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투자 트렌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유가가 뛰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14일 미국 워싱턴 DC의 엑손모빌 주유소. 사진=연합뉴스 제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유가가 뛰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14일 미국 워싱턴 DC의 엑손모빌 주유소. 사진=연합뉴스 제공
장기화되는 러시아의 침공에 우크라이나 곳곳이 전쟁의 상흔으로 가득하다. 전쟁의 후폭풍은 전 세계 에너지 산업마저 뒤흔들었다. 직접 폭격을 당한 우크라이나 외에도 러시아발(發) 에너지 대란에 속수무책으로 휘청인 유럽 지역이 대표적이다. 높은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는 에너지 자립, 치솟는 유가, 천연가스 가격에 대응하기 위해 대체에너지 사용을 서둘러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이유다. 투자업계에서는 ‘전쟁을 계기로 소외받던 친환경·신재생에너지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에 봄이 찾아오는 것일까.


‘전쟁이 호재’…다시 온 신재생에너지의 봄
한 달간 15% 뛴 클린에너지 ETF


펀드 평가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녹색성장펀드로 분류되는 국내 29개 펀드 가운데 가장 설정액이 큰 멀티에셋클린에너지펀드의 2021년 1년 수익률은 -20.58%다. 불과 1년 전인 2020년 113%에 달하는 꿈의 수익률을 내며 1년 새 설정액이 2배 이상 커졌지만 지난해 성과는 처참했다. 가파르게 오른 신재생에너지 관련 종목이 큰 폭의 조정을 거친 데다 태양광, 풍력 등 새로운 에너지원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줄어든 영향이다. 신재생에너지 부문이 장기 성장 테마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지만, 조정이 장기화되면서 투자자의 관심도 조금씩 멀어졌다.

예기치 못한 전쟁은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올 초만 해도 배럴당 70달러 수준에 불과했던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120달러까지 치솟았고, 러시아산 천연가스는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급기야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유럽 국가의 러시아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2030년 전까지 러시아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줄여 독립하고, 올 연말까지 EU가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가스 물량의 3분의 2를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러시아 외 국가에서 액화천연가스(LNG)의 수입 비중을 늘리고, 수소를 비롯해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 지역을 꼽을 수 있다”며 “최근 공급망 차질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전통적 에너지 산업이 큰 수혜를 입고 주목받는 상황에서 EU의 탄소중립 가속화 계획 등을 통해 친환경에너지 산업으로 시장의 시선이 전환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원유·천연가스 등 전통 에너지가 전쟁 반사이익으로 인해 반짝 특수를 누리고 있지만, 신재생에너지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공포에 베팅한 투자자들은 단기간에 큰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 천연자원펀드(26개), 원자재펀드(42개)의 연초 이후 평균 수익률은 각각 23.41%, 17.96%로 집계됐다. 삼성KODEX원유선물 상장지수펀드(ETF)는 같은 기간 50%가 넘는 수익을 거뒀다. 이 기간에 코스피지수는 10%가량 하락했다. 최근에는 신재생에너지 관련 투자상품이 전통 에너지 기업의 수익률을 웃도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태양광산업에 투자하는 인베스코 솔라 ETF는 1개월 수익률(3월 23일 기준)이 20.26%에 달한다. 글로벌 태양광 인버터업체인 솔라에지테크놀로지스, 인페이즈에너지, 홍콩 증시에 상장한 중국 태양광 패널업체 신의광능 등이 담긴 ETF다.

순자산이 6조원을 넘는 글로벌 최대 규모의 신재생 테마 ETF인 아이셰어즈 글로벌 클린 에너지 ETF(ICLN)도 한 달간 15% 넘게 뛰었다. 풍력주를 모아둔 퍼스트트러스트 글로벌 윈드 에너지 ETF(TAN)는 마이너스 수익률을 딛고 최근 한 달 새 8% 남짓 상승했다. 덴마크 풍력터빈업체 베스타스 윈드 시스템즈, 글로벌 선두 해상풍력업체 오스테드, 캐나다의 노스랜드 파워 등이 TAN에 담긴 대표 종목이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 최대 정유 기업 엑손모빌의 주가 상승폭은 7.04%에 그쳤다. 3개월간 수익률이 30%를 웃돈 점을 감안하면 상승세가 주춤한 모습이다. 영국 정유회사 BP의 경우 한 달 새 5%가량 주가가 하락했다.

‘전쟁이 호재’…다시 온 신재생에너지의 봄


다시 뜨는 중국 태양광

전문가들은 반전 기회를 잡은 신재생에너지 관련 투자상품에 여전히 기회가 남아 있다고 본다. 키움증권은 러시아발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풍력 부문이 주목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중장기적으로 풍력발전 분야에 대한 투자가 확대될 것이란 분석이다. 이종형 키움증권 연구원은 “유럽의 에너지 독립은 풍력이 핵심”이라며 “러시아산 화석연료에서 독립하겠다는 계획을 선언한 EU가 앞으로 갖춰야 할 신규 풍력설비는 2020년 전 세계 신규 설치량(93.0GW)의 57%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존에 시장 성장을 주도하던 중국·미국과 더불어 유럽까지 가세할 경우 향후 시장이 기존 예상보다 훨씬 더 가파른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해상풍력도 주목받고 있다. 해상풍력은 많은 국가가 목표량을 앞다퉈 확대하는 분야다. 유럽 최대 설치 국가인 영국은 해상풍력 목표량을 확대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네덜란드도 기존 목표량을 2배로 높였고, 벨기에도 40% 확대했다. 해상풍력 입찰 제도를 수정해 설치 속도를 높이겠다고 발표한 일본을 비롯해 동부 연안 도시들이 최근에 발표한 해상풍력 설치 목표만 100GW에 달하는 중국 등 아시아 시장도 뜨겁다.

세계 최대 태양광 시장인 중국이 폭발적 성장을 이뤄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지난 1~2월 태양광 신규 설치량은 10.86GW로, 전년 동기 대비 234% 급증한 수치다. 최원석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현재 폴리실리콘 현물 가격은 kg당 약 33달러로 10년래 최고 수준인데, 모듈업체들이 원가 부담을 안고 설치에 나설 만큼 태양광 투자 수요가 강력하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투자 주체가 지방정부와 국영 에너지 기업”이라며 “중국 태양광협회는 올해 태양광 신규 설치 수요가 75~90GW로 전년 대비 최소 40%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는 만큼 태양광 기업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원 한국경제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