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020년 국내 제약기업의 의약품 등 총생산금액은 28조28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의약품 수출액도 9조9648억원으로 확대돼 사상 처음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했다. 연구개발 투자도 갈수록 커져 2020년 국내 제약산업계 연구개발비 총액은 2조1900억원으로 늘어났으며, 상장 제약기업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12.3%로 제조업 평균(2.6%)의 4.7배나 됐다. 기술 수출액도 지난해 13조3720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달성했다.

하지만 한국이 제약 강국으로 올라서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2020년 국산 신약 30개 품목의 총생산금액은 3221억원에 불과하며, 생산금액 100억원이 넘는 품목은 6개, 500억원이 넘는 것은 고작 1개에 그쳤다. 해외 진출 신약도 매출이 미미하거나 시장 형성 초기 단계에 있다. 묵직한 한 방이 없다는 얘기다.

한국이 제약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은 무엇일까. 첫째, 국내 ‘산학연병(산업체·대학·연구소·병원)’의 의료바이오 및 제약·바이오 역량을 전략적, 효율적으로 결집해야 한다. 특히 병원과의 연계를 강화해 병원을 신약 개발의 혁신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 병원은 연구개발 인력, 시설, 장비, 보건의료 데이터 등 우수한 연구개발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미충족 의료 수요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기술 실증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둘째, 개방형 혁신을 위한 제도 개선과 규제 개혁이다. 제약기업 등 대기업의 장기 모험자본이 전략적 투자를 통해 바이오벤처 기업에 흘러 들어가게 해 개방형 혁신과 신성장 동력 확충을 촉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 바이오벤처 기업이 기술 수출과 같은 단기 미완성 성과나 투자금 회수를 위한 상장 전략에 매몰되지 않은 채 장기적 계획을 갖고 신약 개발 비전 달성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수합병(M&A) 시장도 키워야 한다. 지난해 말 국내에서도 허용된 일반 지주회사의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을 활성화해야 하는 이유다.

셋째, 글로벌 사업개발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즉, 신약의 글로벌 임상시험을 거쳐 해외 허가, 현지 마케팅까지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국내 제약기업이 성과로 내세우는 개발 초기 단계의 신약 기술 수출은 자본과 노하우 부족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과도기적 선택이다. 국내 기업이 신약 개발의 과실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선 글로벌 임상3상을 거쳐 상업화까지 자체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자본과 경험 축적이 중요하다. 글로벌 임상3상에 투자하는 민관협동 메가펀드 조성 필요성을 역설하는 국내 제약산업계의 목소리에 정부가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넷째, 의약품 규제과학을 고도화해 규제를 통한 신약 개발 효율 증대와 가속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의약품 규제과학은 의약품 안전성·유효성·품질 등의 평가 기술을 개발하는 과학을 일컫는다. 따라서 신약 개발 및 제약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국내 신약 심사인력은 미국의 3%, 유럽의 6%로 선진국 규제기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규제과학 강화와 인력 양성으로 신약 자문·심사 인력 확충과 전문성 확대를 서둘러야 한다.

다섯째, 제약·바이오 정책의 통합 거버넌스 구축이다. 여러 부처에 분산된 제약·바이오 육성 및 규제 정책을 통합, 조정해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인력 양성, 연구개발, 임상시험, 상업화, 글로벌 진출에 이르는 일괄적인 지원의 연계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국무총리 직속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 설치 공약 실현을 기대한다.

문제는 실천이다. 정부와 민간의 결속으로 제약·바이오 역량을 효율적으로 결집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면 10년 이내에 연 매출 1조원 이상의 ‘블록버스터 신약’ 3개 이상을 창출하고 연 매출 7조원 이상의 세계 30위권 제약기업 3개 이상을 보유하는 ‘제약강국 코리아’를 실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민간은 혁신과 융합으로 무장하고 정부는 과감한 규제 개혁과 제도 개선으로 응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