가 예측하기 어려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시화된 이상현상으로 국민 부담이 과도하게 오르는 문제가 발생했다면, 정부가 할 일은 그때그때 가격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연료비 연동제의 한계를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일이다. 전기요금 인상 상한선 조정, 한전에 대한 손실보상 등의 제도적 보완 없는 인위적 가격통제는 전력시장 붕괴를 앞당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