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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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올해분 공동주택(아파트·연립·다세대) 공시가격을 내일 공개하면서 보유세 부담 완화 방안을 함께 발표할 예정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와 관련해 1가구 1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을 2020년 수준으로 동결하는 방안을 정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그만큼 여당의 대선 패배 충격이 컸고, 부동산 세금폭탄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오는 6월 지방선거도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부동산 세제 강화로 집값을 잡으려던 기존 정책에서 갑작스럽게 180도 유턴한 점이다. 부작용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 없다. 먼저 공시가격 문제다.

민주당은 "1주택자라면 누구나 재산세·종부세 부담이 줄어들 수 있도록 2020년 공시가격을 활용해 과세표준을 산정하자는 당내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작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19% 오른 데 이어 올해도 20% 안팎 상승이 예상되는 만큼 집값 급등 이전의 공시가격을 적용해 세부담을 낮춰주겠다는 것이다. 만약 이 방안을 정부가 받아들인다면 23일 '2022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발표하는 동시에 그 적용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 조변석개(朝變夕改)도 아니고, 발표 즉시 사문화시키는 전대미문의 세정(稅政)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과연 법률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의문이다. 일단 부동산가격공시법(·산정해 공시해야 한다. 다만, 국세청장이 국토교통부 장관과 협의해 공동주택 가격을 별도로 결정·고시할 수 있도록 예외(시행령 규정)를 뒀다. 민주당이 이 조항을 근거로 '2020년 공시가격 적용'을 추진하려는 것인지 분명치는 않다. 하지만 이 조항 외엔 2년 전 공시가격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어 보인다.

어떤 경우에 이런 예외를 적용할 수 있는지 법령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도 않다. 결국 허술한 법령의 빈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재산권과 직결된 세법을 이렇게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왜곡 적용해도 괜찮은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럴 요량이었으면 공시가격 조사는 왜 하나 싶다. '징세 편의주의'라고 비판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사태가 이렇게 꼬인 것은 이른바 '포퓰리즘 공약'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국민 세부담을 적극 낮추겠다고 하자, 정부가 부랴부랴 작년 12월 "내년 보유세 등 부담 완화 방안을 내놓겠다"고 맞장구친 결과다.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통상 매년 10월에 조사를 시작해 다음 해 3월에 발표한다. 세부담 완화라는 급브레이크를 걸어도 이미 진행 중인 공시가격 조사는 돌려세우기 힘들다. 그러니 2년 전 공시가격 적용이란 편법·탈법 아이디어를 들고 나온 것이다. 내일 정부가 어떤 내용의 발표를 할지 봐야 겠지만, 엄정함이 생명인 세제를 이렇게 짜깁기하는 건 용납하기 어렵다.

시행령을 개정해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조정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는데 왜 이런 무리수를 둘까 궁금하기도 하다. 재산세와 종부세는 모두 공시가격에 공정시장가액비율을 곱해 과세표준액을 정한다. 지방세법은 재산세의 공정시장가액비율을 40∼80%(주택 기준), 종부세법은 60∼100% 구간에서 해당 법 시행령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산세의 경우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올해 기준으로 60%, 종부세는 100%로 산정한다. 이 비율을 예를 들어 재산세는 40%, 종부세는 60%로 낮추면 세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올해는 그렇게 넘어가더라도 내년엔 어떻게 할 거냐 라는 문제가 남는다. 그때그때 상황을 봐가며 '고무줄 세정'을 펼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율 인하가 최종 해결책인데,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입장에선 완전히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음을 자인하는 꼴이 되니 선택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공시가격 조정으로 돌아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공시가격 현실화'라는 문 정부의 고집스런 정책이다. 공시가격이 시세와 너무 동떨어져 공정한 과세가 되지 않고, 결과적으로 낮은 세부담이 투기를 부추긴다는 문제의식 이었다. 2020년 기준으로 평균 68.1%인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반영률)을 2030년까지 9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 그래서 나왔다. 하지만 시세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공시가격을 정하는 것은 시세 변동에 따른 세부담 진폭을 줄여주려는 목적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집값이 갑자기 떨어질 경우 부(負)의 자산효과로 경기 침체 요인이 될 수 있는 반면, 국민 세부담은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무를 수 있다. 그래서 공시가격과 시세 사이에 일종의 버퍼(buffer)를 둔 것인데, 문재인 정부는 이런 고려를 무시해 버린 것이다.

문제는 집값이 급등하는 시기에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을 밀어붙이니 보유세 부담은 더욱 빠른 속도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도 이를 몰랐을 리 없다. 오로지 집값 안정만 보고, 국민 세부담 급증은 모른 체 한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공시가격 현실화 속도를 작년에 조금이나마 조정했다면 세금폭탄 논란이 이렇게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공시가격 현실화를 무슨 대단한 금과옥조인양 밀고나간 결과, 2년 전 공시가격 적용이란 편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졸속'도 이런 졸속이 없다.

국민 세부담을 낮추려면 먼저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현실에 맞게 뜯어고치고, 속도도 늦출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에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조정하는 게 순서다. 공시가격 적용을 몇 년 전 가격으로 되돌리겠다는 발상은 이제 그만 접는 게 낫다.

장규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