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연속 공시가격이 대폭 인상되며 보유세 폭탄이 예고된 다주택자들이 각자도생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
2년 연속 공시가격이 대폭 인상되며 보유세 폭탄이 예고된 다주택자들이 각자도생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17.22% 인상될 예정이다. 다주택자들은 공시가격이 오르고 정부의 보유세 부담 완화 대책에서도 배제돼 세금 폭탄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 이에 세 부담을 덜기 위한 방법을 찾아나서면서 세입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24일 임대사업자 커뮤니티에는 보유세 증가를 우려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글을 작성한 임대사업자는 "이번에 월세를 (임대차법 상한인) 5% 올리려 한다"며 "5% 올려도 보유세에는 미치지 못해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다른 사업자가 "관리비를 2배, 3배 올리세요"라며 "관리비는 얼마를 올려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며 관리비 인상으로 보유세 부담을 줄이라고 조언했다.

이는 다세대주택, 상가주택 등의 보유자가 전·월세 신고제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관리비 증액을 이용하는 방법을 조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관리비는 임대인의 수익이 아닌 건물 관리 및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보기에 신고 항목에서 제외된다. 국토교통부는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과다한 관리비 요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집주인이 분쟁 조정에 응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실제로 150가구를 넘는 아파트나 50가구 이상 집합건물은 '공동주택관리법',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관리비 명세를 작성, 보관, 공개하고 회계감사를 받지만, 50가구 미만인 건물은 이러한 의무가 없다. 임차인 3분의 2 이상이 서면 동의하면 임대인이 관리비 명세를 공개해야 하지만, 이웃 간 교류가 없는 원룸이나 다세대주택 등에서는 동의받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글들에 다른 사업자는 "정부가 막무가내이니 다주택자도 막 나가야 한다"고 동조했고 "이 정부가 임대업자를 '적폐'로 내몰아 괴롭혔다. 정부에게 받은 차별을 세입자와 나눠야 우리가 산다"는 주장도 있었다.

"보유세 전가 확대될 것"…임대차법 사각지대 '관리비'

다세대주택과 다가구주택, 상가주택이 밀집한 서울의 한 주택가. 사진=연합뉴스
다세대주택과 다가구주택, 상가주택이 밀집한 서울의 한 주택가. 사진=연합뉴스
관리비를 올려 제2의 월세를 받는 것은 그나마 온건한 수단일 수 있다. 아예 세입자를 내보내고 주택을 없애는 경우도 있다. 상가주택이 밀집한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일부 건물주로부터 월세로 내놨던 원룸을 거둬들이겠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이유를 물어보니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원룸을 없애겠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상가주택은 1층에 상점이 있고 2~3층에 원룸이 있는 형태의 주택을 의미한다. 통상 저층에 상점과 사무실을 두되, 공실 우려가 적은 주택을 함께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공인중개사는 "지난해 종부세가 인상되면서 상가에 딸린 주택을 없애는 경우가 생겨났는데, 2년 연속 공시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이에 동조하는 집주인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5월까지 이러한 주택 감소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세금 부담을 무기로 다주택자를 압박하며 "종부세 과세 기준일인 6월 1일 이전 주택을 처분하면 이번 대책에 따른 보유세 부담 완화 혜택을 적용받을 수 있다"고 발표했는데, 일부 다주택자들은 원룸을 상가와 사무실로 바꿔 주택 수 줄이기에 나선 것이다. 정부가 서민과 청년층의 주거 공간을 없애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6월 전에 세입자 내쫓고 용도변경해 다주택 '해소'

서울시 강남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아파트 매물 안내문이 붙었다. 사진=뉴스1
서울시 강남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아파트 매물 안내문이 붙었다. 사진=뉴스1
다주택자들의 보유세 부담이 얼마나 늘어나길래 이러한 움직임이 포착되는 것일까. 부동산 업계는 올해 다주택자들의 보유세 부담이 전년 대비 30%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가령 서울 광진구 '광장현대' 전용 84㎡와 올해 공시가격 7억원대 마포구 상가주택을 10년 동안 보유한 60대 2주택자는 올해 공시가격 상승으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를 약 3600만원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약 2460만원에 비해 45.3%나 올랐다.

보유세 부담 완화 혜택을 받는 1주택자와 비교하면 다주택자들의 세 부담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광장현대 전용 84㎡는 올해 공시가격이 12억100만원으로 지난해(10억3800만원)보다 15.7% 올라 종부세 대상에 포함됐다.

정부의 보유세 부담 완화 조치로 1주택자는 지난해 공시가격을 적용받기에 광장현대 전용 84㎡를 보유했더라도 종부세를 면제받고 재산세만 310만원가량 내면 된다. 마포구 상가주택도 종부세가 면제되고 재산세가 약 150만원 수준으로 줄어든다. 동일한 주택을 보유했더라도 1주택자라면 세금이 3600만원의 12% 수준인 460만원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임대인의 보유세가 늘면 증가분의 절반이 임차인에게 전가된다는 연구도 있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교수와 같은 대학 박사(경제학) 과정을 수료한 김병남 씨는 24일 '보유세 전가에 관한 실증연구: 전월세 보증금을 중심으로' 논문에서 임대인 보유세가 1% 오를 때 증가분의 46.7~47.3%가 월세 보증금으로 전가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 연구의 분석 대상 기간은 2015∼2019년이고 2019년을 기점으로 보유세 강화 정책이 시작됐다"며 "2020년 이후의 주택시장은 보유세의 전가 수준이 더 높게 나타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보유세의 높은 인상으로 전가 규모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