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펀드 조성해 글로벌 임상3상 투자
'제약바이오혁신위' 설치 공약 이뤄져야
김상은 서울대 의대 교수·비아이케이테라퓨틱스 대표
하지만 한국이 제약 강국으로 올라서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2020년 국산 신약 30개 품목의 총생산금액은 3221억원에 불과하며, 생산금액 100억원이 넘는 품목은 6개, 500억원이 넘는 것은 고작 1개에 그쳤다. 해외 진출 신약도 매출이 미미하거나 시장 형성 초기 단계에 있다. 묵직한 한 방이 없다는 얘기다.
한국이 제약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은 무엇일까. 첫째, 국내 ‘산학연병(산업체·대학·연구소·병원)’의 의료바이오 및 제약·바이오 역량을 전략적, 효율적으로 결집해야 한다. 특히 병원과의 연계를 강화해 병원을 신약 개발의 혁신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 병원은 연구개발 인력, 시설, 장비, 보건의료 데이터 등 우수한 연구개발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미충족 의료 수요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기술 실증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둘째, 개방형 혁신을 위한 제도 개선과 규제 개혁이다. 제약기업 등 대기업의 장기 모험자본이 전략적 투자를 통해 바이오벤처 기업에 흘러 들어가게 해 개방형 혁신과 신성장 동력 확충을 촉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 바이오벤처 기업이 기술 수출과 같은 단기 미완성 성과나 투자금 회수를 위한 상장 전략에 매몰되지 않은 채 장기적 계획을 갖고 신약 개발 비전 달성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수합병(M&A) 시장도 키워야 한다. 지난해 말 국내에서도 허용된 일반 지주회사의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을 활성화해야 하는 이유다.
셋째, 글로벌 사업개발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즉, 신약의 글로벌 임상시험을 거쳐 해외 허가, 현지 마케팅까지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국내 제약기업이 성과로 내세우는 개발 초기 단계의 신약 기술 수출은 자본과 노하우 부족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과도기적 선택이다. 국내 기업이 신약 개발의 과실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선 글로벌 임상3상을 거쳐 상업화까지 자체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자본과 경험 축적이 중요하다. 글로벌 임상3상에 투자하는 민관협동 메가펀드 조성 필요성을 역설하는 국내 제약산업계의 목소리에 정부가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넷째, 의약품 규제과학을 고도화해 규제를 통한 신약 개발 효율 증대와 가속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의약품 규제과학은 의약품 안전성·유효성·품질 등의 평가 기술을 개발하는 과학을 일컫는다. 따라서 신약 개발 및 제약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국내 신약 심사인력은 미국의 3%, 유럽의 6%로 선진국 규제기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규제과학 강화와 인력 양성으로 신약 자문·심사 인력 확충과 전문성 확대를 서둘러야 한다.
다섯째, 제약·바이오 정책의 통합 거버넌스 구축이다. 여러 부처에 분산된 제약·바이오 육성 및 규제 정책을 통합, 조정해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인력 양성, 연구개발, 임상시험, 상업화, 글로벌 진출에 이르는 일괄적인 지원의 연계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국무총리 직속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 설치 공약 실현을 기대한다.
문제는 실천이다. 정부와 민간의 결속으로 제약·바이오 역량을 효율적으로 결집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면 10년 이내에 연 매출 1조원 이상의 ‘블록버스터 신약’ 3개 이상을 창출하고 연 매출 7조원 이상의 세계 30위권 제약기업 3개 이상을 보유하는 ‘제약강국 코리아’를 실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민간은 혁신과 융합으로 무장하고 정부는 과감한 규제 개혁과 제도 개선으로 응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