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이 '의료데이터 강국' 도약하려면…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핵심 키워드는 ‘데이터, 인공지능(AI), 수소경제’ 등이었다. 2020년 정부는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핵심 사업으로 ‘데이터 댐 구축사업’을 제시하는 등 데이터 경제 활성화 정책을 추진했다. 국회는 데이터 3법을 통과시켰고, 벌써 2년이 지났다. 2021년에는 보건복지부가 양질의 의료데이터 개방·활용을 통해 범국가적 데이터 경쟁력을 강화, 바이오·헬스케어산업 강국으로의 도약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고, ‘보건의료 데이터·AI 혁신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여전히 공공의료 데이터는 꽁꽁 묶여 있다. 그동안 건강보험공단이 약 3조4000억 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약 3조 건의 보건의료 데이터를 수집했지만, 산업계의 ‘데이터 갈증’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건보공단이 합당한 사유 없이 보험사 공공의료 데이터 이용 심의를 계속 연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보험업계가 작년 7월 공공데이터 이용을 신청했으나 건보공단은 과학적 연구기준 미충족, 연구 결과 공개 및 검증 절차 결여를 이유로 자료 제공을 승인하지 않고 학계 검증을 위한 논문 작성 및 학술지 게재 등의 조건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후 이런 조건들이 모두 충족됐고, 업계가 재신청했지만 건보공단은 금년 1월과 2월 심의 보류 및 연기를 결정하고 향후 심의 일정도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 쇄국주의’라는 불만이 곳곳에서 나오는 이유다.

건보공단이 데이터 개방에 소극적인 것은 의료계 일부와 시민단체 등이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고 공공의료 데이터가 보험료 할증, 보험가입 거절 등의 목적으로 활용될 우려가 있다’고 입장을 밝힌 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공 의료데이터는 엄격하게 비식별 처리된 표본자료(가명정보)로 개인 특정 및 추정이 불가해 소비자 편익 저해 목적으로 악용할 수 없다. 또한, 공공기관은 보험사에 표본자료를 직접 제공하는 것이 아니며, 공용IRB(공공기관생명윤리위원회) 승인 후 사전 허가받은 연구자가 직접 내방해 폐쇄망 분석 후 결과(통계)값만을 반출할 수 있어서 시스템적으로 정보 유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와 같은 우려는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시민단체 등의 주장에 편승해 건보공단이 지나치게 좌고우면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건보공단의 폐쇄적 데이터 개방정책은 정부 주도 데이터 경제 활성화 정책에 역행한다. 정부-소관부처-산하 공공기관 간 ‘정책 엇박자’로 시장 혼란을 가중시키고, 산업의 혁신성장 지체 및 기업 경쟁력 저하마저 초래한다. 그 피해는 소비자와 국민의 몫이다. 예컨대 공공의료 데이터를 활용하면 그동안 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고령자, 유병력자 전용 보험상품 개발이 활성화될 수 있다. 난임치료와 같이 기존에 보장되지 않았던 위험 보장도 가능해지고, 질병 악화 방지 및 예방을 위한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 개발도 확대될 수 있다.

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의 원동력이다. 차기 정부의 핵심 국정운영 목표 중 하나는 ‘데이터 쇄국주의 철폐, 공공데이터 개방을 통한 혁신성장’이 돼야 한다. 데이터 강국이라는 선언적 정책보다는 산업과 기업, 나아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높은 ‘2030 데이터 강국 실천 플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반도체 강국’에 이어 ‘공공의료 데이터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